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부탁해
“왜 돼지를 키우는 거예요?”
‘진짜' 돼지를 키우는 후계자 J가 물었다. 그는 집안의 양돈사업을 이어받아 천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그에게 세 마리 돼지는 이상하게 보일만 했고, 그는 이 별난 일의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재밌을 거 같아서요.”
음, 모든 상황을 함축하면서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말을 하고 싶었다. 이어진 것은 침묵. 더이상 대화는 없었다. 동물 키우는 일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을 수 있겠다. 어쩌면 모욕감마저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재미 삼아 돼지를 키우지 않았다. 돼지를 키우며 돼지라는 동물에 대해 알아가고, 동물을 키우는 일이 쉽지 않으며, 농장의 돼지와 농장 밖의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배워갔다. 그러던 중,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치사율 100퍼센트에 가까운 돼지 전염병이다. 아프리카 돼지의 토착병이 변이되면서 무시무시한 병이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유럽을 거쳐 중국으로, 그리고 한반도로 왔다. 세계는 좁아졌고, 교류의 속도만큼 전파도 빨라졌다. 성장률 중심으로 육종된 ‘단일’ 혈통을 ‘밀집’시켜놓은 현대의 축산은, 바이러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세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19년 9월 처음 발생했다. 중국은 이미 태풍이 모든 걸 휩쓸고 있던 때이다. 국내로 들어온 이상 종식은 힘들 것이라고 했다. 공기로 전파되는 구제역과 달리 ASF 바이러스는 체액 접촉으로 전파된다. 이 지독한 바이러스는 외부 환경에서도 오랫동안 생존했다. 어떻게 국내로 유입됐을지 분분했다. 음식쓰레기(바이러스에 오염된 고기)를 먹어서라고도 했고, 야생동물을 통해 북한에서 내려왔다고도 했고, 해외 교류 탓이라고도 했다. 바이러스는 어디서 묻어서 어떻게 퍼질지 완전한 추적이 불가능했다. 우리 돼지들이 전파의 불씨가 될 수 있었다. 남은 돼지를 서둘러 처리해야 했다.
역병을 막는 작업은 마치 전쟁과 같았다.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전선을 만들고, 축산 차량의 행적을 조사하고, 살균제를 살포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었다. 병이 발생한 지 100 년이 지났지만, 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백신이 있든 없든, 최선은 예방이다. 인간 세계의 방역과 달리, 가축 세계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살처분이다. 땅을 파서 전부 묻는다. 병에 걸린 돼지가 있는 축사의 3Km 반경 안 모든 축사의 돼지는 죽어야 한다. 돼지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같은 동물도 죽어야 한다.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친환경 축사라 하더라도 일괄 처분 대상이다. 전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야생 돼지를 통한 전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4개월 동안 야생돼지 2만 마리가 사살됐다. 덫이 놓이고, 사냥꾼이 투입됐다. 발생 1년이 지난 2020년까지 동서로 570킬로미터의 철책이 쳐졌다. 야생동물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다. 38선과 휴전선, 이후의 분계선은 바이러스 방지선이 되었다. 축산업계는 더 적극적으로 야생 멧돼지를 제거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얄궂은 멧돼지의 운명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첫 발병 2개월 뒤인 2019년 11월, 경기 북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저지선 한참 아래, 충남 홍성에도 의심 증상이 신고됐다. 한창 경계태세였던 이때, 이 소식에 모두 경악했다. 60만 마리. 홍성군은 남한에서 가장 많은 돼지를 사육하는 지역이었다. 발생 장소도 도축장이라니! 핵발전소 사고를 목도하는 것 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도축장은 하루 2천여 마리를 도축하는 시설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가축 이송 차량이 오고 갔다. 모든 것을 멈추고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당시, 전염을 막기 위해 돼지는 이동 금지가 되기도 하고 풀리기도 했다. 이동 금지가 길어질수록, 도축 시기를 놓친 돼지들이 많아졌다. 매일 적자가 누적됐다. 이동 금지가 풀리던 날, 도축장으로 돼지가 쏟아져 들어갔다. 폭발적인 병목 사태에 돼지끼리 ‘압사'를 당한 해프닝이었단다.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2011년 구제역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특히 안도했다. 살처분은 축산인, 비축산인 이 땅에 사는 모두에게 끔찍한 사건이었다. 안락사를 시켜 묻어야 하지만, 너무 많은 동물이다 보니 미처 다 죽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동물을 산 채로 묻어야 했다. 차출되었던 공무원, 군인 중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되기도 했다. 매립지도 문제였다. 동물은 해당 축사 부지에 묻어야 하는데, 밀식 사육시키던 것을 밀집 매장을 하니 사체가 썩지 않았다. 사체 침출수가 토양으로 유출되어 지하수가 오염되었다. 지하수에서 질산염이 검출되었다. 어느 곳의 지하수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알 수 없었고, 시골 마을에까지 상수도가 들어와야 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역사시간에 들었던 팬데믹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사실 가축 세계에 팬데믹은 이미 일상인 세상이었다. 돼지와 닭과 오리, 소 전염병은 계절마다 돌아왔다. 때마다 철마다 살처분은 반복되고 있다. 끔찍한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00만마리 살처분” “보상금” “농가 파산” 같은 뉴스가 나왔다. 축산기업의 주가는 뛰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바이러스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바이러스다.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인간과 동물 사이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한 전염병)의 출현이다. 코로나19, 메르스와 사스, 신종플루, 에이즈는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인수공통은 동물과 인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징표다. 미지의 바이러스 대다수는 야생에 있다. 야생이 인간에게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야생을 뒤흔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올 수밖에 없다. 97%라는 인간의 영역은 지금 이순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2000년 이후로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은 증가하고 있다. 과학은 돼지가 많은 면에서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을 밝혔다. 혈관계와 이빨, 심장, 피부, 소화계, 장기의 많은 부분이 닮았다. 우리는 염색체의 92퍼센트를 공유한다.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돼지는 인간의 이종 장기 이식에 가장 적합한 종으로 꼽힌다. 인간은 우리와 가장 유사한 동물을 한 공간에 밀집시켜놓았다. 그 공간이 바이러스가 증식하기에 최고의 상태라면, 병약한 동물이 친-바이러스 상태라면.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세계 구석구석에 진화 연구소를 선물한 것은 아닐까. 돼지는 야생과 인간 사이의 종간장벽을 넘는 징검다리 동물이라는 것을, 이미 인간과 일부 질병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