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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ug 31. 2020

다섯 살 아이에게는 너무 힘들었던 기억

자가격리 일지 - 9일 차

8월 26일 (수)


1.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첫째의 코로나 재검 일정과 자가격리 해제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검은 다음 날인 목요일, 격리 해제는 그다음 날인 금요일 낮 12시 예정이었다. 물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을 때의 얘기지만.


자가격리 기간이 2주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11일 차에 격리 해제 조치가 될까 하고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내가 일수를 잘못 계산하고 있던 거였다. 아이가 자가격리 대상으로 지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건 월요일 늦은 밤이었고, 1차 검사 결과를 들은 것도 화요일 오전이었기 때문에 18일 화요일을 자가격리 1일 차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자가격리 기간은 확진자와의 최종 접촉일로부터 2주를 잡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까 첫째의 경우 8월 14일 금요일이 마지막 어린이집 등원 날이었으니 그로부터 2주가 지난 8월 28일 금요일이 자가격리 해제 날이 되는 거였다.


(오류를 바로 잡아 글을 수정하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어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자가격리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드리는 건 아닌지 우려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ㅠ)


어쨌든 기나긴 격리 기간의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장난치고 집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녀도 이전보다는 너그럽게 대할 수 있었다. 힘들어도 많이 놀아주려고 노력했고 첫째가 말도 안 되는 떼를 부려도 최대한 좋게 구슬리려 애썼다.




2. 첫째에게 다시 한번 다가온 고통의 시간


코로나 재검을 앞둔 첫째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다시금 커졌다. 코로나 진단 검사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주사를 맞는 것만큼 무서운 것일 수 있다. 긴 면봉을 코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어 시료를 채취하는데, 그건 어른들조차도 힘들어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아본 적도 없고 아이가 검사받는 걸 직접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수개월 전 둘째가 독감 검사받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떠올려 보면 그게 코로나 검사와 동일한 방식이었다. 당시 둘째도 몸을 뒤틀며 매우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첫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첫째뿐만 아니라 함께 검사를 받으러 온 어린이집 아이들 모두 그랬다고 했다. 하나같이 너무 아파하면서 울고 소리를 질러서 어린이집 앞에 임시로 설치된 검사소가 아수라장이었다고. 그걸 지켜보는 아내도 긴장이 돼 온몸이 벌벌 떨렸단다.


아이에게 힘든 일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첫째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평화롭게 지내다가 갑자기 큰 고통을 다시 한번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하루 정도는 앞서 미리 예고를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첫째가 싫어할 줄은 알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거부 반응을 보였다. "내일 검사 한번 더 받으러 가야 해"라고 얘기를 들은 것만으로 1차 검사 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해시킬 수 있을까. "검사를 받아야 밖에 나갈 수 있다", "검사받지 않으면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라며 우는 아이 앞에서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첫째는 "그래도 싫어"라는 말만 반복했다. 힘없이.


이제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인데. '생각만으로도 힘든 기억'이라는 게 벌써부터 생겨버린 걸까.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100명이 넘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 나아가서는 전 국민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는 거다.


언제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수 있을까. 종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고 약자 중 하나인 어린아이들 만큼은 더 이상 코로나의 위협에 노출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가격리 일지]


 *1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1

https://brunch.co.kr/@heopd/162

*2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3*

*3, 4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4

*5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5

*6~8일 차

https://brunch.co.kr/@heopd/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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