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 터덜터덜 걷는 아이였다.
학교를 마치면
신발주머니를 툭툭 차며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사람들은 홍이네를 '차고방네'라 불렀다.
파란 대문을 밀어 열면,
넓은 잔디밭에
앵두나무, 모과나무가 둘러선 대궐 같은 집.
그 부잣집의 차고.
욕심이 덕지덕지한 주인집 여자는
차고에 덜렁 연탄보일러 하나만 깔아놓고
월세를 받고 있는 것이였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끼는 것밖에 없는
홍이네 엄마는
구슬 꿰기니, 바느질 같은 부업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였다.
원래는 차고였던 터라
문은 철제 셔터였는데.
엄마는 아침이면 드르륵 셔터를 올리고,
밤이되면 셔터를 내렸다.
연탄보일러와
수도꼭지 하나가 있는 좁은 부엌옆이
바로 단칸방이다.
단칸방안은 단촐하였다.
지퍼로 여닫는 비키니 옷장하나.
벽에 기대 세운 밥상 하나.
홍은 하교 후 늘 방문턱에 걸터앉았다.
턱에 앉으면 곧장 골목이다.
홍은 종아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어느 날,
어린이 도서 방문판매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심심하지? 이거 볼래?"
앞뒤로 '샘플용'이란 도장이 커다랗게 찍힌
책 한 권.
아저씨는 동네에 책을 팔러 올 때마다
책 한 권씩을 빌려주었다.
홍은 매일 아저씨를 기다렸다.
지금 홍의 손에는 해양생물 백과사전이 들려 있다.
신비로운 바다 생명들에 빠져,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상상하였다.
저 아저씨는 가오리,
저 아이는 날치.
홍은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여느 날처럼 신발주머니를 툭툭 차며
터덜터덜 돌아오던 길.
길모퉁이를 돌자, 셔터가 열린 집이 보였다.
엄마가,
낯선 남자들에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억 억, 낮은 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었다.
홍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간신히 단칸방에 돌아온 홍은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문턱에 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골목이 사라졌다.
망망대해.
끝없는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좁은 단칸방은 난파선처럼 바다 위를 떠다녔다.
파도가 철썩이며 부딪혀오고,
달빛만이 물보라를 비췄다.
묵색 바다.
그 위에 피어나는, 하얀 물거품.
물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홍은 여전히 아침이면 셔터를 올리고
밤이면 엄마 옆 맨바닥에 누워 잠들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골목은 여전히 붐볐다.
수많은 사람들이 홍을 스쳐갔다.
하지만 누구도,
문턱에 멍하니 앉은
작은 아이를 보지 않았다.
일주일 뒤,
방문판매 아저씨가 다시 찾아왔다.
골목과 방 사이에 앉은 홍을 발견하고,
홍은 구조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죽은 엄마 옆에서
일주일 동안 울지도 않고 있었다더라."
"음침한 애야."
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양생물 백과사전을 가슴에 꼭 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