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입이 30초 간격으로 질문 폭격을 가한다. 슬픈 소설을 가지고 온 내가 밉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탁탁 끊어져도 금방이고 몰입할 수 있는 비문학을 챙겨 와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한 자 한 자 필사를 했으면 더 좋았으려나. 소설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자꾸만 끄집어내는 여섯 살, 둘째 아이가 무릎에 두꺼운 곤충도감을 올려놓는다. 이어 작은 손가락으로 사슴벌레 한 마리를 가리키며 내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참이다. 나는 검지를 세워 내 입술에 갖다 대었다. 쉿! 질문 하나하나에 호응해 주며 책 속의 그림과 글자를 손으로 짚어 읽어준다. 아이의 시선이 다시 책으로 향하지만, 한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질문 공세가 쏟아진다.
“엄마? 이거 봐봐.”
“엄마? 엄마는 이거 알아?”
“엄마! 나는 이거 알아.”
"엄마? 이 그림은 뭐야?"
“엄마? 이 글자가 무슨 글자야?”
“엄마? 우리 이거 본 적 있지?”
“엄마? 엄마! 엄마?”
책 좀 읽다가 글 좀 써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이 30초 질문 따발총의 맹공격으로 처참이 무너졌다. 노트북은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 다시 꼬맹이의 질문이 일발 장전될 기미가 보이자, 읽고 있던 소설책을 덮어버렸다. 아직 한글을 못 읽는 둘째 아이다. 가져온 곤충 도감의 곤충학명이라도 읽어주려고 자세를 잡는 찰나, 아이는 그 사이 장전된 질문의 방아쇠를 당긴다.
“엄마, 나 다른 책 가져와도 돼?”
읽어주려고 하면 또 기가 막히게 딴짓을 한다. 총총 걸어가며 멀어진 뒤통수를 겨냥해 허공에다 손을 들어 ‘꽁’하고 쥐어박는다. 서가로 향하는 그 발걸음이 어찌나 신나고 자유로워 보이는지, 독서의 맥을 끊는 얄미운 꼬마 훼방꾼에게 맹공격을 당하고도 결국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우리가 이러려고 도서관에 왔지.’
우리 가족의 주말 일정 중 하나는 도서관 나들이다. 첫째 아이가 10살이 되는 올해부터 주말 중 하루는 도서관에 가기로 온 가족이 약속을 했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독서를 위한 환경조성’이라고나 할까. 책을 고르고 읽고 질문하는 그 모든 과정의 결정권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입맛대로 골라 읽는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의 취향을 찾길 바랐다. 때로는 만화책만 읽을 때도 있지만, 편식 독서가 되든, 확장 독서가 되든, 방대한 서가 앞에서 그저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이 일길 바라며, 아이들을 이와 같은 환경에 내어놓기만 하면 된다 생각했다. 도서관만큼 좋은 독서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 집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도서관이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은 네 곳 중 규모가 가장 큰 서쪽에 있는 도서관이다. 2-3층이 연결된, 천장이 높은 구조의 서가에는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아이들을 그곳에 처음 데리고 갔을 때를 기억한다. 우리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서가의 규모에 압도되었었다. 2층 입구에는 카페테리아도 있다. 서가 곳곳에 커피 향이 은은히 퍼져 있어서 여기가 도서관인지 휴식공간인지 헷갈렸다. 2층에 연결된 계단을 따라 올라간 곳에는 음료를 놓을 테이블까지 있어 마치 북카페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백색소음은 한층 더 그런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무슨 기분이었을까 궁금했다. 이토록 여유롭고 편안하고 멋진 공간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느 날 토요일 오전, 집을 나서기 전 우리 가족은 각자의 도서관 나들이용 가방을 챙겼다. 아이들의 에코백에는 반납할 책, 필기구, 색종이 통이 들어있었다. 종이접기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좋은 아이템이었고, 아이들은 조용한 공간에서 조물딱 거리며 종이접기를 하는 것을 즐겼다. 그 시간을 놓칠세라 우리 부부도 읽을 책 한 권씩을 가방에 넣었다.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노트북과 필기도구도 일단 가방에 챙겨 넣었다.
