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May 28. 2024

고추 줄을 묶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돌풍을 동반한 강한 비가 예보되었다. 어느 지역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날씨라 바람이 분다고만 하면 초비상이다.


별 해줄 것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아이들에게 퍼부어 준다. 마음과 손길이 농부가 줄 수 있는 전부다. 크는 것은 저희들이 알아서  커야 한다. 심은지 일주일 밖에 안된 작은 고추는 제법 탄탄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는 줄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부러지지도 않고 뽑히지도 않고 어느 한 녀석 탈락자도 없다. 강풍이 불면 톡 부러질까 마음이 급하다.


쇠파이프를 띄엄띄엄 박고 밭고랑의 첫 말뚝과 마지막 말뚝을 플라스틱 줄로 연결해 준다. 그리고 고리를 하나씩 걸어 고추를 지지해 준다.


건강하게 키운다고 농약이며, 화학 비료를 일절 주지 않는다지만 검정 땅이며, 기대 놓은 검정 플라스틱 줄 하며 어느 것 하나 미안하지 않을 것이 없다.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키우고픈 마음이지만 너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해해 주겠니?


줄을 매 놓고 나면 플라스틱 고리에 목을 매달고 바람이 불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또 목이 부러질까 걱정이다. 농부의 근심, 걱정은 마를 날이 없다. 자식을 키우는 마음과 정말이지 비슷하다.


강풍이 위협적인 우리 밭은 올해 고추 줄을 묶지 않기로 했었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고추 그물망으로 바람을 견뎌보기로 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은 모두 그걸 쓴단다. 농사를 인터넷으로 배우는 남편은 신기술 도입이 빠르다. 신기술인지 장사의 기술인지 매년 고추 묶는 줄이 바뀐다.


작은 키의 아이들은 키가 클 때까지 어쩔 도리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검정 플라스틱 줄에 묶어 놓았다. 잘 버텨주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 바람은 안 불었다. 한 주 안심하고 지내도 되겠다. 다음 주엔 고추망을 꼭 씌우기로 했다.

고추는 안전하다.

안 먹는 노란 꽃이 만개했다.

심지도 않았는데

정성도 마음도 안 주었는데

이다지도 잘 크다니


감자꽃이 많이 피었다.

생강 싹이 올라온다.

이전 11화 허약이 농부 아낙의 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