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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20. 2024

나는 손이 따뜻해서 괜찮아

소설

  잠든 아이의 가슴에 얼굴을 댔다

  그 속에서는 0.4초에 한 번씩 내가 울고 있었다

  필요라는 접점마저 없었다면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 덕분이었다는 걸



  

  16. 나는 손이 따뜻해서 괜찮아     


  1월부터는 카페에 음악을 틀어 두지 않았다. 고요한 카페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소리 없는 그곳이 내게 잠깐이나마 평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그게 일상이 됐다. 물론 소리가 없다는 것은 틀린 묘사다. 소리는 어디에나 있다. 큰 소리와 그보다 더 거대한 소리가 있고, 작은 소리와 그보다 더 미세한 소리가 있을 뿐이다. 늘 틀어 두었던 음악이 사라지자 원래부터 있던 미세한 소리들이 되살아났다. 나는 그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손님이 없을 때면 노트를 펼치고 글을 썼다. 그러면 사각사각, 엄마가 사과를 깎을 때 들리던 소리가 났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면 늘 벽 모서리에 서서 등을 쿵쿵 부딪쳤다. 그러면 둥둥 고무망치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런 엄마를 흥미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벽을 타고 전해져 오는 그 소리가 마치 엄마의 심장소리 같았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게 속이 답답할 때 쓰는 방법이란 걸 알았다. 엄마에게는 속이 답답해도 등을 두드려 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외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한 얼굴이었다. 쿵쿵. 막힌 혈이 뚫리듯 엄마의 안색이 평온해질 때 들리던 소리. 어쩌면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들었을 그 소리.      


  가끔 나는 아내가 누워있을 때 가슴을 베곤 한다. 그러면 볼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쿵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이 소리를 24시간 내내 듣고 있었겠지? 잠은 어떻게 잤을까? 시끄럽지 않았을까? 그러면 아내는 어처구니없어하며 내 머리를 우악스럽게 두 손으로 잡아 복부 쪽으로 민다. 그리고 묻는다. 어때? 훨씬 더 시끄럽지? 아내의 말처럼 뱃속에서는 온갖 소리가 다 들렸다. 꿀렁꿀렁. 꾸물꾸물. 꾸르륵꾸르륵. 가끔 천둥소리도 들렸다. 이게 훨씬 더 시끄러워서 심장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을걸? 아내는 말한다.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갑자기 얼굴을 돌려 아내의 배에 가죽 나팔을 분다. 아내는 깔깔거리며 자지러진다.      


  1월이 되자 아내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선물을 보내와.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휴. 아내는 실제 생일과 주민등록상 생일이 다르다. 어머니 세대에서는 그런 일들이 잦았다고 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는 아이들이 있어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야 출생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출생 신고할 겨를이 없어 미루고 미루다 생시를 착각해 그렇게 되기도 했다. 어머니 역시 태어난 해보다 한 해 늦게 호적에 올렸다. 딸아이인 데다 병치레가 잦아 기억에는 없지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숫자 감각이 좋고 성적도 반에서 1,2위를 다퉜음에도 어머니는 상고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했고, 한 살 아래 남동생인 큰 외삼촌만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을 갔다. 그걸 보면 남녀차별이 분명한 현실이었음을 느낀다. 주민등록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한 살 어린것도 어쩌면 그런 시대의 파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우리 세대로만 넘어와도 드문 일이 되었다. 어지간한 병은 모두 고쳐내는 의료기술이 있었고 전후에 태어났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모가 되며 나라에서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구호를 방송에서 상시 떠들어 댔다. 많아야 하나 또는 둘밖에 낳지 않은 아이들을 곧 죽을지 모른다거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으로 뒤늦게 호적에 올릴 이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태어난 날짜보다 11개월 일찍 출생신고를 했다. 그런 탓에 주민등록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한 살 많다. 그래서 여섯 살에 국민학교를 갔다. 


  지금은 상상도 되지 않지만 입학했을 때 아내는 키가 너무 작아서 가방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받은 생일 선물 중에 군용 핫팩도 있었다. 군용이라는 말은 뜨겁고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로 붙인 수식어일 뿐이고 실제 군 보급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내는 그것을 내게 건넸다. 나는 손이 따뜻해서 괜찮아. 숨은 이유야 어떻든 나는 감사히 그것을 받아 가방에 넣었다.     


  오전 10시쯤 출근하고 나면 아내가 준 핫팩을 뜯어 몇 번 흔든 다음 주머니에 넣는다. 씻어둔 잔과 식기를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따뜻해져 있다. 그 온기가 여러 차례 나를 살렸다. 이번 겨울은 유독 추운 날이 많았다. 카페는 오후 2시가 넘어야 해가 든다. 하지만 핫팩을 손에 쥐고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고요함과 따뜻함은 친하고 서로를 아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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