도서관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는 데에만 삼십 분 이상이 걸렸다. 그날은 도서관에서 스탬프를 찍는 이벤트가 있었고, 아이들은 이벤트 용지를 손에 쥐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미션을 수행했다. 책 제목도 찾아 적고, 책 내용에 관한 퀴즈도 풀고, 필사미션까지 마친 뒤 모든 스탬프를 모을 수 있었다. 안내 데스크로 달려간 두 아이는 미션 활동 시 지급되는 과자 선물을 받고 나서야 배시시 웃으며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선물 봉투를 달랑달랑 들고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각자의 독서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말이 각자의 독서시간이지, 나는 둘째 아이의 동선을 따라 분주해졌다. 아이가 원하는 그림책 몇 권, 평소에 좋아하는 곤충도감 몇 권, 종이접기 책 몇 권을 뽑아서 돌아오니 벌써 20분이나 지났다. 멀리서 첫째 아이가 양손에 책을 수북이 쌓아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게 보였다. 테이블에 가져온 책을 놓더니, 호주머니에서 청구기호가 적힌 도서 검색 종이를 꺼내어 코앞에 내밀었다. 도저히 못 찾겠다며 같이 찾아 달라고 했다. 남편에서 도움을 청하고 나는 둘째 아이와 함께 가지고 온 그림책을 같이 읽는다.
듣는 것보다 질문하는 게 더 많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내 손에 있던 책을 빼내어 자신의 무릎에 올리고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온전히 아이에게 넘어간 그 시간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내가 가져온 책을 펴서 나란히 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 첫째 아이와 남편이 책을 찾아와 앉아 각자 독서 시간을 가졌다. 비로소 평온한 침묵이 테이블에 내려앉았다.
“엄마, 이 책은 정말 재밌다. 엄마도 한 번 읽어봐. 이 책은 빌려 가야겠다. 그런데 저 책은 좀 별로네. 표지가 멋있어서 가져왔는데 안에 글이 너무 어려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저건 다시 반납해야겠어.”
“네가 빌리려는 책, 그거 너무 두꺼운 책인데? 안에 글도 제법 많던데, 읽을 수 있겠어?”
“응, 일단 집에 가져가서 읽어보고 이야기해 줄게. 엄마.”
첫째 아이는 찾아온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고, 때로는 멈추어 자세히 읽어도 보고 메모도 하면서 빌려 갈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두었다. 음식이 뭐가 맛있는지 이것저것 먹어봐야 하듯이, 일단 읽어봐야 나에게 재미있는 책이 무엇인지, 내 수준에 맞는 책이 무엇인지, 책을 고르는 눈도 길러진다. 책을 고를 때 아이에게 결정권을 주는 가장 큰 이유였다. 가끔 내가 추천해 주는 것들이 먹힐 때가 있었지만, 입맛대로 골라 읽는 재미를 스스로 느끼길 바랐고 아이만의 방식으로 기분 좋은 독서 경험을 쌓아가기를 원했다. 독서를 지식의 축적이 아닌 묻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묻고,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그로 인해 섬세한 감각이 길러지는 즐거운 취미가 되기를 바랐다. 학령기 자녀를 둔 엄마의 사심을 약간 넣어서 말이다. 나아가 이 모든 과정이 살면서 필요한 성장의 좋은 양분이 되었으면 했다. 우리 가족의 주말 독서 나들이가 그 가치를 알아가는 귀한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진실한 순간들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모든 것은 글감이 된다는 나의 생각 때문인지,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태어난 소소한 질문들 조차 나의 생각을 넓히고,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통해 내 글에는 또 다른 차원이 더해지길 바랐다. 실제로 대화가 하나의 글감으로 이어져,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가족 이야기를 지금처럼 엮을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나의 글에 생동감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기록하고,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욕망을 다시 발견한다. 도서관에서의 이 소소한 작은 순간들 마저 내 삶과 글 속에 더할 나위 없는 재료가 되어주고 있다. 가끔은 나도 아이들처럼 책장을 넘기며 무심히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글을 쓰는 나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으니까.
사랑스러운 나의 훼방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