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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14. 2024

5월의 들녘에 서서

고추밭 거름 뿌리기

5월의 들녘에 여름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지난주 비가 그립다. 태양을 가려줄 창이 넓은 모자가 해를 가려주고 머리 온도도 좀 낮춰주기를 바란다.


풀을 깎다 커다란 뱀 두 마리를 보았다는 소식을 농부 아빠에게 전해 들었다. 예초기를 집어던지고 포클레인을 집어 탄 농부 아빠가 밭 가장자리 풀을 정리한다. 하천에서 올라오는 끈질긴 풀의 생명력은 강력하다. 밭 둘레에 미니 굴착기 바퀴만한 길을 낸 다음에야 밭에 들어간다. 농부 아낙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강력한 고무장화를 신었다. 농부 아낙에게 까만 고무장화는 필수템이다.


이번 주 노동은 고추밭 거름 뿌리기. 제초 매트와 점적 호스를 걷었다. 다시 깔아야 하니 잔머리를 굴려 두 골 양쪽의 고정핀을 뽑은 다음 중간 골로 모아놨다. 점적 호스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거름을 뿌리고 미니 관리기로 흙을 곱게 한 번 쳐 준다. 점적호스 두 줄을 가지런히 놓고 물을 틀어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한다. 제초 매트를 다시 덮어준다. 네 고랑 하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 생산성이 꽝이다.


옆집은 장비가 들어와서 하루 만에 뚝딱뚝딱 잘도 하더구먼. 일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장비가 해야 한다.


밭에 나가 한참 있으면 금세 위쪽 뒷다리가 당겨온다. 몸이 느릿느릿 활동을 시작하며 소리를 친다. 아이고야. 이쯤 되면 농사일을 왜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남색 모자, 까만 땀복 같은 잠바, 까만 장화를 해 신고, 까만 제초매트를 걷으며 생각한다. 까만 투성이 들녘에서 땡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무얼 하는가? 답을 구해도 답은 안 나오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말라온다. 이때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고마움이다. 땀을 씻어주는 골바람이 불어온다. 투덜대며 들녘에 나가는 이유는 이 바람을 맞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하얀 꽃 아카시아향이 흐드러진 까만 밭. 뻐꾸기가 벌써와 뻐꾹거린다. 새들은 확성기를 목에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목청 좋네. 이 노래를 들으려고 밭에 나오는지도 모른다.


허리를 펴고 둘러본다. 산, 나무, 하늘, 꽃


그리고


전봇대.


맞다 전깃줄을 보려고 밭에 나오나 보다. 하늘에 걸린 전깃줄 오선지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작물이 없는 봄. 까만 밭에서 하는 농사 준비는 힘들다. 불안한 미래. 지금은 보이지 않는 수확을 위해 묵묵히 일 할 때다.


그러나 농부 아낙이 누군가. 수확의 여신 농부 아낙 상추를 수확했다. 비닐하우스에 심어놓은 아기 상추가 그새 자랐다. 물을 안 주면 귀신같이 알고 쪼그라드는 녀석에게 농부 아빠가 아침 일찍 물을 줬더니 싱그럽게 살아났다. 뜯어서 볶은 고기에 쌈 싸 먹었다. 복실이가 제일 잘 먹는다. 제 손으로 심었으니 먹는 맛이 오빠들보다 더 좋다. 여린 상추잎이 아삭하니 맛 좋다.


감자 하나가 꽃을 피웠다. 감자꽃 필 무렵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시골살이 재미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 찾아본다.



감자꽃 필 무렵 뻐꾸기가 울었다. 밤은 꽤 쌀쌀한데 뻐꾸기 너무 빨리 온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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