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소꿉놀이는 그 아이 의식세계를 보여준다. 단란한 가족 모습의 인형놀이는 아이가 평소 부모로부터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거나 아니면 보고 싶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 이 그림책에서 베른트가 딱 그런 상황이다. 아이의 감정은 두 인형에게 투영되어 있다. 슬프도록 냉정하게.
가끔씩 베른트는 남몰래 보보와 도도를 가지고 놀아요. 무얼 하고 노느냐 하면요, 둘을 결혼시키는 거예요.
여자와 남자는 당연히 사랑했기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 그 이후 누구나 맞이하는 가정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부부는 서로를 아끼고, 무럭무럭 아이는 자란다.
그런 삶이 영원히 지속되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도 모르지 않던가. 슬프게도 사랑은 식게 되고 서로를 실망하게 되며 그래서 싸울 일은 더 많아지게 된다.
더 이상 참을 수도 견딜 수도 없게 될 때 여자와 남자는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이혼은 둘이 행한 일이기에 어쨌든 힘들어도 여자와 남자는 당연히 감당할 일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의 전부였던 두 사람이 벌인 일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베른트의 엄마 아빠도 오래 전에 결혼해서 쭉 함께 살았어요.
베른트의 가족 앨범에는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과 결혼사진까지 즐비하다. 베른트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행복한 순간까지 생생하게 앨범은 전하고 있다.
앞뒤로 나란히 서서 서로 등을 밀어주며 경사진 산을 오르는 사진에서는 너무 애틋하다가도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끔찍이도 위하며 살기도 했었는데 어쩌다 이별을 선택한 것일까.
엄마, 모든 게 예전하고 달라졌어요.
마음이 서서히 변하는 엄마 아빠를 베른트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본다. 잠깐의 일이겠거니 현실을 부정해보지만 예전 같은 다정한 일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빠가 떠난 빈자리를 보며 홀로 식탁에 앉아 있는 베른트의 뒷모습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아이의 마음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맞닥뜨린 현실에 베른트는 분노하고 변화된 일상을 부정하며 혼돈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부모에게 못하는 화풀이를 인형에게 하고 혼자가 된 엄마에게 다정하다가도 반항을 부리기도 한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보다 베른트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렇게라도 감정을 표현했던 것은 다행인 것 같다. 그래야 아이도 다음 단계의 감정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엄마와 아이는 달라진 삶에 그렇게 서로 홍역을 치른다.
엄마 아빠랑 알프스에 갔을 때 찍은 거예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기 사셨거든요.
하지만 여전히 베른트는 때때로 슬퍼져요. 슬플 때면 제 방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어요. 베른트는 아빠를 사랑해요. 그리고 엄마도 사랑해요. 그런데 왜 아빠 엄마는 서로 사랑하지 않을까요?
이 그림책은 이혼하는 부모를 지켜보는 아이의 감정을 담담히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다시 사랑하게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책 속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가운 현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베른트는 2주마다 만나는 어색하고 불편했던 아빠의 새로운 집에서도 점차 적응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위로하는 방법도 찾는다. 부부는 그렇게 서로 뒤돌아섰지만 아이는 아픔을 간직하며 커간다.
이 그림책은 누가 보면 좋을까. 이혼을 앞두거나 한 엄마 아빠? 아니면 그 상황을 겪은 아이? 전자의 어른이라면 아이 입장에서 바라본 시선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아이라면 자기 마음을 똑같이 대변하는 베른트라는 독일 친구를 만나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엄마 아빠가 다시 만날 상상을 하겠지만, 베른트가 어서 더욱 굳건해지고 마음을 추스르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너의 탓이 아님을 꼭 기억하길 바라며, 기특한 베른트를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