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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의 숨은 이야기

: 슈퍼 거북 + 슈퍼 토끼

by 윌버와 샬롯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것,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자의 승리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다. 기득권에 대한 승리를 이루어낸 듯 주변인은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우리에게 특히나 뜨거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솝 우화 중 한 편인 '토끼와 거북이'에도 스페인과 한국의 한일월드컵 8강전이나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처럼 허를 찌르는 한방의 역전극이 있다. 빠르기라는 비교우위에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토끼와 거북이가 붙었다. 그러나 웬걸 거북이는 토끼를 보기 좋게 이겨버린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와.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


자고 있는 토끼를 보고도 깨우지 않고 그냥 지나간 거북이를 공정하지 않다고 평가하는 세간의 목소리가 있긴 하다. 그러나 승부를 가르는 경기이지 않았는가. 토끼가 열심히 경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그런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상대를 얕보고 방심한 토끼를 깨울 의무가 거북이에게 과연 있을까. '토끼와 거북이'는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는 교훈을 남기기에 손색없는 우화인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함정이 하나 있다. 옛이야기는 한쪽 이야기만 들려주고 해피엔딩으로 보통 끝난다. 거북이는 토끼를 이긴다. 그리고 끝. 뭔가 좀 허전하긴 하다. 악당은 응징당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해피엔딩으로 드라마는 마지막 회를 장식한다. 그 후 주인공은 행복하게 정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자세하게 그의 기쁨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데 드라마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하고 그만 아쉽게 끝나버린다.


그럼 거북이의 그다음 일상은 어땠을까? 토끼는 거북이가 느리다고 다시는 놀리지 않게 됐을까? 당신은 그것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정말 없는가? 여기 유설화 작가는 그 질문에 유쾌한 답을 그림책으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작가에게 그럼 토끼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한다. 그렇지. 양쪽 얘기를 모두 들어봐야 누가 진짜 잘했고 못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여태 거북이 편만 들었으니까.


경주에 이긴 거북이 꾸물이는 스타가 됐어.
경주에 진 토끼 재빨라는 웃음거리가 되었어.
이번 경주는 무효야! 하지만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지.
온 도시에 슈퍼 거북 바람이 불었어.
'괜찮아,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재빨라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어.


거북이의 승리로 세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스타는 사라지고 새로운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토끼를 추종했던 동물들마저 등을 돌린다. 아무도 토끼의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는다. 민심이란 참 얄궂고 치사한 것이다. 잠깐 눈만 부쳤을 뿐인데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다니, 토끼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외로운 패배자가 되는 건 그렇게나 순식간이었다.


그렇다면 거북이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놀림받은 게 속상해 토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거북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이겼다. 자신만만하고 뿌듯한 삶을 앞으로 살게 될 거라는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한번 솔직히 따져 보자.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다 해서 거북이가 토끼보다 느리다는 것, 아니 달팽이 빼고 어지간한 다른 동물들과 견주어도 거북이는 빠른 동물이 아니라는 게 사실 아닌가. 토끼의 방심이라는 기회를 발판 삼아 승리했지만 그렇다고 거북이 본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꾸물이는 동물들이 실망할까 봐 걱정이 됐어.
빨라지는 방법이 나온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지.


그러나 이미 대중은 더 이상 느린 거북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영웅이 그 자리에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랄 뿐이다. 거북이는 자신을 우러러보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빨라지기 위한 온갖 훈련에 돌입한다. 반면 토끼는 자신을 버린 세상에 실망해 다시는 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거북이는 빠르게 살기 위한, 토끼는 빠르지 않기 위한 일상을 살게 된다. 서로 다른 둘의 선택은 공교롭게도 같은 결말에 도달한다. 그 과정이 둘 다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사실...... 꾸물이는 너무 지쳤어.
무엇보다 예전처럼 천천히 걷고 싶었어.


하지만 재빨라의 머릿속은 온통 달리기 생각뿐이었어.
딱 한 번만이라도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지.


