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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검사 Feb 18. 2023

결여

내 글에는 없는 것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질문을 받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와이프와 산책을 하다가 받은 질문인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 와이프는 나에게 이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목표? 꿈? 이 나이에?


어렸을 때야 장래희망을 말할 때 대통령이 되겠다던지 노벨상을 타겠다던지 하는 허황된 소리를 해도 문제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장래'희망'이니까. 심지어 어른들은 더 큰 꿈을 가지라며, 바꾸어 말하자면 더 허황된 소리를 해보라며 아이들을 부추기기도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미 나이가 서른을 넘고 결혼까지 한 마당에 인생의 목표라니...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새신부에게 목표가 없는 남자처럼 보이기는 싫어서 재빨리 나의 목표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부터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가 된다거나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금세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저 남들과 똑같이 일단 대학에 합격하는 것으로 목표가 수렴되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 부조리한 사회에 반항을 하고자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란에 '래퍼'라고 적어 내기도 하였다.


60에 가까우셨던 담임 선생님은 그것을 보시고는 조용히 나를 불러서 '이거 평생 기록으로 남는거여... 정말 이렇게 쓸거여?'라고 물으셨다. 나는 '네, 저는 래퍼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을 했다. 얻어맞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지만 선생님이 워낙 인자하셔서 내 고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는 본인 희망으로 '래퍼', 부모님 희망으로는 '한의사'라고 적히게 되었다. 하지만 제일 흥미로웠던 사실은 바로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였다.


학생의 적성이 본인의 희망과 잘 일치함


그때부터 엠넷에서 고등래퍼나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시대를 앞서갔나 보다.


아무튼 나이 서른에 래퍼가 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으니 다른 목표를 찾아야 했다. 조금 생각을 해보니 사실 나에게도 꿈이 있긴 했다. 예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왔기 때문에 언젠가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서 읽어 줄 정도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하! 이 정도 멋진 꿈이면 와이프에게 말해도 되겠지. 그래서 와이프에게 내 꿈은 언젠가는 글을 써서 책'같은 것'을 내는 거야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 가졌던 꿈들처럼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입으로 '책 내는 거야'라고 말하기는 왠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와이프는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했다. 아니 그런 것은 니 혼자 일기장에 쓰면 될 일이고, 그런 것 말고 이제 결혼도 해서 가정도 생겼으니 좀 더 책임감 있는 목표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였다. 이럴 수가... 와이프가 물어봤던 것은 단순히 내 장래희망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구나.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갑자기 좋은 목표가 떠오를 리 없었지만 그래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앞으로 돈 얼마를 모아서 몇 년 내에 집을 사겠다는 목표를 급조해 냈다. 다행히 더 이상 핀잔을 듣지는 않았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난생처음 입 밖으로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나니 정말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너무 많기 때문에 나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지만 글을 길게 쓰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은 꽤 오래전부터 깨달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를 하는데 원고지로 6장 이상을 써야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분량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어했지만 나는 쓰다 보니 10장이나 쓸 수 있었다. 다만 길이에 비해서 내용이 별로였나 보다. 남들보다 많은 분량에 내용까지 좋았다면 더 높은 상을 받았을 텐데 고작 장려상을 받았던 것을 보면. 그래도 그때 받은 상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꽤나 행복한 일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우리 집안의 가보가 될 상장. 세 명의 자식들 중 누구에게 물려주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된다.



중,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 사이에서 돌려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것을 써 보기도 하였다. 마침 남녀공학이었던 고등학교 때는 그저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주변 친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써보기도 했다. 저녁에 컴퓨터로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고 난 후 찢은 공책 위에 출력을 해서 다음날 학교에서 돌려보았다. 물론 이번에도 내용은 별로였는지 (여)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에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쓰거나 책이나 영화의 리뷰는 쓸 수 있어도 소설과 같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에는 나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나의 재능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가래떡 뽑아내듯 길게 늘여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길게 뽑아내다 보니 나의 문장이 만연체가 되어버린다는 단점은 있지만 만연체로도 훌륭한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도 많이 있을 테니 만연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냥 내 문장이 나쁜 것일 것이다.






