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토박이 경상도 엄마와 딸의 전화 통화
띠리리리리~
-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꼬?
- 여보세요 엄마, 내다. 막내이
- 아, 막내이가? 니 목소리가 너거 언니들하고 똑 닮았네. 누가 눈지 못 알아묵겄네. 니는 별일없제? 아~들도 잘 있고?
- 어, 내야 별일없지. 아~들도 잘 지낸다. 엄마는? 별일없나?
- 내야 뭐 사는게 만날 똑같지. 만날 그날이 그날이고 뭐. 무신 특별한 일이 있나 오데
- 특별한 일이 없이 똑같은 날인기 좋은 기다. 별일이 있으면 그기 좋은 기 아니다 엄마 나이에는
- 그거는 글타. 내한테 특별한 일이라캐바야 내 아픈 거 말고 있겠나? 근데 니는 언제 함 오노? 니 얼굴 본지가 가맣다. 얼굴 잊자뿌겠다. 요번 설에는 오나?
- 엄마! 요번 설에도 못 가겠다
- 맞나? 와? 저번 추석에도 안왔다아이가? 와 몬오노?
- 엄마, 이 문디같은 코로나땜시 여러 사람이 모이믄 안된다 안카나? 그래서 이번에도 안갈라꼬. 혹시 우리 식구 넷이서 이리 저리 왔다갔다 했다가 혹시 병이 옮거나 옮기거나 하믄 우짜겠노? 안 글나?
- 것도 글타마는, 니 얼굴 안본지가 하도 오래되가 보고싶어가 그라제. 이 문디같은 코로난가 뭣인가는 언제 없어지겠노! 어데 나가도 몬하고 답답해가 내사 마 똑 죽겄네.
- 엄마, 그래도 오데 함부로 나다니지 말고 집에 가마 있으야 된데이. 알겄나?
- 안다! 아는데, 그래도 명절 앞인데 목욕탕 가서 때도 좀 밀믄 좋겠끄마는,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겠고 또 어지러브가 혼자 때밀다 엎어질까바 걱정도 되고 해싸가, 몸이 지글지글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너거 할배 칠팔십 노인이었을 때는 내가 너거 할배 때도 밀어주고 했는데. 너거 할배는 그리 목욕을 안할라하데. 하도 안 씻어가 늙어가 쪼글쪼글한 몸에서 허연 비듬이 막 떨어지는기라. 그래 내가 추즈버갖고, "아버님요 때 좀 미입시더 등드리서 허연 때가 막 떨어집니더"하이 너거 할배 머라카는 줄 아나? "야가 머라캐샀노? 까풀막진 등드리서 먼 때가 떨어진다카노? 하도 까풀막지가 가만 있으도 때가 지질로 떨어지나온다아이가? 그러이 부로 때밀 필요가 없는기라" 이카는 거 있다아이가! 내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가꼬. 너거 할배는 그리 때미는 거를 싫어하데. 근데 때를 안밀어도 너거 할배는 얼굴캉 몸캉 허여이 해갖고 인물만 좋드라마는. 맨날 빠닥 빠닥 씻는다꼬 인물이 좋아지는 거는 아인갑드라 허허.
- 까풀막지다? 까풀막지는 기 먼 말이고? 내는 첨 들어보는데?
- 머? 니는 까풀막진다는 것도 모리나? 니는 갱상도 사람이 아닌갑네?
- 엄마, 갱상도라도 까풀막지다는 말 아는 사람 벨로 없을구로? 그런 거는 엄마같이 나이 좀 든 아지매나 할매들이나 알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모린다. 나도 오늘 엄마한테 첨 듣는데?
- 아이고, 얄궃어라. 우째 까풀막진다는 말도 모리노? 절벽맹키로 빳빳한 거를 까풀막진다, 칸다아이가?
- 절벽같이 빳빳한 기 먼데?
- 아따 가시나 말귀 참 몬 알아묵네! 거 와 절벽이 딱 꺽이가 벽 맹키로 딱 서 있는 거 같은거 있다아이가?
- 아, 몰라 먼 말하는지 모르것다. 고마 대충 알아묵으께. 억지로 설명할라 하지 마라. 됐다
- 문디, 지가 내 말도 몬 알아묵음시로 내가 말을 잘 몬하는 거 같이 말하는 거 바라. 아나 됐나. 나도 안 할란다. 젊은 너거가 머 콤삐딴가 머시긴가에다가 함 치보라매. 콤삐따에 나와있을지 아나?
- 엄마, 컴퓨터에도 어설픈 사투리같은 거는 안나온다. 까풀막지다는 말이 나오겠나? 내가 마 대충 알아들으께. 할배가 등이 까풀막지가 때 안나온다했다는 기제? 뭐 알겠다.
- 지랄, 가시나. 엄마 옛말 하는 거 듣기 싫어가 글카제? 너거도 늙으봐라. 자꾸 옛날 일만 생각나고 옛말만 해진다카이. 너거는 안즉 젊어서 모린다. 난~주 엄마 나이 돼갖고, 아이고 울 엄마가 그때 글카드마는 그말이 이말이었는가베, 하는 날이 올기다. 내 말이 맞나 안맞나 함 두고 바라.
- 눼눼 엄마요, 알겠심더. 내 엄마 옛말하는 거 다 들어주끄시. 내 전화할 때마다 생각나는 야그 있스믄 또 하소. 엄마 말 딸래미가 들어주지. 누가 들어주겠노, 그쟈? 그나저나 엄마, 이번 설에 내 안간다고 울지 마래이. 설 지나고 환자 수 좀 줄믄 여러 사람 모이는 거 허락해줄끼다. 그때 유서방캉 엄마 보고싶어하는 아~들 다 델꼬 꼭 가꾸마. 알겠제? 기다리래이
- 오이야, 어서 빨리 이 문디같은 병이 가뿌야 될낀데. 그래야 달띠같은 울 딸 얼굴도 보고 내가 업어 키운 손지손녀도 보제. 아~들한테 할매가 보고싶다고 전해도고. 갸들 얼굴이 눈 앞에 가물가물한다. 어휴~
- 엄마 우나?
-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들고 눈물이 찔끔 찔끔 난다. 내 죽기전에는 니 오겠나?
- 실데없는 소리는! 아픈데도 없는데 와 죽는단 말이고? 쪼매만 있으믄 내 간다. 갈 수 있을기다. 보고싶어도 쪼매만 참아라. 전화 자주 하께. 알겠제?
- 오이야. 알겠다. 잘 지내고. 또 전화해래이
- 어, 엄마. 잘 살아리. 또 전화하께. 끊는데이.
포털 사전을 검색하니 '까풀막지다'라는 단어가 검색이 된다. 경상도 사투리로 '가파르다'는 뜻이란다. 우리 할아버지가 '등드리가 까풀막지가 때가 저절로 떨어진다'고 했던 말은 그러니까 '등이 절벽처럼 가팔라서 때도 등에 붙어있지않고 미끄러떨어진다'는 뜻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