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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Jan 10. 2022

He/Him Pronouns - 나를 부를 때는...

또는 She/Her Pronouns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의 온타리오에서는 아이들이 만 4세가 되는 해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보통 공립학교에 2년 유치원 과정이 붙어있는 식인데 재미있는 점은 유치원생들도 다른 학년들과 똑같이 시작해서 똑같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아무리 고3 학생(12학년)이라도 만 4살 유치원생(Junior Kindergarten)과 동일한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0교시부터 시작해서 야자까지 해야 했던 우리의 고3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만 4세부터 학교에 다니는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공교육은 기본적으로 무료이기 때문에(물론 유학생의 경우 예외가 존재) 그만큼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만 4살이 되는 해까지만 잘 버티면 대학교에 갈 때까지는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는 한국처럼 사교육이 많은 것도 아니고.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고려해 보아도 온타리오처럼 만 4세부터 공교육이 시작되는 곳은 거의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경우 유치원 1년 정도만 공교육으로 포함되어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예전에 살았던 사스카추완 주에서는 유치원 1년, 그것도 반일(Half Day)만 공교육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당시에는 딸아이 한 명밖에 없었을 때이지만 만 4살 딸아이의 유치원 비용이 일 년에 천만 원 이상 들었다. 그래서 온타리오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비록 월급은 줄어들지만 유치원 비용은 많이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유치원에 다녀야 하는 첫째뿐만 아니라 곧 둘째를 출산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와이프 뱃속에 있었던 그 둘째도 만 4살이 되어 2020년 9월부터 유치원(Junior Kindergarten)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둘째의 담임 선생님으로 남자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캐나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에는 남자 선생님이 적은 편인데 유치원을 담당하는 남자 선생님은 정말 드물다. 사실 이 선생님을 배정받기까지 매우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원래 반을 담당할 선생님이 개학 직전에 길게 병가를 떠나게 되어 다른 선생님이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마저 한 달 정도 만에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학교로 떠나게 되었다(참고로 한국이라면 이해가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결국 학교에서는 대타 선생님의 대타 선생님을 뽑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 막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이 남자 선생님을 채용한 것이다.


이 선생님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답게 매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분이었다. 학부모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하였는데 학부모들에게 학급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주 공유하고는 하였다. 그런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메일 끝에 항상 'He/Him Pronouns'라는 문구가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문구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그냥 별 생각이 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을 때마다 똑같은 문구가 계속 눈에 밟혔다. 한 번은 이 문구를 보면서 Pronouns (대명사)를 Pronounce(발음하다)라고 잘못 봐서 자기를 '남자'라고 발음해달라, 혹은 '남자'라고 말해달라는 뜻일까 싶었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이 선생님은 정말 '상'남자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해석이었지만 한 번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나니 이 문구를 볼 때마다 그저 '상남자 문구'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둘째의 담임선생님이 보낸 메일 중 하나. 이름 아래 He/Him Pronouns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집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불현듯 이 문구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 서명으로 사용할 정도의 문구인데 뜻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자신을 상남자라고 소개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왜 지난 반년 동안 이런 생각은 한 번 안 하다가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핸드폰으로 구글에 'he/him meaning'을 검색해 보니 바로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구는 영어로는 LGBTQ라고 불리는 성 소수자들을 배려해서 적는 문구라고 한다. 성 소수자가 아닐 경우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He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겠고, 여자로 태어났으면 She라는 대명사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성 소수자들의 경우 생물학적인 성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자 하는 대명사를 듣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여자인데 상대방이 나의 겉모습만 보고는 '그(He)'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여자라고 불러달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성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의미에서 본인이 먼저 나에게는 '그'라는 대명사를 사용해 주세요 혹은 '그녀'라는 대명사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적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이라고 불러드릴까요?'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고. 이러한 행동이 성 소수자들에게 실제로 얼마나 배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메일에 이런 문구를 적은 사람들은 '나는 당신들을 이해합니다' 혹은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고 무언 중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캐나다는 정말 자유로운 나라이다. 정작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도 캐나다에 비하면 매우 보수적이다. 미국이 비록 자유로운 나라라고는 하여도 기본부터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여서 그런지 기독교적인 사상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미국도 헌법에서 보장되고 있는 자유들, 예를 들어 표현의 자유, 총기 소지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은 부인할 수 없이 잘 지켜지고 있다. 총기 소지야 뭐 두 말할 필요도 없고 표현의 자유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자신이 그렇다고 믿는 상태에서 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 아무리 미친 소리, 헛소리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독교 가치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참 보수적이다. 그중의 대표적인 것이 낙태, 동성 결혼, 마리화나, 안락사 등이다. 우선 마리화나와 안락사의 경우 캐나다는 각각 지난 2018년과 2016년에 합법화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안락사는 모든 주에서 금지하고 있으며 마리화나의 경우 몇몇 주에서는 합법화가 되었지만 아직도 연방법 차원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낙태의 경우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는 정말 거대하다. 만약 캐나다에서 임신을 하여 병원에 간다면 의사가 가장 처음 물어보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임신을 계속 유지하겠습니까?'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낙태 반대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지지난 번 선거에서 보수당 대표가 낙태에 반대한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가 선거 내내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지난번 선거에서는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새로운 보수당 대표가 낙태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없다고 못을 박아서 논란 자체를 없애버렸다.


