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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묘한거야

: 두 사람

by 윌버와 샬롯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난생처음으로 절교라는 것을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내게 심한 말을 했다. 믿었던 친구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나서 난 처음으로 '모욕적이다'라는 기분 뭔지 알았다. 그 일에 대해 그 아이랑 어떤 대화를 나눴던 기억은 없다. 그녀 앞에서 화를 낸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속으로만 분노를 느꼈고 더 이상 그 아이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으로 그 친구와는 끝이었다. 그것만이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동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랑은 이후에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에서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아직도 그녀의 이름과 얼굴은 또렷이 기억난다. 모욕이라는 감정을 내게 알게 한 사람. 어쩔 줄 몰랐던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직도 내 가슴 한편에 여전히 두근두근 남아 있다. 그 날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나의 첫 좌절 순간이기도 했다.


이 그림책은 이처럼 내가 만난 여러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작가도 분명 그럴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어떤 두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 두 사람은 엄마와 딸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고, 남매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일 수도, 남편과 아내일 수도 있어요.
함께하는 두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내 곁의 여러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난 얘기해보려 한다.



두 사람은 열쇠와 자물쇠와 같아요.


그녀는 여전히 나의 친구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무리가 오래도록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오래된 친구 집단이다. 사는 곳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우리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나고 여행도 다닌다. 모두가 무난히 살고 특별한 일 없이 서로 배려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사는 곳이 멀고 아이 키우며 살아가는 녹록지 않는 뻔한 일상으로 시시콜콜 서로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무관심과 관심이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난 그중 한 친구에게 항상 속상해 있다.


그녀는 내게 먼저 연락한 적이 없다. 언제나 친근하고 유쾌하게 응답은 하지만 그녀가 먼저 내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한 적은 없다. 성격일 수 있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바쁜 일상 때문일 수도 있다. 워킹맘으로서의 하루하루가 그리 만만치 않음을 안다. 그러나 난 그녀와 때때로 그런 어렵고 힘든 일상과 마음을 교류하며 살고 싶다.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럴 거라고, 바빠서 그럴 거라고, 마음이 고단해서 그럴 거라고 섭섭한 마음을 내내 그렇게 나는 스스로 다독였다. '시간이 좀 지나고 편해지면 나한테 마음을 열 시간을 주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서로에 대한 정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소통의 부재로 점점 더 얕아지고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 친구에게 좋은 소식도 슬픈 소식도 그 어떤 것도 난 알지 못하며 그렇게 어쩌다 일상적인 인사나 하는 관계일 뿐이다. 우리는 친구이긴 한 걸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직장동료들과도 그 친구는 이렇게 나에게처럼 무심할까. 아니면 그녀는 나를 그저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나를 궁금해하지 않으니 정황을 단순하게 보자면 그거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 말고도 나머지 멤버에게도 일관되게 무심히 대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누가 먼저 연락하는 게 그리 중요한 문제인지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사랑도 그렇지만 우정도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게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명목상의 오래된 친구. 우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렇고 그런 사이. 만남이 한참 짧은 동네 친구보다도 못한 사이. 현재로서는 우리가 그렇다.


서로의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유대하며 살고 싶은 내 소망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인생 뭐 있어?' 하며 그저 서로 챙기며 살고 싶은 내 바람은 정말 내 바람일 뿐이다. 누군가는 오지랖 많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마음을 친구에게 강요할 수 없지만 야속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소중한 친구와 데면데면 사는 것이 난 속상하다.


그러나 나 또한 약간은 그런 사람이 아니던가. 미주알고주알 주변 사람에게 내 얘기를 잘하지 않고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이웃과 가족과 친구와 가끔은 유대하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이다. 어쩌면 내게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나보다 더 친한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분명 그 친구에게도 좋았던 날, 속상한 어떤 하루가 있을 텐데 그때 어째서 내가 생각나지 않았는지에 못내 슬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론은 난 다 갖고 싶은 욕심 많은 사람인 거다.


