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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꿍 Mar 15. 2016

끝에 단어 3개만 바꿉시다

편집의 두 얼굴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말이다.


'끝에 단어 3개만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영화가 끝나도 난 백윤식의 이 대사가 계속 뇌리에 남아 잔상을 남겼다.


‘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 볼 수 있다. 매우 보여진다. 같은 말이어도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 논설주간 이강희 (백윤식)    



‘볼 수 있다’와 ‘매우 보여 진다’ 똑같이 ‘본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추측성 기사를 쓰는 언론은 그 추측이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는지는 이러한 문구 하나에 바뀌는 것이다.      


나는 글을 너무도 사랑하지만, 글 가지고 장난칠 수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편집이라는 것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매달 책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그래서 매달 원고를 담당부서에 보내는 데 담당자는 내 글을 조금 손봐서 게시판에 올린다.

게시된 글을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원래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다른 느낌이 되어 버린 글을 보았을 때이다. 그래서 게시 글을 보며 다시 원고와 대조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수정한 것은 문장 전체가 아닌 조사와 같은 것이거나 글의 순서이다. 특히 내가 정한 제목을 그들이 바꾸어 올릴 때가 있는데 하고자 하는 말과 사뭇 달라지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경제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데 나는 글의 제목을

‘살아있는 경제이야기’라고 정했는데 그들이 바꾸기를

‘빈익빈 부익부 그 열쇠를 찾는 책’이라고 바꾸었다.

물론 글 안에 빈익빈 부익부 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들은 전체 글 중에 가장 눈을 사로잡는 제목을 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달 부터는 게시하기 전에 편집된 파일을 받고 싶다고 하여 그들이 수정한 내용을 다시 고쳐서 보냈다. 잘 고쳐줘서 보존한 경우도 있고 의도가 변경된 것은 다시 수정하여 그 이유를 설명했다. 글은 어찌보면 내 자신이기도 한데 내가 쓴 글이 남이 쓴 것처럼 바뀌 .


그러나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더 나은 것이 나올 때도 있고, 배우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가 봐주어야 힘이 실린다. 다른 사람이 관심 없는 글은 그냥 일기로 쓰면 된다. 주변은 글과 말로 쏟아 진다.


글을 클릭 하는 경우는 '제목'을 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브런치에 쓴 글이 다음,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되었을 때 제목이 그대로일 때도 있지만 바뀌었을 때가 있다. 사람들이 클릭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목'이다. 브런치 운영팀에서 고쳐준 제목을 보고 크게 느낀 바가 많았다. 아무리 좋은 글, 책이어도 제목이 끌리지 않으면 클릭할 가능성이 적다.


* 카카오톡 채널에 소개 되었을 때 바뀐 제목들


인문학의 가치 → 인문학이 사는데 무슨 도움이 돼?    

리얼 그대로의 결혼 → 결혼을 환상으로 생각한다면 착각

성공한 사람들의 공식 → 성공한 사람들의 12가지 공통점?   


 * 원래 제목

 (이 기회에 다른 글들도 다시 소개 ^^)


그래서 그 이후로 나도 제목 선정에 조금더 노력을 기울였다.

이전에는 노령사회, 미니멀 라이프, 삶과 죽음 처럼 단어 위주로 쓰다가

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의 순위?그건 눈에 보이지 않은 것, 사는게 지겹지?  처럼

관심을 확 끌수 있는 제목을 썼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작가들이 책을 낼 때도 출판사 편집자들의 손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글이 된다고 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의 상충되는 지점을 찾아 고치고 고쳐야 된다고 말이다.      

한 명만 손이 닿아도 원작과 의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두 세 명만 거치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소문은 또 어떠한가. 두 세명만 입을 거치면 완전히 다른 말이 되어 버린다.

A 라는 사람에 대해 '세심하고 꼼꼼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쪼잔하고 소심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거기다 그 말에 대한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주관을 입히고 입힌다.


동상이몽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는 건,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쪽 이야기만 듣고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판단해버린다.


말과 글은 무서운 면이 있다.       


노래도 그렇다. 어떤 노래에 대해 누가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할 때 작사, 작곡, 그리고 하나 편곡    

예전엔 편곡이 왜 중요하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글처럼 노래도 누가 그 노래를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어버린다.      

좋은 명곡들에 대해 다른 가수들이 ‘다시’부를 때 누가 편곡을 해서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따라 노래는 완전히 바뀐다.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슈가맨      


티티마의 노래를 케이윌이 부르니 A라는 노래가 A'가 아니라 아예 B가 되어 있었다.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는 것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그래서 글과 말을 대할 때는 조금 더 그 안에 숨은 내용을 찾는데 집중해야 될 거 같다. 원작자의 의도를 찾아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한 글은 편집의

힘을 이기고 살아남아 독자에게 그 뜻이 전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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