캐나다에 와서 좋아하게 된 작가가 두 명 있다. 두 명 모두 소설가는 아니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유명해진 사람들이다. 우선 첫 번째 작가는 프랭크 맥코트(Frank McCourt)이다.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프랭크 맥코트는 30년 동안 선생님으로 일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은퇴 후인 1996년,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Angela's Ash(안젤라의 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 그저 평범한 일반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지만 이 책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누구도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지 예측하지 못했는데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이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될지는 몰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백만 부가 넘게 팔렸다. 결국 그는 이 책으로 1997년에 퓰리처상을 받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훌륭한 글이라서 그런지 첫 세 문장으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강렬한 문장이다.

My father and mother should have stayed in New York where they met and married and where I was born.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이 만나고 결혼하고 내가 태어난 뉴욕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Instead, they returned to Ireland when I was four, my brother, Malachy, three, the twins, Oliver and Eugene, barely one, and my sister, Margaret, dead and gone.
그 대신 그들은 내가 네 살, 내 동생 말라키가 세 살, 쌍둥이 동생 올리버와 유진이 겨우 한 살, 그리고 내 여동생 마가렛이 죽고 나서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When I look back on my childhood I wonder how I survived at all.
내가 내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조차 놀라울 정도이다.

(프랭크 맥코트의 Angela's Ash)


그는 이후 본인의 청년 시절을 이야기한 'Tis (It is라는 뜻, 1999년 출간)와 선생님으로 일하던 시절을 이야기한 Teacher Man(2005년 출간), 이렇게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책을 출간한 지 4년이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났는데 평생 총 3권, 그것도 오직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는 점이 놀랍다.



내가 좋아하게 된 또 다른 한 명의 작가는 바로 데이비드 세다리스(David Sedaris, '시대리스'라고 발음)이다. 1956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삼심 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변변치 않은 직업들을 전전하며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1992년 미국 공영 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NPR)를 통해 그가 쓴 'Santaland Diaries'가 방송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작가 본인이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엘프(산타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녀석들)로 일을 했던 경험을 쓴 것이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언급될 정도이다.


그가 쓴 글은 주로 자신이나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는 형식이다. 어떻게 보면 참 별 것도 아닌 일을 그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다니! 그의 관찰력과 글 실력이 놀라울 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글은 책으로 읽는 것보다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 운전을 하면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 본인이 워낙 재미있게 글을 읽어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듣다 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If you read an essay in Esquire and don’t like it, there could be something wrong with the essay. If it’s in The New Yorker, on the other hand, and you don’t like it, there’s something wrong with you.
만약 에스콰이어 잡지에 실린 에세이를 읽다가 그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에세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뉴요커에 실려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The Best of Me, Introduction 중)


Take those kids, double them, and subtract the cable TV: that’s what my parents had to deal with.
(앞의 세 명의 아이들을 언급하며) 그 아이들을 받고 두 배를 한 다음 케이블 TV를 뺀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 부모님들이 처했던 상황이다.

(데이비드 세다리스의 Now We Are Five 중)


지금이야 인기가 너무 많아서 쓰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지만 유명해지기 전, 그러니까 작가의 30대까지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참 절망적이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고 돈도 없이 그저 술과 약에 빠져 살았다. 그나마 그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이었을 텐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희망이라고는 단 한 움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그처럼 글을 잘 쓰는 것도, 그렇다고 그만큼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 글에는 무엇이 결여되어서 아무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지 생각해 본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길이에 비해서 내용이 별로인 것일까. 아니면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글의 구조가 이상한 것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떠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지 못하니 내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위의 작가들처럼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면 이제 막 절반을 지난 내 인생의 훌륭한 목표가 되지 않을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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