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장금 May 23. 2020

당신의 아픔에 90%는 관심 없고 10%는 기뻐한다

불필요한 감정을 걸러내야 담백하게 살 수 있다

 

당신의 아픔에 90%는 관심 없고 10%는 기뻐합니다
-루이콜츠-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입원 후 조금 안정을 되찾고 몇몇 친구들에게 내 근황을 알렸다. 가까운 친구 서너 명 정도였다. 평소에 바쁘기도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최근 친구들을 전혀 만나지 못했다. 고립된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인지 예상보다는 병원 생활이 덜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침대도 생각보다 편하고 간이 식탁에 노트북을 걸치니 드러누운 사무실이 된다. 병원 내 근사한 테라스형 공원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출입을 금지시켜놨다. 무슨 이유인지 병실의 창문조차 열지 못하게 한다. 병원 관계자의 설명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기 유입과 불필요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부득이 조치라고 한다. 환자들일수록 따뜻한 햇살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하는데, 세상과의 차단도 모자라 자연과도 차단된 감금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예방을 위한 병원 측의 판단과 조치라니 뭐 어쩌겠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예쁜 테라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뿐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환자들의 면회는 금지되어 있다. 부득이한 경우 허가받은 보호자 1명만 지정된 시간에 잠깐씩만 면회를 올 수 있다. 종일 있어도 간호사들 외 아무도 병실에 오지 않는 분위기다. 나도 보호자인 신랑이 오면 1층 로비에 내려가서 만나고 온다. 병실에서의 불필요한 방문과 접촉을 줄이기 위해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 해도 진작 이렇게 개선되었어야 할 병원 문화인 것 같다. 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대부분의 병문안은 반가움보다 괴로움이다. 여자들의 경우 망가진 몰골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는 늘 망가져 있으니 그런 염려는 덜 하지만, 그래도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데 누군가 예고 없이 덜컥 찾아오는 건 아주 부담스러울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내 입장에선 다행스럽다.


가까운 지인들이 병문안을 오겠다고 하길래 병원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50%는 그렇냐며 수긍을 하고, 50%는 그래도 얼굴을 봐야겠다며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묻든지, 아님 무작정 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 그런 경우 내가 잠시 병원 밖을 나가서 얼굴을 보고 오면 된다. 그렇게 몇몇의 고집스러운? 측근들은 기어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나를 따듯하게 걱정해주는 마음들이 고맙다.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은 밖에서 햇살을 쬐고 오면 기분이 아주 좋다. 하지만 바람이 거칠고 황사가 심한 날은 서로가 힘드니 미리 만류하기도 한다.


입원 후 지인들의 전화와 카톡으로 폰에 불이 난다. 지인들과 오랜만의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비중 높은 일상이 되었다. 사고를 계기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도 많다. 대부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내 상태를 확인하고 농담 섞인 걱정과 염려들을 전했다. 통화나 카톡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온다. 교통사고의 내용이 정말로 궁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전하는 사람도 있다. 느낌대로 응대하면 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누구나 걱정을 가장한 흥미를 지닌다.


많은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가 내 사고 소식을 굳이 알려도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널리 알리는걸 곁에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측근의 푸념이었다. 나는 "ㅎㅎ 그게 왜? 사고가 났으니 났다고 하는 거지. 그게 뭐 어때?"

저녁에 홀로 누워 '사고 소식이 멀리까지 전해지는 걸 왜 탐탁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내 사고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하든 말든 그냥 넘기면 될 것을 더군다나 당사자도 아닌데 왜 그토록 마음이 쓰였을까? 그때 문득 미국의 풋볼 코치 루이 콜츠가 "당신의 문제를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90%는 관심도 없고 10%는 기뻐할 겁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 ~ 그래서 그런 거구나. 루이 콜츠 코치님의 말이 맞다.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봐야 90%는 내게 관심이 없을 것이고, 10%는 은근히 기뻐할 것이다. 그게 세상사다. 관심 없는 것도 당연하고, 기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감정이다. 내게 전해질 감정도 아니며. 신경 쓰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오직 내게 적극 또는 직접 반응을 해 주는 사람들이 걱정될 뿐이다. 내가 치료받는 기간 동안 자리의 부재로 간접 피해를 느낄 사람들과, 나를 지나치게 염려해서 진짜 걱정과 관심을 보내주는 이들에게 괜한 시간적, 금전적 피해를 줄까 봐 그게 염려스러울 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내 소식이 전해 지거나 말거나 딱히 관심 없다. 그건 정말 불필요한 감정 소모일 뿐이다. 불필요한 감정을 걸러내야 아래 글처럼 담백한 삶을 살 수 있다.

                

인스타 글귀라는데 누가 쓴 글인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 좀 알려주시길 바래요. 글도 정말 담백하네.

담백하게 산다
불필요한 감정들은 걸러낼 줄도 알고, 사랑받기 위해 욕심부리지도 않으며, 외롭다고 칭얼대지 않고, 행복하다고 해서 나태해지지 않는 것, 괜한 다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감정이 요동칠 때는 잠시 마음을 비우고, 눈길 둘 곳 없을 때는 괜히 하늘도 쳐다보면서 약한 마음에 다짐을 채워 넣는 것, 이별을 겪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아닌 흠뻑 젖을 정도로 아파하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 긴 시간 자리 잡은 적 없던 마음속에 누군가가 자꾸 서성이는 것을 느끼며 웃어도 보는 것

http://blog.naver.com/sky4848/221298758480

이전 06화 반장은 하고, 수학은 하지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