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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1. 2020

20. 돼지고기는 돼지의 삶

돼지를 부탁해

돼지를 잡고 정육까지 하고 나니 완전 기진맥진해졌다. 방전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며칠 내리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고기가 신선할 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와줬던 사람들, 가까운 이웃들과 나눈다고 나눴지만 많은 양을 한번에 먹을 수가 없다. 정말 많은 양이다. 발골을 하면서는 금방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기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겨우 한근도 몇 끼니에 걸쳐 먹었다.  지지고 볶고 삶아서 야금야금 먹어도 마법의 항아리는 줄지 않았다.  


‘돼지 키우기’ 고개를 넘으니, ‘전부 먹기’라는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돼지를 잘 먹고 싶었다. 희생된 돼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할 길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책임의 구현은 맛있게 끝까지 먹는 것 아닐까 싶었다. 「6시 내 고향」에 필적할 모든 응용력을 발휘했다. ‘돼지’가 붙는 모든 요리를 했다. 장조림, 감자탕, 수육, 제육볶음을 해 먹었다. 그러다 훈제를 해 먹어보기도 했다. 이대로 채식을 한다 해도 여한이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옛말 그른 게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더니, 구워 먹기만 해본 깜냥으로 전체를 먹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다양한 요리를 해야 했고, 정성이 필요했다. 


가축ㅇ르 한두마리 잡던 시절에는, 가축을 잡는 날이 잔칫날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돼지를 홀로 손질할 수 없어 남녀든 노소든 여러 손이 함께 해야 한다. 다 먹을 수도 없고 어디 쌓아둘 수도 없다.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정해진 부위 없이, 덩어리로 잘라서 팔았다고 한다. 비계가 많은 부위, 적은 부위 정도로만 선택했고, 신문지에 싸서 사갔다고들 한다. 


요즘도 마을에서 돼지를 가끔 잡는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잔치의 기운이 돈다. 평균 나이 60대지만, 어른들은 오랜 시간을 잡아온 덕인지 각자의 자리에서 척척이다. 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는다. 돼지 한마리가 어느새 뚝딱 사라진다. 마을에서의 돼지 잡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칼에는 일말의 고민이 없고 작업 지시도 없다. 뼈는 삶아, 국물을 내며 대부분은 냉동시켜 마을 노인회의 긴긴 식량이 된다. 불 앞에 모이고 음식을 나눈다. 인류가 늘 그래왔듯, 둘러앉은 상이 된다.


축산 동물의 수명은 경제성에 따라 결정된다. 소는 30개월, 돼지는 6개월, 닭은 1개월을 산다. 사료 전환율이 가장 높은 시점이다. 돼지는 붉은 근육을 갖고 있다. 어릴 땐 하얗다가 점점 붉어진다. 시중 돼지고기가 하얀 것은 6개월 만에 도축되기 때문인데, 운동량이 적은 이유도 있다. 자연양돈 돼지는 더 많은 활동과 조금 더 길게 사는 덕에 살이 소처럼 붉다.


먹는 것이 살과 피가 된다. 잘게 부서진 음식물이 각종 효소를 통해 포도당, 아미노산, 비타민 등으로 분해, 흡수된다. 살코기는 동물의 근육. 근육은 동물의 움직임을 만드는 엔진이고, 당분은 근육의 에너지원이다. 쓰고 남은 당분은 지방으로 저장한다. 지방은 동물에게 휴대용 기름 탱크인데, 이와 달리 식물은 전분으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지방은 같은 무게의 탄수화물보다 두 배 많은 칼로리를 갖고 있다. 동물이 지방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이유다. 고밀도의 에너지 탱크는 좋은 엔진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수렵인으로 살았던 인간의 유전자는 지방에 더 많은 열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방이 없는 살코기는 맛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부드러운 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는 동물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압하는 사육의 근거로 쓰이기도 한다. ‘마블링’은 축산업이 만들어낸 마케팅의 산물이지만, 기름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을 선호하는 것은 유전자의 영역이다.


전통적으로 찜과 탕으로 먹었던 소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한 건 현대의 일이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소는 옥수수 알곡을 먹어야 한다. ‘1++등급’의 소고기는 ‘근육’에 약 17%의 지방을 갖고 있다. 근육에까지 지방이 있다는 것은 소의 고통스러운 성장을 뜻한다. 근육 내 지방은 간 기능이 손상되고 대사 기능이 마비되면서 비로소 쌓이기 때문이다. 소 한 마리는 하루 10킬로그램의 옥수수를 먹는다. 일년에 4톤(물론 수입산 옥수수다). 풀을 먹는 소가, 곡물을 먹는 탓에 대부분의 소는 위장병을 앓고 있다. 곡물로 인해 소 위는 인간의 위와 비슷한 산성이 되었고, 햄버거병의 원인균인 O-157 대장균이 증가했다. 


돼지의 경우 국내 시장에서는 지방이 많은 삼겹(뱃)살, 목살이 인기 부위다. 지방이 적고 살코기 덩어리인 등심, 안심은 중간, 육중한 몸을 지지하는 근육, 다릿살은 찬밥 신세이다. 100킬로그램 돼지를 도축했을 때, 피와 내장, 머리, 가죽, 뼈를 제거한 후, 나오는 고기의 양은 보통 65킬로그램. 이를 정육율이라고 한다(소의 정육율은 40퍼센트). 인기 부위인 삼겹살과 목살, 15킬로그램을 팔아 전체 돼지 값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금겹살이 된다. 그래도 부족한 삼겹살은 수입한다. 반면 뒷다리살은 재고로 쌓인다. 남아도는 후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업계의 고민이다. 돼지의 일부만 먹는 탓에 더 많은 돼지를 키워야 한다.


사람들은 완전한 변화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작은 선택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뒷다리 살을 먹는다면 돼지의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다. 자연 양돈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마블링 없는 3등급 소고기를 먹는다면, 옥수수 수입을 줄일 수 있다. 고기 섭취량을 줄인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으로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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