본질은 속도가 아니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인데 대중은 핵심을 놓쳤다. 포기하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달렸던 거북이의 근성을 높이 사야 했다. 그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속도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자만하여 생애 첫 좌절을 맛봤을 토끼에게도 그렇게나 모두가 뺑 등을 돌려서도 안됐다. 변명일지라도 하소연하는 그의 말을 들어줬어야 했다. "뭐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하며 가볍게 어깨라도 톡톡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다독여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재빨라가 그렇게까지 자포자기하며 배불뚝이 토끼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흔히 모든 선택은 본인의 자유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따라 하고 나서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면 그건 잘 따라 한 거다. 그러나 무언가를 따라 하고 나서도 만족이 안 되고, 또다시 따라 할 것을 찾고 있다면, 한 번쯤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

: 그림책에 흔들리다, 김미자


그랬다. 토끼와 거북이는 좌절했고 나름의 따라 하기 노력을 했다. 정말 빨라지기 위해 혹은 정말 느려지기 위해 거북이와 토끼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 따라 하기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다 해서 그 과정이 '헛된 시간이었다'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진짜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 않았나. '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보다 존경스러울 뿐 아니라 더 유용하다'라고 버나드 쇼가 말했다. 토끼의 실수와 만회 그리고 거북이의 용기 있는 도전은 그러니 매우 유용했으며 존경스러운 것이다. 결국 이 둘 모두는 승리자다!


재빨라는 달리고 또 달렸어. 숨이 턱에 닿도록 말이야.


나만의 속도에 맞춰 삶을 즐기는 것이란 무엇일까. 토끼는 눈썹이 휘날리게 신나게 달리는 것. 거북이는 길가 꽃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가는 것. 뛰느라 지쳐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다 꽃향기를 맡을 수도 있는 토끼가 되는 것. 어느 날은 느림에 진저리가 나 잠시 잠깐 운동에 매진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북이가 될 수도 있는 것. 본성은 가지되 우리는 살면서 꾸준히 곁눈질하며 동경하는 타인을 모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다시 우리는 자신으로 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꾸물이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지.

재빨라의 두 눈에 파란 하늘이 가득 담겼어.
싱그러운 풀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살랑대는 바람이 털끝을 간질였지.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뛰고 있었어.


지옥 훈련을 하고 정말 빠른 거북이가 됐음에도 토끼와의 재경기에서 거북이는 지고 만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거북이는 단잠을 잔다. 이제야 무거웠던 짐을 모두 벗었다는 듯이. 거북이는 꽃에 물을 주고,에서 천천히 물장구치며 수영하고, 걸어가다 길가의 꽃향기를 맡고, 해먹에 누워 책을 보다 낮잠을 잔다. 토끼는 또 어땠을까. 이제는 빨리 달리는 자신의 장점을 으스대지 않고 남을 돕는 데 사용할 줄 아는 현명한 토끼가 되었다. 어떤 악당도 없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진정한 해피엔딩이다.


옛이야기를 유쾌하게 재구성하고,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후작도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유설화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그림책은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봐야 한다. 그림책 곳곳에 작가의 다른 그림책 깨알 홍보가 엿보인다. 대놓고 홍보하는 TV 드라마 PPL을 보는 것만큼이나 웃기면서도 귀여운 장치이다. 여러 동물 캐릭터가 두 권의 그림책에 걸쳐 각자의 목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듯 느껴질 정도이다. 그중 끝까지 토끼를 응원하는 너구리가 내겐 단연 눈에 띄었다. 너구리는 거북이에게 진 토끼에게 실망은 했지만 그렇다 해서 거북이를 남들처럼 따라 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석에서 '느림보 거북' 팻말을 끝까지 들며 속상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비록 너구리 자신이 출전한 달리기 대회에서는 '슈퍼 너구리'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뛰긴 하지만 결코 토끼를 배신하지는 않는다. 그런 단 하나의 팬의 존재로 어쩌면 토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 모른다. 토끼는 진정한 팬심을 보여준 너구리에게 진심 고마워해야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는 홈 어드밴티지는 있었을지라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거라 생각했던 유럽의 강호와 상대해 기적을 이루었었다. 그 일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이후 박지성 그리고 손흥민이 세계무대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세상을 뒤집어놓는 패기의 꾸물이, 한 번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빨라. 곳곳에 존재할 우리 모두의 꾸물이와 재빨라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무야호!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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