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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Nov 01. 2020

21. 잘 먹겠습니다.

돼지를 부탁해

돼지를 잡고 정육까지 하고나니 완전 기진맥진해졌다. 방전은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몇 일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고기가 신선할 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와줬던 사람들, 가까운 이웃들과 나눈다고 나눴지만 많은 양을 한번에 먹을 수가 없다. 돼지를 잡으면서는 금방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꽤 많은 고기가 나왔다. 고기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겨우 한 근도 몇 끼니에 걸쳐 먹었다. 돼지가 크긴 컸다. 지지고 볶고 삶아서 야금야금 먹어도 그대로였다. 


돼지를 잘 먹고 싶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할 길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책임의 구현은 맛있게 끝까지 먹는 것 아닐까 싶었다. 전체 부위 먹기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전체를 먹으려면 다양한 요리를 해야 했고, 정성이 필요했다. 잡던 당일에는 수육을 먹었다.  


누린내라고 하지만, 요리 관점에서 보자면 다를 수 있다. 재료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풍미라고 할 수 있다. 도축이 흔하지 않았던 때에는 돼지 전체를 먹었다. 내장도 부위별 요리법이 따로 전해졌다. 엉덩이 부위에서 특히 누린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베리코 햄이 뒷다리만 쓰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뒷다릿 살은 푹 삶아, 결대로 찢어서 장조림으로 만든다. 삶으면  손으로 찢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찢어놓고 졸인다. 간장을 넣을 때마다 간을 본다. 백 번쯤 간을 봤더니 혀가 장조림이 된 기분이 든다. 찌개는 어느 부위든 가능하다. 앞다리는 수육을 해먹고, 등심, 안심은 구워먹는다. 


등뼈로는 감자탕을 끓인다. 기왕 끓이는 거, 한 솥 끓여 이집, 저집과 나눠 먹는다. 마무문의 집에서 시래기를 얻어온다. 등뼈를 물에 담궈 핏물을 뺀다. 담그는 시간은 2시간에서 12시간까지, 정해진 법칙은 없는 것 같다. 피는 빨리 부패가 되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뼈가 물에 자박하게 잠기게 끓여 첫물을 버린다. 두번째 삶을 때 통양파, 파뿌리, 통후추, 생강 등등을 넣는다. 향신료를 건지고, 된장, 고추장을 넣어 고기에 간이 배게 한다. 장만 들어가도 벌써 그럴듯한 향이 난다. 시래기를 준비한다. 30분을 삶아 찬물에 담근다. 풋내가 빠진다. 꽉 짠 후 고추장, 고춧가루, 국간장, 다진 마늘 등을 넣어 밑간을 한다. 탕에 넣은 상태에서는 시래기에 맛이 들지 않는다. 감자 투하(상하기 쉬운 재료이니 먹기 전에 넣는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다. 들깨가루를 넣어도 되고, 가루 없이 개운하게 가도 오케이. 깻잎을 넣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던 딱 그 맛. 많은 양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실패하기 어려운 요리. 움직이는 동선대로 친구들 집을 돌며 나눠 먹는다. 동네 이모들과 철인W, 고라니S, 캡틴H, 1호. 돼지 잡은 실감이 더 난다. 


<6시 내고향>식의 모든 응용력을 발휘하던 중이다. 그러다 훈제를 해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 고급 정육점을 운영하는 지인을 만나게 되었다. 보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염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염지는 소금과 설탕, 향신료에 절여 보존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냉장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맛을 위한 염지를 한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음식을 보관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식문화가 생겼다. 


"아이고 돼(뒈)지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게 노예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돼지와 함께하는 동안, 내가 돼지를 키우는 건지, 돼지가 나를 키우는 건지 헷갈리곤 했다. 돼지들은 분투하는 나를 늘 격려해주었다. “꿀꿀(오냐오냐)” 밥 얻어오기, 똥 치우기, 물 떠오기. 돼지들의 요구 사항은 단순하지만, 꾸준함은 쉽지 않았다. ‘물을 가져 오너라’, ‘오늘은 밥이 조금 늦은것 같구나' 같은 마음이 맴돌았다. 사료 없이 길러보겠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매일 시간을 내야 했다. 직접 키워 잡아먹겠다는, ‘자급’ 같은 말, 그래, 세상 참 멋진 말이지. 노예스러움에도 저열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내가 돼지를 귀하게 여긴 만큼 이 시간의 가치를 느꼈다.


한두마리나 잡던 시절에는, 돼지 잡는 날이 잔칫날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돼지를 홀로 손질 할 수도, 먹을 수도 없다. 남녀든 노소든 여러 손이 함께 한다. 뜨거운 물이 필요하고, 인간은 불가에 모여 선다. 지글지글. 고기를 얹으니 불도 혀를 날름날름. 모닥불은 태고부터 간직해온 원시의 마음을 깨운다. 돼지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살아나고 다물었던 입들도 열린다. 


우리는 더이상 돼지를 직접 잡지 않는다. 먹기 좋게 포장된 상품으로 만난다. 손질할 필요도 없다. 굽거나 볶으면 되는 간단한 반찬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들을 일 없으니 돼지에게 미안할 일이 없다. 돼지고기의 영양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지방 함량이라거나, 서민의 대표 단백질 보급원 같은 말들을 한다. 무항생제, 유기 축산. 고기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우리에 대해 말할 뿐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겨우 건강이 아니다. 편리를 위해 우리가 치른 값은 무엇일까.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는 우리의 삶, 인간 가능성의 허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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