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색, 초록빛
전원생활을 이끄는 이유
'분홍? 분홍... 분홍!'
딸아이가 어렸을 적에 좋아하던 책이었다. 물도 분홍, 밥도 분홍, 나뭇잎도 나무도, 사람도 강아지도 모두가 분홍인 세상. 마녀의 마법으로 온통 분홍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다른 색은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행스럽게도 결말에는 마법이 풀리면서 초록 나무와 분홍꽃의 조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여자아이들의 분홍색에 대한 환상과 허영을 맘껏 채워주는 창작동화였다. 내게도 분홍 카타르시스를 경험케 해 준 책이다.
우리 딸아이도 분홍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당시 인도에서 지내던 때라 옷이나 물건을 분홍색을 입혀서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핑크빛 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니는 인도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으니까.
나도 인도에서 옷을 살 때는 무심코 분홍빛의 색상을 고르곤 했다.
"엄마도 핑크색 좋아해?"
딸아이의 질문에 난생처음으로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어지간하면 분홍은 피해서 살았는데, 딸아이의 영향인지 아니면 인도라는 특수상황 때문인지 나도 분홍색에 이끌리고 있었던 거다. 후에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분홍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위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분홍색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딸아이도 훌쩍 자라 사춘기를 지나다 보니 분홍색에 머물던 눈이 무채색으로 넘어가고 있으니 그렇다.
일단 그럼 분홍색은 잠시 마음을 두었던 색으로 건너뛰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지 발견해 보련다.
지난 일요일에 교회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헤어지려 인사를 나누는데, 이모들의 옷을 보면서 품평하는 딸.
"나는 이모 패딩 색이 마음에 들어요. 너무 예뻐요. 제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아, 그리고 창*이모 옷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색이네요."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밝은 회색의 롱패딩색이 너무 예쁘다고 본인이 좋아하는 색이라 하고는 카키색과 초록색으로 매칭한 다른 이모에게는 주저함 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이라 붙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색을 물어오면 늘 같은 대답을 했던 나는 '초록색'을 선택했다. 지금도 나는 초록을 좋아한다. 집을 새로 건축할 때도 지붕색을 초록으로 하고 싶다고, 외벽도 초록으로 칠하고 싶다고 사장님께 수십 번은 말씀을 드렸지 않은가? 한국 정서상 '촌스럽다'는 이유로 결국 거절당하고 회색 지붕으로 마무리를 했다.
엊그제 콩자반을 가지러 잠시 들른 친정집 안방에서 초록색 스웨터를 발견했다. 사실 이미 나는 초록색과 연두색 카디건을 옷장에 걸어두고 있으면서 입에서 불쑥 주책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이거 예쁘다. 나 주면 안 될까?"
"사이즈가 커서 줄여놓은 거야."
엄마의 품에 좀 커서 줄여놓았다고 안 하셨다면 난 아마도 그 초록 스웨터를 들고 나왔을 거다. 나는 꾹 눌러 참으며 손에서 그것을 내려놓았다.
시골에 들어와 전원생활을 한 지 4년 반이 되었다. 거실과 안방 창문에는 얇은 흰색 시폰 천으로 커튼을 만들었다. 집안 곳곳에는 창문으로 공간을 내주었다. 통창, 길쭉한 긴 창문, 거실과 다락방에는 천창까지 높이 만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초록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눈을 뜨면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 세상을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누고, 신선한 공기로 미리 배를 채운다.
자연의 상징이자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초록색 세상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시골 생활을 견디어 내기 어렵지 않겠는가?
나보다 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딸아이 덕분에 나는 초록을 사랑하는 'Green'이라 또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파란색도 좋아하는 나는 '블루 Blue'라는 예명으로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