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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Oct 30. 2020

18. 도축 당일, 망치를 들고서

돼지를 부탁해

돼지와 함께한 지 두 달여, 나는 돼지들의 노예가 되었더랬다. 밥 얻어오기, 똥 치우기, 물 주기의 매일 반복. 사료 없이 길러보겠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키운 고기를 먹어보겠다는 ‘자급’ 같은 말, 세상 참 멋진 말이었지. 어느 날은 파리떼가 꼬이고, 어느 날은 돼지가 탈출하고,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아이고 돼(뒈)지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 마리 중 누굴 먼저 잡아야 할까. 고민이 됐다. 내게 불안감을 주는 덩치 큰 대장 돼지가 1순위였다. 돼지우리 안에 들어가면 내 뒤를 따라오던 대장. 거친 숨소리와 입에 물린 거품. 덩치 큰 동물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등 털을 빳빳하게 세우는 것이 반가워서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내 등털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다른 돼지들 귀를 물거나 밥그릇을 독차지하는 깡패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괘씸한 감정으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현실의 문제가 있었다. 암퇘지가 새끼를 낳으면 곤란했다. 돼지들이 짝짓기를 했다. 새끼를 받아 돼지 키우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돼지를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다. 게다가 같은 형제끼리의 교배는 열성 유전을 낳는다. 암퇘지는 덩치가 작아 항상 치였다. 맛있는 밥도 많이 못 먹었다. 다른 형제들이 먹고 남은 밥을 먹어야 했고, 워터파크도 다른 돼지들 후에 즐겨야 했다. 먼저 보내게 되어서 미안하다.  


암퇘지가 제일 작다고는 했지만 나보다도 컸다. 동물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큰 동물 작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을 어른들도 돼지 잡기는 여럿이 모여서 한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큰 일을 앞두고 잡는다. 오랜 시간을 잡아온 덕인지 알아서 각자 역할을 맡는다. 뼈 담당은 알맞은 크기로 뼈를 자른다. 고기 담당은 사료포대를 크게 펴놓고 그 위에 큰 덩어리로 턱턱 잘라낸다. 내장 담당은 내장의 안과 밖을 골고루 씻는다. 부녀회는 요리를 담당한다. 국밥을 끓이고 수육을 삶는다. 물론 돼지의 생명을 거둘 땐 모두가 숙연하다. 불을 피우고 술 한잔 마시면서 긴장은 풀어진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윷을 던졌다. 어르신들은 수육을 먹었다.  


잔치의 흥분 속에 돼지 한 마리가 어느새 뚝딱 사라진다. 마을에서의 돼지 잡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칼에는 일말의 고민이 없었고 작업 지시도 없다. 모두 제 역할을 안다. 정육 솜씨 감탄에 나이 칠십의 어르신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다. 당일에는 조금 먹고, 대부분은 냉동을 시킨다. 뼈를 삶아 먹고, 국물을 내고 노인회의 긴긴 식량이 된다. 마을 행사는 둘러앉은 상이 된다. 


돼지를 잡기로 한 날로부터 몇 주 전, 사실은 돼지를 데려오던 날부터 돼지 잡는 일은 큰 부담이었다. 한숨이 쌓이고 쌓여 머릿속은 복잡했다. 몇 번이고 돼지 잡는 날을 상상하고 필요한 도구를 챙겼다. 칼을 갈았다.  


아침 6시.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 돼지우리에 간다. 안개가 피었고, 풀섶에는 이슬이 내렸다. 고요하다. 잠이 덜 깬 새벽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풀을 헤쳐 가는 장화가 이슬에 젖는다. 아직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벽에 서서 돼지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온 건 처음이다. 이미 깨어있던 돼지들도 나를 본다. 어리둥절한 돼지들은 밥을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어제 암퇘지를 묶어둔 밧줄은 다행히 풀리지 않았다. 돼지는 얌전히 발에 밧줄을 감고 있다. 안갯속에서 돼지들은 가만히 엎드려 있다.  


