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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07. 2024

슬기로운 농촌 생활

비가 오면, 바람이 불면

고추와 생강을 주 작물로 정했기에 올봄은 시간이 넉넉하다.


고추 모종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으니 빨리 사가라고 육묘장에서 문자가 날아왔다. 고추를 심은 이웃에 이어 언니네도 고추를 심었다며 전화가 왔다. 언제 심냐며. 친정집 고추도 다 심었다는데...


우리는 기약이 없다. 왜냐 우리 집은 아직 춥다. 작년에도 남들보다 늦게 심는다고 심었는데 많이도 얼어 죽었다. 아직도 밤 온도가 10도 아래가 되는 날 이 많다. 밤이면 기름보일러가 쌩쌩 돌아간다. 우리 밭은 5월 말쯤 온도가 따뜻해지면 심기로 했다. 몇 년 농사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남쪽과 북쪽의 온도 차이가 있고 아래와 위의 온도 차이가 있듯이 산과 평야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


문제는 그때까지 모종이 있느냐인데...


이번 주에는 모종을 좀 구해서 비닐하우스에 넣어놔야 할까. 설마 모종이 다 팔리지는 않겠지.





일요일은 비 소식이 있어 마음도 편했다. 비 오는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농부 아낙은 그랬다. 그러나 자라나는 풀들을 보며 농부 아빠는 쉴 수가 없다. 비 오기 전 예초기를 들고 오전 내내  돌렸다. 오후부터 사나흘 내리 비소식이다. 비 온 뒤 풀은 더 거세게 자라니 그전에 한 풀 꺾어 놓았나 보다.


풀을 깎으면서 뭣에 팔을 물렸는지 남편 팔이 부풀어 올랐다.  물린 부위가 뜨끈뜨끈하고 땀을 계속 흘린다.


병원을 가래도 안 가고 이틀을 내리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예초기용 긴 앞치마를 시키려고 이리저리 서핑 중이다. 집에서 본 것 같은데? 그건 공예용이라 무릎 길이라나 뭐라나. 이번에는 발목까지 오는 긴 앞치마다. 그런데 광고 사진을 보니 팔은 반팔이다. 팔은 왜 내놓고 하냐니 더운데 다 싸매고 하면  더워서 어쩌냐고 한다. 벌레는 팔에 물려놓고 팔은 맨살을 다 내놓고 다닌다. 벌에 물리고 온갖 벌레들에게 뜯기고 시골 살이도 이래저래 뜯기는 인생이다.




집 앞에 바로 밭이 있으니 쉬는 날도 밭에 일거리가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비 오는 날 정도는 되어야 맘을 푹 놓고 쉴 수 있다.


농부 아낙은 풀의 키가 무릎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농부 아빠는 그것보다 기준이 조금 빡빡하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예초기를 돌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그건 풀의 길이도 길이지만 근처에서 뱀을 만난 이후로 생긴 농부 아빠의 대처 방법이다. 뱀이 허물을 벗어놓고 간 흔적을 본 적은 있지만 아직 뱀을 집 주변에서 직접 본 적은 없다. 만약 눈에 띈다면 농부 아낙은 절대 다시는 밭에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대신 눈에서 가까우면 마음이 늘 밭에 가 있게 된다. 그래서 농부 아빠는 늘 농사일에 한 걱정인 걸까?


농부 아낙은? ‘될 대로 되라지.’ 주의다.  늦게 심어 조금 수확하면 될 일이다. 열심히 농사 공부를 하는 남편이 내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많이 허탈하겠지? 그래도 일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농촌 생활을 즐기고 싶어 텃밭이라도 가꾸고 싶다면 100평도 많다. 50평 이하로 아니 더 작아도 된다. 절대 면적을 키우면 안 된다.


그리고 눈에 보이면 안 된다. 적어도 밭이 보이면 아니 된다. 우리 집은 거실 소파 자리에 앉으면 정면에 밭이 보인다.


소파에 앉아 생각한다.

풀이 많이 자랐구나.

고추를 따야 하는데.

바람이 부네

검정 비닐이 날아다니는구나.

고춧대가 부러졌네.

수박이 떨어졌네.


애가 타고 애가 탄다. 보이는 것을 가리고 안 볼 수도 없고 손을 안 댈 수도 없다. 그래서 나가는 농부 아빠. 그런 농부 아빠가 밭에서 혼자 애쓰는 모습도 한편 짠하다.



우리 밭의 최대 적은 바람이다. 바람이 불면 걱정이 많다. 농부아낙의 2023년 7월 6일 블로그 발행글 <아침 바람의 노래>를 보라.


<아침 바람의 노래>

지난밤 강풍은 거세었던가. 앞산 나무머리 건들거리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밭뙈기 한 움큼 움켜쥔 소심한 남편씨 오늘도 한가득 근심을 얹는다. 물 한 모금 냉큼 들이키고 밭으로 간다.  

양간지풍의 위력인가, 장마의 위력인가, 기후변화의 위력인가. 골바람을 탄 늘씬한 바람들이 마당을 내달린다.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차의 비명소리도 간혹 들려온다. 어제는 강풍에 수박이 떨어져 울고, 오늘은 고춧대가 부러져 울상. 농사짓기 어디 쉬운 일이겠냐만 골바람을 타 승기를 잡은 녀석들 가라앉히기는 내 맘대로 안 되는 법.

주저앉아 강풍을 꿋꿋하게 맞으며 너를 돌봐주는 주인의 심정을 고추는 알까. 지난주 내내 잡초와 사투를 벌이더니 이제는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짠하다.

출근한다. 아이들을 싣고. 바람도 싣고 간다. 시원하다.

출근길 바람을 즐긴다. 바람에 날아 차로 들어온 벌레를 쫓는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요란하다. 조수석 아이는 엉덩이까지 들썩들썩. 때맞춰 키 큰 청년 옥수수들 열 맞추어 춤추는 모습이 흥에 겹다. 너른 들판 초록 벼들 파도 물결치며 모래톱을 향해 달리는 듯. 푸른 물결을 따라 모래내를 달려 동해로 가는 건가.

강풍에 파도는 더 거세겠지.


농사가 근심이 되지는 않으면 좋겠다. 즐기는 농촌 생활을 위해 슬기롭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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