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아 Aug 21. 2024

내가 바라보는 것들은

익숙한 것들에서 나오는 무언의 연결

일정이 있어 나갔다가 외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요일별로 한 가지 메뉴만 제공하는 가게가 생각났다. 예전에 아는 지인과 점심을 먹었던 곳인데 메뉴 선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오늘 나올 음식이 무엇일지 약간의 기대도 되는 곳이다. 그릇에 담긴 반찬의 모양과 맛이 깔끔하고 정갈하여 '다음에 또 와야지'하고 마음에 품었었다. 요새는 눈만 뜨면 어떤 일이든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점심만큼은 아무런 선택 없이 주어진 대로 먹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편한 생각이 들었다. 선택에 대한 피로도에서 벗어나 가끔은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쉼도 필요한가 보다.      


가게는 원래 커피숍으로 운영되던 아담한 곳이었는데 어느 날 밥집으로 상호를(카페 이름 뒤에 밥집) 바꾸었다. 카페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하여 분위기는 아기자기하고 환하게 예쁜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전 풍미 있던 커피 향 대신 집밥 냄새가 자리마다 가득 메우고 있다. 빈자리를 차지하고 인원수만 이야기하면 주문은 바로 이루어진다. 오늘은 특별히 사이드 메뉴로 왕 계란말이까지 곁들여 주문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따뜻한 숭늉을 먼저 맛보았다. 고소한 밥알이 입안에 번지며 빈 속을 달래준다. 따끈한 국물이 퍼지니 이내 몸 전체가 따뜻해진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스함이란 것은 포근한 거리만큼의 가까운 안정을 심어준다. 아무리 더워도 찬 것을 잘 먹지 않은 나와 참 잘 맞는 적당한 온기다.


'후루룩' 거리던 숭늉의 향이 고소하게 퍼질 때쯤 주메뉴인 고추장 불고기와 오이냉국이 나왔다. 이미 익혀 나온 고추장 불고기지만 버섯, 대파 등 갖가지 채소를 넣 버너에서 한번 더 끓여내며 맛의 일품을 더한다. 오이냉국은 아삭하게 채 썬 오이와 당근, 양파, 홍고추를 곁들어 새콤하면서도 약간 매운 향을 더해 입맛을 맛깔스럽게 돋우었다.     


 동그란 양은 꽃 쟁반(그 옛날 사용하던 레트로 감성이 추억처럼 돋게 하는)에 맛깔스럽게 놓인 반찬이 놓여 있다. 감자조림, 어묵볶음, 김치, 애호박 볶음, 나물 무침 2가지, 도라지 오징어채가 너무 맛있다. 젓가락은 계속 감탄을 이어가며 바빠지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반찬과 흰쌀 밥, 따뜻한 불고기 등 온정이 있는 식사를 하다 보니 우리에게 돌아오는 식재료가 눈에 점점 들어온다.

      

 흙을 통해 나온 채소들은 계절마다의 햇살과 비, 달빛과 별의 온기를 품어 자라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거쳐 나오게 된다. 그 사실을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진한 감동이 내게로 돌아온다. 너무나 당연하여 지나칠 법한 흙의 인내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온 우주를 품은 씨앗은 소소한 듯하나 가장 귀한 아름다움이다. 자연의 놀라운 생명력과 누군가의 정성이 어울리고 맞아떨어져 덕분에 나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받고 있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곳, 어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보탬과 채움으로 이어진 우리 안의 세상을 만든다. 함께 식사하며 마주하는 얼굴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시간 또한 행복이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의 도움을 주고 있다 느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서 고마움을 그저 따스하게 보답하고 싶어 싹싹 비워진 그릇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온다.


내가 먹고 일어설 자리가
누군가에게 편해지도록
그릇끼리 정리해
포개어간 마음
살며시
     동그랗게 놓아갈 뿐이다.      
이전 11화 언니의 도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