반면 미국은 비록 1973년 낙태가 합법화되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주들에서 다시 낙태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신 10주가 지나면 낙태가 불가능하거나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수를 현저하게 줄이는 식으로 법을 바꾸는 식이다. 그 결과 2022년 미국 대법원(Supreme Court)에서는 다시 한번 낙태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현재 미국 대법관들의 성향으로 볼 때(보수 6 대 진보 3) 결국 낙태가 합법화되었던 Roe v. Wade 판결이 뒤집히는 것은 아닐지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이다. 

(*) 1973년 미국 대법원에서 Roe v. Wade(로 비 웨이드라고 발음)라는 판결을 통해 낙태가 합법화됨
(**) 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2022년 중반 선고 예정. 



동성 결혼의 경우 캐나다에서는 2005년 합법화가 되었지만 미국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모든 주에서 합법화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비록 합법화가 되었다고는 하여도 아직도 동성 결혼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듯하다. 특히 남부와 같이 보수적인 곳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한데 그런 곳에서 만약 초등학교 선생님이 메일에 'He/him Pronouns'과 같은 문구를 쓴다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난리가 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겉으로 드러내 놓고 반대를 할 수는 없는 분위기이다. 심지어 카톨릭 학교에서 신부님이 학생들에게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 (부정적으로) 뉴스에 소개될 정도이니 말을 다했다. 


최근 이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설문 조사 결과를 하나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킹스턴과 그 주변 지역의 공립학교를 담당하는 교육청(School Board)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Census)였는데,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들의 성적인 취향에 관한 질문이었다. 고학년(7학년~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묻는 내용이었는데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는 아무리 고학년이라도 학생들에게 별 것을 다 물어본다는 것과 둘째는 설문 조사 결과 그 자체에. 


아래의 설문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들 중 이성을 좋아한다고(Straight/Heterosexual) 답한 비율은 73.2%이고, 양성을 좋아한다거나 동성을 좋아한다고 답한 비율이 15% 정도이다. 이성을 좋아하는 비율이 3/4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도 않은 친구들이 자신의 성적인 취향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다. 또 선택을 할 수 있는 항목 중에서 Asexual(무성애), Pansexual(범성애), Two-Spirit (몸 안에 남성과 여성이 공존) 같은 것들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라 신기했다. 


우리 동네 교육청(Limestone School Board)에서 실시한 학생 설문 조사(Census) 항목 중 성적 취향에 관한 질문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 학교에서 보냈던 메일들을 보니 모든 선생님들 메일 서명에 자신이 사용하는 대명사를 포함하고 있었다. 다만 이름 바로 아래 적었던 둘째 담임 선생님과 달리 메일 맨 아래에 적어놓아서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이렇게 모든 선생님들이 메일 서명에 'He/Him Pronouns' 또는 'She/Her Pronouns'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아마도 교육청 차원에서 지침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 비하면 거의 모든 것이 느린 캐나다이지만 이런 것만은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쁜 것도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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