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1014-241020
가을이다. 제법 쌀쌀해졌다. 감성의 계절이다. 기후위기 때문에 이 시기는 짧아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음도 급하다. 요새는 비염과 천식보다 감성이 먼저 찾아오곤 한다. 옷장에 코트가 있는지 살핀다. 노벨상을 탄 작가님처럼 그윽한 눈매가 되곤 한다. 나도 이제 젊지만은 않다. 별 것 아닌 장면에 가슴이 시린다. 상념도 많아진다. 메모장이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자라섬을 찾았다. 처음 와본 곳이다. 재즈 페스티벌에 가기 위해서 왔다. 아이와 야외 음악축제를 즐기고픈 오랜 염원이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엄두가 안 나기에 먼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다. 회사동료가 기적적인 제안을 해주었다. 그의 가평 부모님 댁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재즈의 선율을 즐기자는 것. 서너 개월 차이의 딸을 키우고 있던 터라 의기가 맞았다. 더할 나위 없는 감성 페스티벌이었다. 쾌청한 날씨 밑,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잘 모르는 음악이 흘렀지만 꽤 째지 했다.
장르 특성상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많은 아이들이 부모들과 뛰어놀았고 행복해했다. 해질 무렵이 되니 그 모습을 보던 중년 남성(나)의 감성이 움직였다. 갑자기 울컥했다. 주책맞게 왜 그랬을까. 이 당연한 그림이 특수환 환경에서만 가능한 작금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참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숙소로 돌아와 각자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 후에 부엌으로 기어 나왔다. 회사 동료와 나는 그 눈물을 복기해 보기로 했다.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감성의 계절답게 허세를 가미했다. 예술을(가령 오늘 공연한 콰르텟 밴드에 대하여) 논하진 않았다. 줄곧 아이 얘기만 했다. “육아도 아트예요!” 괜히 그런 추임새는 왜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밤 깊은 줄 몰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삶의 고달픔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한 명이 전업육아를 하는 방법의 유용성도 논했다. 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은 교육임과 동시에 서운함을 유발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 애달펐다. 독립심 함양과 정서적 안정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 답은 없다. 어쩌면 육아의 모든 면이 그러하다.
그래도 고무적이다. 맞벌이나 외벌이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자 했다. 한 때는 돈이 중요치 않다는 사람을 위선자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마음의 천청에 달아볼 감성 무게추가 많아졌다. 중요한 문제는 의외로 이성적 판단이 불필요할 때가 있다. 이건 재즈다. 손해를 생각지 않는 육아 분위기가 장려되길 바란다. 일과 육아의 황금밸런스는 분명 있다. 아이를 위한 일만큼은 감성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 보니 복직이 다가오긴 하는가 보다.
241014(월) : 등원하기 전부터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나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원하고선 놀이터에 킥보드를 타고 나갔다. 언니오빠들이 인정해 주는 느낌이다. 미끄럼틀에서 손을 잡아끌어주기도 했다. 아빠가 괜히 감동했다. 퇴근한 엄마에게 이 무용담을 한참 해주고 다 같이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241015(화) : 아침에 기분이 안 좋아 아빠와 실랑이를 했다. 하원하고선 '까루나'에 갔다. 고양이와 강아지에게 인사를 했다. 이곳의 분위기에 많이 적응했다. 집에 와서 기분이 또 안 좋았다. 아빠가 미안해했다.
241016(수) : 등원하기 싫다. 아빠가 쩔쩔맸다. 하원하고선 아빠가 기분을 풀어준다며 북촌에 데리고 갔다. 올 때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왔다. 오히려 고생시켰다며 아빠가 또 미안해했다.
241017(목) : 병원에 갔다가 등원했다. 이제 안 와도 된다고 했다. 하원하고서는 '폭포'에 가서 라이브공연을 들었다. 씨없는수박김대중이라는 가수의 노래도 듣고 조웅 아저씨와 사진도 찍었다.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241018(금) : 낮잠을 집에서 잤다. 일찍 퇴근한 엄마와 차를 타고 가평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음식을 사서 언니네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놀다가 일찍 잠이 들었다.
241019(토) : 아침 일찍 일어나 아빠와 언니네 아빠가 사 온 고기를 밖에서 구워 먹었다. 잔디밭에서도 놀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갔다. 음악도 듣고 사람도 구경하고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41020(일) : 오늘도 일찍 일어나 언니랑 밥을 먹고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스타벅스'에 잠시 들렀다가 집으로 출발했다. 오는 길 내내 침을 흘리며 잤다. '자가제면 홍제우동'에 들러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귀가했다. 아빠가 당분간 여행은 없다고 했다. 감기는 말끔히 나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