벽을 넘어 우리로 들어갔다. 우선 다른 두 마리를 격리시킨다. 밥을 미끼로 철장으로 끌고 들어간다. 밖에서 일어날 일을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암퇘지도 따라 들어가려고 한다. 어제 낮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플 것이다. 얼른 문을 닫는다. 철컹. 들어간 돼지도 밖에 있는 돼지도 어리둥절이다. 문을 사이에 두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했다. “꿀꿀.”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암퇘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두 돼지는 밥에 집중한다. 


어제 미리 준비해둔 중 망치를 들어본다. 중 망치 머리의 무게는 1파운드. 길이는 40센티미터. 망치의 운동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에 질량을 곱한 값. 손잡이가 길수록 망치의 속도는 빨라진다. 망치의 힘은 머리 무게보다는 길이에 더 영향을 받는다. 힘만큼 중요한 건 정확도. 너무 길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더 크고 무거운 오함마가 아닌 중 망치를 선택한 이유다. 이것도 무겁긴 마찬가지지만. 


돼지 앞에 선다. 이제 우린 이별이다. 내가 마무리 짓고 싶었다. 주변 누구도 내가 잡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잡는 부담감에 옴짝달싹 할 땐, 동네 아저씨에게 부탁할까 싶기도 했다. 아저씨는 아무 부담이 없어 보였다. 언제든 연락만 하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나를 돼지 앞으로 밀어놓은 것은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돼지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먹을 사람으로서 직접 잡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돼지 잡는 일의 어려움이 어디로 가겠는가. 힘든 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옆에 선 것만으로는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 무게인지 알고 싶다. 남의 살을 먹는 일, 그러니까 생명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그동안 너무 쉽게 살았다. 


도축에 ‘윤리’라는 말을 써도 되는지 궁금하다. ‘유기축산’이나 ‘동물복지’도 결국 사람 중심의 표현이 아닐까, 죄책감을 덜기 위한 위안은 아닐까. ‘키웠으니 먹혀라’라는 계약은 정당할까. 물론 유전자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식용 동물은 지구 상에 가장 번성한 종으로 측정된다. 경제 동물이 늘어나는 만큼, 야생 동물 수는 극적으로 줄었다. 다르게 말하면 돼지의 유전자가 인류를 이용하여 번성하였다. 어느 유전자보다 성공한 돼지 유전자. 유전자의 관점으로만 이 계약을 정당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캡틴 H가 왔다. 이제 시작이다. 돼지가 방심하는 순간 내리쳐야 한다. 한 번에 기절시키지 못하면 낭패다. 돼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망치를 치켜든다. 조용히 심호흡을 한다. 들숨은 길게, 날숨은 짧게 한다. 정수리다. 이마 위를 정확하게 내려칠 수 있는 때를 기다린다. 아직, 아니, 아직이다. 돼지 스스로 대줄 리 없다. 움직임 하나하나 미세하게  따라간다. 이때다. 숨을 멈춘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신경이 끊어진 듯,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애초 내려칠 마음이 없던 건 아닐까. 함께한 시간이 떠올랐다거나, 추억 같은 감정 때문이 아니다. 저항의 정체는 살아있는 생명을 망치로 때린다는 것이다. 곤충을 죽일 때 어렴풋이 느끼는 거북 함이다. 나와 비슷한 생명체를 마주할 때의 감정. 그것을 해친다는 것에 대한 거북함. 너무나 큰 거북함이 나를 압도한다. 망치를 내려칠 수 없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리 줘. 내가 때릴게.” 보고 있던 캡틴H가 말했다. 가슴이 탁. 긴 숨을 토한다.  


캡틴H의 망치에는 흔들림이 없다. 경탄스러움 마저 느낀다. "꾸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퍼진다. 돼지는 쓰러지지 않았다. 도망가려 했다. 나는 다리를 묶고 있던 줄을 짧게 잡는다. 빨리 가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캡틴H는 더 힘 있고 빠르게 망치질을 한다. 세 대, 네 대, 돼지 코에서 피가 나온다. 일곱 대를 맞고서야 쓰러졌다.  

"어? 캡틴, 죽은 거 같은데..." 기절까지만 시켰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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