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 그것은, 불안과의 싸움

by 홍이

[ 파트1 - 홍 ]


그 말, 다시 들었다.


“엄마, 나.... 차기작을 써볼까 해.”


홍은 탁자 위의 물잔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또 시작이구나.’


말들은 한숨이 되어 흩어졌다.


컵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내려놓았다.




불안은 종종 예고 없이 쏟아졌다.

마주친 소낙비처럼, 피할 틈도 없이.


그것의 기원은 명확하다.

홍의 남편이 쓰러졌던 그날부터.


민우가 다섯 살이었을 때였다.


설거지를 하다 돌아본 거실 바닥에

남편이 얼굴을 박고 있었다.

장난감 총을 든 민우가 그 주위를 빙빙 돌았다.


'아.. 둘이 무슨 놀이를 하나 보네.'


대수롭지 않게 설거지를 마저 마치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도, 남편은 그대로였다.


다가가 보니

입가에 흐르는 침

바닥에 번져가는 오줌


비명을 질렀던가.

기억은 부옇고 흐릿하다.


119를 불렀고, 시어머니가 오셨고

“내 아들을 살려내”라며

불을 지르겠다고 난동을 부리셨고


그리고, 어떻게 되었더라...


그렇게 홍의 평범한 일상은 막을 내렸다.




‘살아있어?’


홍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누워있는 남편의 코끝에 손을 대본다.


숨 쉬고 있다는 걸

다시, 또다시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쿵. 쿵. 내려앉는다.


툭 떨어진 마음을 주워 들고,

자리에 몸을 눕히고

멀건 천장을 바라본다.


불안.


그것이 홍에게 들러붙었다.

귀신에 씌인듯이.




[ 파트2 - 민우 ]


입시 결과가 나온 날,

방구석에 주저앉아 꾸역꾸역 울었다.


바닥엔 문제집 몇 권과

젖은 베개가 널려 있었다.


“엄마… 나, 재수할래. 한 번만 믿어줘.”


홍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걱정 마. 너 공부 1년 더 해.”


“...”


“엄마가... 정 돈 없으면,

노래방 도우미라도 뛰어서, 너 공부시켜줄게.”


홍은 짧게 숨을 토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고, 그래서 더 위태로웠다.


민우는 벽을 내리치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재수 생활은 고통이었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모아둔 돈은 빠르게 줄었고,

민우는 죄책감과 우울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다.


이듬해, 결국 사범대에 합격한 민우는 말했다.


“국립대라 학비가 싸대. 국장 받으면 거의 공짜야.”


그날, 홍은 오랜만에 마음을 놓았다.


‘축하해. 임용고시도 잘 해보자.’


‘응. 열심히 할게.’


‘넌 공부만 열심히 해. 엄마가 어떻게든 밀어줄게.’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군 복무 중,

민우가 취미로 인터넷에 올린 소설이

출판사의 눈에 띄었다.


“엄마, 나... 계약 제안 받았어.”


민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홍은 멈칫했다.


“정말 하겠다는 거야?”


"나도 알아.

선생님 되는 게 더 안정적인 길이라는 거.

근데, 지금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 없을 것 같아.


한 번만.

진심으로 해보고 싶어.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민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 고생하는 거, 나도 알아. 미안해.”




홍은, 또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네 삶은 네거니까.’

기다림은 길고, 혹독했다.


민우는 하루에 14시간씩 글을 썼다.

책상 옆에는 다 마신 캔커피 무더기가 쌓였고,

새벽이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무도 없는 골목을 헤맸다.


가끔, 민우는 이대로

흔적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출판사와의 계약은

‘주 5회 연재, 하루 5000자 이상’


학업과 병행하기는 불가능한 분량.

손목에는 파스가 늘 붙어 있었고

목은 뻣뻣해,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 나 1년만 휴학하면 안 될까?”


“...”


“남들은 어학연수 다녀온다고 휴학하잖아...

나도 나를 위해 시간을 써보고 싶어.”


결국 학교를 휴학하고

장편 웹소설 한편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러나

수입은 한 달에 5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체중은 30킬로 가까이 늘었고,

몸은 성한 데가 없었다.


‘연재라는 거... 사람을 갈아넣는 일이구나.’


창작의 고통이란 어떤 것일까.


홍은 알 수 없었지만.

연재 중 어두웠던 민우의 표정만큼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런데, 그토록 힘겹게 완결을 냈건만

복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민우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차기작을 써볼까 해.”


민우의 말에, 홍은 굳었다.


두 번째 1년이었다.




[ 파트3 - 남편 ]


“...차기작을 쓰고 싶다고?”


남편은 조용히 물었다.

그의 손이 이불 위에서 떨렸다.


“복학한 지 얼마나 됐지?”


“얼마 안 됐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약속할게."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거면 나가!”


“또? 또 휴학이야?!”

“두 번이나? 학교가 장난이냐?

그럴 거면 아예 자퇴를 해!"


목소리는 벽을 때렸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엄마 고생하는 거, 안 보이냐...”


흐려진 눈빛은 일렁였고,

말끝은 파르르 떨렸다.


그 떨림 속에는

분노와 무력감,

그리고 죄책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건 민우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만 되지 않았어도….’


그것은 자신을 향한 한탄이었다.

오래 쥔 슬픔이었다.


무너진 몸, 꺾인 가장.


자신이 가족의 짐이 된 순간부터,

세 식구의 삶이 망가져버렸다.


아내의 짐을 덜어주지 못하는 사람.

아들의 꿈을 응원하지 못하는 사람.


누구보다 괴로운, 그 자신이었다.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운 침묵이 공기에 서렸다.




[ 파트4 - 홍 ]


그 순간, 또다시

불안의 조각 하나가 홍의 등에 박혔다.


얼음처럼 서늘하게 척추에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홍이 등을 바닥에 붙일 때마다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


베개에 머리를 대도,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깨어났다.


그렇게,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장애가 있는 남편을 돌보며

두 개의 직장을 전전하는 삶.


일은 많았고, 지쳐갔다.


오후 네 시, 알람에 눈을 떴다.

아침 일찍 세 시간을 자고,

네 시간을 일한 뒤

집에 와서 두 시간 눈을 붙였다.


이건 하루의 중간일 뿐이었다.


밥을 입에 밀어넣고,

현관문을 나서며,

잊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른 일터로

여덟 시간을 일하러 가야 한다.


"... 에휴"


그 정도였다.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피곤했다.




민우의 선택들을 홍은 늘 허락해왔다.

그것은, 허락이라기보다는 기다림이었다.


“우리 아들이, 참 어려운 길을 가는구나.”


홍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노력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길.

그 위에 민우를 세워두는 것이 옳은걸까.


정말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이

아이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아이를 믿는 걸까,

그저 놓아두는 걸까.


그 경계는 희미하고, 흔들렸다.


지켜본다는 것은,

사랑보다는 고통일 때가 많았다.




민우는 예민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이다.


스물일곱.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래서 미안해하면서도ㅡ


그래도,

한 번만 더.

더 해보고 싶은 것이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민우는 오늘도 새벽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구상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잘못한 걸까...’

작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 뒷모습이 선하다.


현실을 알면서도,

자기 길을 가려는 아이.


홍은 생각했다.

내가 저 아이였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나보다 강한 아이라고.


그래서 이번에도 허락했다.



확신은 없다.



가진 게 없어서 돈은 줄 수 없지만,

기회만큼은 주고 싶었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


언젠가 돌아봤을 때,

누구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기를.



그래서 오늘도, 홍은 기다린다.



기다림은 결코 고요하지 않다.

그것은, 매일 조용히 불안과 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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