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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1. 2020

20. 오리도 부탁해

돼지를 부탁해


역설적이게도 고기는 주된 먹을거리 가운데 가장 널리 기피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살코기는 우리의 것과 닮았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우리 자신의 영양 공급과 즐거움을 위해 치르기에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가로 여겼다. 고기를 먹는 행위에 반대하는 윤리적 논의는 현대인의 생물학적 진화에 연료가 되어 주었던 바로 그 음식이 이제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부터 퇴보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식습관에 끼친 생물학적/역사적 영향은 그 나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정교해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잡식동물이며, 고기는 우리 입맛을 만족시키고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음식, 대부분의 음식 전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음식과 요리> 중, 해럴드 맥기


제각기 할 일이 생기고 사람들이 부산스러워짐에 따라 긴장되었던 분위기도 풀린다. 대화가 오가고 웃음소리도 들렸다. 제빵 D와 나는 좌우 각각의 몸뚱이를 하나씩 뉘어놓고 뼈를 분리하고 지방을 제거했다. 동물 내장 특유의 냄새가 났다. 기름과 피는 목장갑에 스며들었다. 


손에 남은 냄새는 씻고 씻어도 며칠을 갔다. 비린내를 맡으니, 오리를 잡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라고 처음부터 백정은 아니었다. 


2년 전이었다. 우리 마을 논에는 오리들이 산다. 오리농법은 오리를 이용해 친환경 벼를 키우는 농법이다. 오리를 논에 풀어놓으면 오리가 논을 다 망칠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벼 사이를 헤엄치며 곤충을 잡아먹었다. 헤엄칠 때는 흙탕물이 일어나는데 햇빛을 막아 잡초 발생이 억제됐다. 오리 똥은 퇴비가 된다. 밤에는 오리집으로 퇴근한다. 벼가 어느 정도 크면, 오리의 역할이 끝났다. 보통 오리농장으로 다시 팔려가는데, 캡틴H는 오리들을 남겨두었다. 


오리를 한번 잡자고 잡자고 했는데 드디어 날을 잡게 되었다. 날을 정하자 모든 일이 번개처럼 진행되었다. 오리가 있는 곳은 캡틴 H의 농장. 마당에는 개만큼 큰 오리가 집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어우, 큰데.' 농사에 투입된 직후에는 작아서 일 년 더 키워 살을 찌웠다고 한다. 오늘 잡을 오리는 네 마리. 닭이든 오리든 직접 잡아먹는 이는 줄어들고 있었다. 전화 한번에 맛있는 치킨이 뚝딱 나오는 때에 손에 피를 무치고 싶은 이는 없었다.


내가 아는 오리 잡는 방법은 목과 가슴뼈 사이로 칼을 찔러 심장을 찌르는 방식이었다. 우리 몸에도 만져지는 틈이다. 목과 쇄골 사이, 손가락이 쏙 들어가는 부분. 오리 잡는 법도 동네에서 배웠다. 먹는 것으로 농사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방식이 농사를 결정지었다.


"오리 눈 보지 마라." 우리 중 뭐로 보나 경험 풍부한 연륜 1호가 주의점을 당부했다. 나도 잡자는 말에 맞장구는 쳤으나 오리 잡는 법을 배운 지가 2년이 됐다. 한 번 배웠던 것일 뿐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큰 오리를 보니 기백도 사그라들었다. 일단 오리 목을 잡긴 잡아보았다. 오리 목을 앞에서 감싸 쥐며 손가락으로 두 날개를 잡는다. 한 손으로 오리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가해진 나머지 손은 뭐를 하냐면, 바로 칼을 쥔다.


칼이 좀 무디다 싶었다. 아니, 단호함이 무뎠겠지. 쿡, 쿡.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칼로 오리 맥박을 짚는 꼴이 되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느껴졌다. ‘에잇' 더 열심히 가슴을 찔렀다. 쿡, 쿡, 쿡. 이 칼이 왜 안 들어가냐. 힘을 줬다. 꾸욱. "꾸엑" 참다못한 오리가 신음 소리를 냈다. 틈이 생기자 오리가 버둥거렸다. 아차... 오리 눈을 보고 말았습니다. 작금의 상황 파악을 끝낸 오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똘망똘망. 



상황 파악 완료



세 남자가 삼각형으로 둘러앉아 각자의 오리에 열중했다. 오리는 처음이지만, 연륜 1호는 예전에 닭 목을 비틀어 잡아보았다고 했다. 오리도 똑같지 않을까 긴가민가 했다. 오리 목은 닭보다 훨씬 길었다. 1호가 한손으로 머리를 잡고 한 바퀴를 돌렸다. 질식사를 시킬 요량이었다. 오리가 눈을 감았.... 아니, 다시 떴다. 오기가 생긴 1호가 한 바퀴를 더 돌려 그 위에 올라탔다. '이제 숨이 좀 막히지? 이놈! 이놈!' 똬리 튼 구렁이와의 싸움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오리가 눈을 끔뻑이며 우리를 쳐다봤다. 오리는 목이 유연한 동물이었다. 


캡틴H는 어려서부터 오리 잡는 모습을 익히 '보았다’고 했다. 직접 잡는 건 처음이라는 말. 하지만 어깨너머 기술이 진짜배기 아니겠는가. 그를 믿고 싶었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지 않은가. 캡틴H는 오리 목을 땅에 댔다. 본인도 안정된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정신을 모으는가 싶더니, 칼등으로 오리 뒤통수를 쳤다. "탁." 오리 눈이 반쯤 감겼다. 기절을 시키는 거란다. 다시 한번 쳤다. 

“탁" 

"엇, 시원해하고 있는데?" 1호가 말했다. 오리는 목 마사지를 받는, 조금 나른한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하는 거 같았는데..." 옛기억을 떠올리는 캡틴의 눈도 반쯤 감겼다. 칼등치기 속도가 빨라졌다. “탁탁탁.” 본인 의도를 빨리 증명하겠다는 듯 말이다. 오리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성공이다! 세 남자는 기쁨에 취했다. 하지만 적당히 멈출줄도 알아야 했다. 빗방울이 바위를 뚫는 법이었다. “탁탁탁.” 오리 뒤통수에서 피가 튀기 시작했다. 끄아...


"아, 기절만 시키려고 했는데..." 캡틴이 말했다. 


오리가 우리를 잡는지, 우리가 오리를 잡는지. 오늘의 주제는 누가 누가 더 잔인한가. 일등은 꿈에 오리가 찾아오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부상은 지옥행 티켓. 어떤 생명을 거두는 일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사체를 만지는 과정도 절대 유쾌한 과정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축되고 있을 뿐이다. 고기를 잔치상과 제사상에 놓는 이유를 단순하게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꺼림직함을 씻고 싶었던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신적인 존재를 위하는 일이라면 감내할 수 있으니까. 거북한 일에 대한 핑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우리는 '고기를 식탁 앞으로 가져다 놓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서, 우리가 미개하다고 했던 옛사람들 보다 ‘훨씬 더 동물처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는 대상에게 윤리적 책임이 있다. 도덕의 수준이 인간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 알려주는 잣대가 될 것 같다. 


오리는 백숙으로 먹었다. 건강에는 좋겠지만, 뜯어먹을 살이 적고, 씹기에는 질겼다. 타이어를 씹는 기분이었다. 이 사이에 고기가 껴 잇몸이 가득 찼다. 다들 다음날 턱을 아파했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오리는 볶음이나 튀김보다는 국과 탕에 어울렸고, 음식보다는 약에 가까웠다.




캡틴 H, 1호, 철인 W, 나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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