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이 흐렸다.
구름은 낮게 깔리고, 바람이 축축했다.
비가 올 듯했다.
"자기야, 오늘 나가지 마."
"안 돼. 사람들이 기다린다니까."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쯤 쉬면 안 돼?"
남편은 대답 대신 겉옷을 집어 들었다.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 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는다.
(공 튀는 소리때문에 벨소리가 안들린다나.)
남편은 20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편마비가 되었다.
수많은 재활 끝에,
지금은 지팡이 없이도 천천히 걷는다.
불편은 남았지만,
그 안에서도 그는 길을 만들어갔다.
2년여의 병원 생활 끝에,
다시 생활로 돌아왔을 때.
장애인체육센터에 등록하고,
좋아하던 탁구를 다시 시작했다.
이젠 센터에서 ‘총무님’으로 불린다.
실제 총무는 아니지만,
새로 온 이들과 탁구를 같이 쳐주고
라켓 잡는 법부터 시작해,
이런저런것들을 알려주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센터에선 터줏대감이 되었고,
그가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기다리는 이들 덕분에,
그는 자신이 '필요한 사람'임을 느낀다.
홍은 그런 남편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은 예외다.
길이 미끄러우면,
넘어지면 어쩌지.
다쳤다는 연락이라도 오면.
그래서 홍은 비 오는 날만큼은,
남편을 내보내지 않으려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비는 점점 굵어졌다.
홍은 결국 우산을 들고 나섰다.
“아... 정말 귀찮게 하네.”
센터 앞.
직원들이 웃으며 인사했다.
"또 총무님 데리러 오셨어요?"
"네... 비가 와서요."
남편은 누군가와 탁구를 치고 있었다.
함께 치던 이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치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다.
'아, 벌써 가시나 보네…'
홍은 살짝 미안해졌다.
남편은 홍을 보며 말했다.
“왜 또 왔어.”
“비 온다니까?”
“에휴, 귀찮게 하네. 내가 알아서 간다니까.”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지만,
이미 라켓은 내려놓고 있었다.
비는 더 굵어졌고,
두 사람은 한 우산을 나눠 썼다.
"귀찮게 하네."
"거 참. 귀찮게 하네."
두 사람은 동시에 그렇게 말하며
젖은 보도블럭 위를 조심조심 걸었다.
빗방울 소리와 함께,
천천히 그리고 나란히.
서로의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늦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