결국 난 또 먼저 연락하겠지. 잘 지내지 하고. 먼저 연락해 속은 또 들끓겠지만 친구의 아무렇지 않은 밝은 목소리에 또 한동안은 우정을 유효하겠지.


두 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아요.


화성에서 온 그, 금성에서 온 그녀


두 사람 이야기에 부부가 빠질 수 없다. 남편과 나는 종종 싸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안나 카레니나' 소설 속 첫 문장에 빗대자면 우리가 싸울 때의 이유도 언제나 비슷하다.


서로의 좋은 점만 보다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결혼하고서 서로의 싫은 점을 발견하지만 둘은 살면서 하나도 그것을 고치지 못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인 보다.


하지만 두 섬의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화산, 자기만의 폭포,
자기만의 계곡을 가지고 있답니다.


결혼하면서 나는 이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겼어야 했다.


서로 좋아 만나고 늦은 밤까지 헤어지기 싫어 결혼했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 모양이 다른 섬에 살고 있었던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가.


상대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주야장천 핏대 세우며 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나는 자기만의 화산과 폭포와 계곡을 가지고 있으니 들어먹힐 일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그것을 인정하고 포기했어야 했는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어서야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는 나는 참으로 많이도 느리고 미련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내 결혼생활은 평탄하고 온화해지는 걸까. 기대는 그렇지만, 두고 볼 일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한쪽으로 나 있는 두 창문과 같아요.


우리에게 단지 그 한마디가 문제였을까


또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 한다.


오래된 모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그분이 내게 부탁을 한 게 있었는데 나는 달갑지 않은 부탁이라 에둘러 거절을 했었다. 그 말이 그녀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건 한참이나 지나 당사자 그녀의 고백으로 알게 됐다.


그녀는 내게 말하기 전까지 다른 핑계를 대고 한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았었다. 이유를 알고 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나도 꽤 마음고생이 심했었다. 아니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불쑥불쑥 그때의 마음이 떠오르고 못난 나와 마주하게 돼 힘들다.


불편했던 부탁에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거절을 했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했고 그녀도 이해를 하는 듯했지만 서로가 원래의 사이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무난하게 감정을 정리하며 그렇게 우리 둘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헤어졌다. 그러나 난 그녀의 카톡을 목록에서 숨김으로 전환해야 했다. 그녀가 거기에서 보일 때마다 내 못난 치부가 드러나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왔다. 지우고 싶었다. 잊고 싶었다.


어떤 모임이든 간에 부침은 있기 마련이라며 내게 위로한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거기까지밖에 안됐던 내 자신을 오래도록 들어다 보게 했다. 그 사람과의 인연이 원래부터 나와는 거기까지였을까. 단지 내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문제였을까.


친하다해서 말을 너무 쉽게 편하게 했던 것.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두 사람은 마치 두 개의 시계 같아요. 나란히 서서 같은 시간을 견뎌 가지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첫인상은 별로 였는데 겪다 보니 참 좋은 사람도 있었고,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뒤통수를 쳤던 사람도 있었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를 슬프게 한 사람도 만났고 나름 조심스럽고 예의 차리며 산다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남을 슬프게 한 때도 명히 있었다. 모르는 틈에 나는 상처 받고 동시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이를 먹는다 해서 모두가 현자처럼 삶의 지혜를 얻는 것 같지는 않. 그러나 적어도 내게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자제심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자세히 봐야, 오래 봐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시 있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는 어쩔 때는 오래 봐도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니 사람은 상대를 대할 때 풀꽃을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그나마 실수를 덜하지 않을까.


묘한 일러스트로 자꾸 곱씹으며 보게 되는 이 그림책은 복잡다단한 사람과의 사이를 아래 글로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


그래, 이 말이 딱이다.


쉽고도 어려운 것.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사람과 만날 것이며 풀리지 않는 자물쇠가 되기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낙담하지 말자. 어차피 그건 그렇게 묘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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