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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an 19. 2024

무슨 시계를 가져간담?

최근 결정한 나의 여행 동반 시계 목록. 왼쪽부터 스틸다이브(Steeldive), 씨스턴(Seestern), 지샥(G-Shock) 2점, 보스톡(Vostok).

무슨 시계를 가져간담?




최근 장기간의 해외 체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항상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유약한 나에게는 작지 않은 도전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는 일본 밖에 가보지 못했다. 즉, 나의 세계는 반경 500km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인데, 이번에 세운 나의 목표는 거의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라고 한다면 뭐니 뭐니 해도 시계다. 시계를 두 손에 쥐고 조물딱 거리는 것도 좋지만, 시계 사진을 다운로드하고, 시계를 고치는 영상을 보고, 시계에 대해 글을 쓰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멀리 타향 생활을 목표하고 있는 지금, 어떤 시계를 얼마큼 가져갈까는 최대의 화두다. 얼마나 화두냐 하면은 하루종일 가져갈 시계 목록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있다. 새로 산 그루포감마(Gruppo Gamma)를 가져갈지, 아니면 제일 아끼는 오리스(Oris)를 가져갈지, 혹은 가장 무난한 세이코(Seiko)를 가져갈지 하루온종일 고민하고 있을 만큼 내게는 크나큰 문제다.


나는 천성이 불안과 강박에 둘러싸여 있어 구더기가 무서워 장도 못 담그는 사람이라, 결국 (2주 동안 밤낮으로 고민한 끝에) 가장 저렴하고 가장 튼튼한 시계를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스틸다이브(Steeldive), 씨스턴(Seestern), 보스톡(Vostok), 세이코 5(Seiko 5) 그리고 지샥(G-Shock) 2점. 총 6개의 시계들은 나의 머나먼 타지생활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짐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시계를 6점이나 갖고 가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는 그만큼 나의 시계에 대한 애정과 불안이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


총 6점의 시계를 고른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그 시계들이 (1) 제일 저렴하고 (2) 제일 튼튼하기 때문이다. 비싼 시계를 갖고 가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도난 사고에 대한 우려에 있다. 낯선 타지 경찰서에 찾아가 어눌한 말로 시계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아시안을 누가 믿어줄 것이며 도와줄 것인가. 그러다 보니 잃어도 쓴 맛이 크지 않고 뒤탈이 없는 시계를 우선 챙기게 되는 것이다. 떠날 때는 6개였는데 과연 돌아올 때는 몇 개일 것인가?(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낯선 타지에서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애용하던 종로의 시계 방과 알리익스프레스는 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안고장 나면서 고장 나도 부담 없는 시계를 찾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무서워서 지샥의 예비 케이스, 시계 수리도구, 시계줄은 물론 시계를 담아갈 케이스도 준비했다(덕분에 아직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준비만으로도 지출이 커지고 있다).


머나먼 타지의 좁은 반지하 방에 쪼그려 앉아, 오늘은 어떤 시계를 차고 나갈지 생각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즐겁다. 말 하나 통하지 않는 곳이겠지만 적어도 이 시계만큼은 내 손목 위에 앉아 내가 떠나온 고향의 정취를 풍기겠지. 벌써부터 가슴이 기대와 불안으로 두근거린다.




나는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나의 삶을 바꾸고 싶었으나, 그것이 쉬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최대한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6점의 시계가 그런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와 시계에게 장수와 번영과 포스가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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