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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ug 28. 2020

언제까지 밥을 먹여줘야 하는 걸까

자가격리 일지 - 6~8일 차

8월 23일 (일) ~ 8월 25일 (화)


자가격리 기간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꼽아보라면 단연 아이 밥 먹이는 일을 얘기할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자가격리 대상자는 혼자 따로 밥을 먹어야 하지만, 당사자가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와 함께 앉아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아이가 스스로 밥을 잘 먹으면 식사 시간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을 다. 그런데 언제부터 습관이 잘못 든 건지 식탁에만 앉으면 가만히 앉은 채 허공을 멍하게 바라보거나 몸을 배배 꼬며 장난을 치고 먹기 싫다는 티를 잔뜩 낸다.


밥 좀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수저를 손에 드는 건 5~10분에 한 번 정도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반찬이 있으면 잘 먹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조금 낫긴 하지만 느릿느릿 수저를 드는 건 매한가지다.


아이의 이런 행동이 다른 무엇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걱정이 돼서다. 지금이야 내가 육아휴직을 한 상태니, 아내와 나 모두 출근할 때만큼 전쟁을 치를 일이 없지만, 내년에 내가 복직을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출근 준비하랴, 아이들 밥 챙기고 씻기고 옷 입혀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까지 하면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그 와중에 아이가 지금처럼 밥을 먹여줄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면 아침 식사는 거르고 집을 나서야 할 게 뻔하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이다.


식사 습관이 고쳐지지 않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린이집이나 향후에 가게 될 유치원, 학교에서도 시간 내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굶을 것만 같다. 그리고는 허기가 져서 좋아하는 과자, 빵, 초콜릿, 젤리들로 배를 채우겠지. 세 살 버릇도 여든까지 간다는데 다섯 살 버릇은 오죽하랴.


예기치 않게 자가격리 상황에 놓이게 돼 답답했지만, 아이와 삼시 세 끼를 무려 2주 동안이나 함께 해야 하는 건 어찌 보면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아이의 행동을 더 관찰할 수 있고, 그러면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며칠 동안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사실 이번 격리 기간 처음 시도해본 것들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반응이 어떤지 평소보다 더 유심히 지켜보려 했다는 데 차이가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대실패였다. 식사 시간을 정해놓고 아이가 얼마나 먹었든 상을 치우는 것, 좋아하는 반찬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 한번씩 먹여주되 두세 번은 꼭 스스로 먹게 하는 것, 당장 밥 생각이 없어 보이면 배가 고프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등 내 머리로 떠올릴 수 있는 건 다 해보았지만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숨만 푹푹 나왔다.


이럴 때 아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싫은 소리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제일 어렵다. 첫째가 식탁에 앉아 밥 먹는 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사실 계속되는 부모의 잔소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육아 중 마주하게 되는 많은 상황들이 그렇듯이, 이것 또한 머리로는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아는데 막상 그때가 되면 몸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일 중 하나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밤에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서 초록색 검색창에 '다섯 살 식사 습관'이라고 입력한 뒤 여러 게시글들을 살펴보았다. "다섯 살 아직도 밥 먹여 줘야 하는데 이런 분 있으신가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 맘 카페에 올라온 글이었다. 본문 내용은 짧았지만 두 아이 엄마의 답답한 심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스무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혼자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부터 7살, 심지어 9살인데도 가끔은 먹여준다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들 힘들게 키우는구나' 싶어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위로가 됐던 댓글은 이거였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입에 떠먹여 줄까 싶어서 일부러 먹여줘요^^"


이 글을 보고 '그럼 나도 이제 그냥 먹여줘야겠다!'와 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는 얘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언제까지 먹여줄 수 없고, 슬슬 스스로 먹기 시작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댓글에서 그 어떤 부정적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아이에게 맞춰준다'는 느낌보다는 '원칙을 정하고 그것에 따라 아이를 대할 때에는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어떤 원칙을 정하고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할까. 당장 떠오르는 건 없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가격리 일지]

 *1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1

https://brunch.co.kr/@heopd/162

*2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3*

*3, 4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4

*5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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