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지상주의자

다시 말하지만 이건, 소설입니다.

by 작가 전우형

난 외모지상주의자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모를 더하는 사람을 딱 두 명 알고 있는데 아내는 그중 하나다. 물론 나는 칭찬에 대단히 인색해서, 아내는 내가 철저히 자신의 성격에 반해 결혼한 줄 안다. 하지만 아내의 기대와 달리 난 아내의 얼굴에 반했다. 그 시절 아내는 참 예뻤다. 과거형인 것은 무의식의 반영일 것이다. 다행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아내는 집에 없다. 그리고 적어도 내일 밤까지도 집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용감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글을 쓸 수 있다. 자유란 이런 느낌인 걸까? 아무튼!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스무 살의 백합제. 만개하는 봄의 정문에 그녀는 서 있었다. 편지에만 존재했던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을 때 나는 잠시 숨을 삼켜야만 했다. 꿈속에서 현실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교정을 함께 걸었다. 재잘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분명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았는데, 기억에 남은 건 둥둥 떠다니던 구름뿐. 그녀와 나의 거리는 대략 15cm. 걷다 보면 가끔 손등이 스칠 거리. 어깨 위에서 춤추는 단발머리. 까만 눈동자. 선명한 눈썹. 옅은 분홍색 입술. 새하얀 손등. 무지개색 팔찌. 오른발 한걸음, 왼발 한걸음. 봄의 정취. 상기된 목소리. 심장의 두근거림. 코끝을 스치던 달콤한 향기. 시간은 때때로 야속하리만치 빨랐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 헤어지던 순간은 다시 만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일정한 부피의 시간이 지난 뒤였으나 그 질량은 0에 수렴했고,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오직 한 사람만을 보았고 느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의 시간에는 책갈피가 꽂혔다. 시간과 공간에 의미가 주어지는 것은 독특한 감각이었다. 그런 순간은 언제든 다시 펼쳐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 떨어져 있을 때면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펼쳤다. 외로움은 우산도 없이 봄비를 맞은 날처럼 추웠지만 젊은 날의 그리움을 모닥불 삼아 웅크리고 앉아 손바닥을 녹였다. 그 시절은 오래 지나고 나서도 애틋하다. 기다림에 비해 만남은 유독 보잘것없었던 스무 살의 사랑. 아슬아슬한 만남은 4년 동안 이어졌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대전과 진해를 오가며. 때로는 청주와 진해를 오가며. 또 한동안은 진해와 청평을 오가며. 만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보내며. 새벽 1시 심야버스를 타고 까무룩 잠이 들면 새벽 5시에 마산에서 눈을 뜨는 일정을 소화하며. 아내와 나는 부지런히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젊은 체력이 버텨주었기에 가능했던 장거리 연애. 함께하는 잠깐의 시간이 소중했던 만큼 흩어지는 마음은 먹먹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20년이 다 된 그때의 사랑이 아직도, 가끔 생생한 날이 있다. 바로 오늘처럼.


그 시절 아내는 참 예뻤다. 아내는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쪽은 나다. 예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나를 잘 찍지 않는다. 아이들이나 아내, 아니면 풍경만을 담는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나는 많이 변했고, 아내는 그대로다. 예쁘다는 말은 중학생 딸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지금의 아내는 예쁘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나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치환이다. 예쁘다는 말이 철없게 들릴 나이다. 아내는 여전히 생기 있고 재기 발랄하지만 스무 살과는 다른 매력을 풍긴다. 폭발적이지 않고 은은해졌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함께 걸어도 그때와 같은 두근거림은 없다. 대신 편안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물었다. 뭐가 그래 급했노? 라고. 부산 사투리로. 나는 말했다. 그러게 말이데이. 역시 부산 사투리로. 그래서 떠올려보게 되었다. 뭐가 그래 급했는지. 나는 그 시절 남들은 아직 대학도 졸업 못했을 나이에 뭐가 그래 급해서 아내랑 결혼했던 건지. 역시 결론은 하나다.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다. 나는 아내가 예뻐서 좋았고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