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에세이] 등껍질

등껍질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저는 요즘 한창 터틀가드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북이같이 웅크린 상태로 바닥과 하나가 되는 터틀가드요.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터틀가드를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요. 워낙에 불리한 자세이기에 보통은 상대에게 제압당하기 일보직전에 어쩔 수없이 선택하게 되는 방어수단이 바로 터틀가드입니다. 알고 있는 어떤 방어법도 시도해보기엔 너무 늦었을 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터틀가드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습니다. 위험에 처한 거북이가 자신의 등껍질로 몸을 숨기는 것과 같은 셈이지요.

사실 저는 터틀가드를 취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거기까지 안 가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보다 앞선 방어선을 집중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 어쩔 수없이 터틀가드를 취하게 되었을 땐 무기력하게 등을 내주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알다시피 등을 내주었다는 건 초크를 의미하고 초크는 결국 탭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저는 요즘 스파링을 할 때 의도적으로 터틀가드를 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마지막 방어선을 한 번 튼튼하게 구축해보고 싶어서지요.

터틀가드가 위험하다는 건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전환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 터틀가드입니다. 자신이 유리한 상황이라 생각하는 상대는 그만큼 방심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그 틈을 잘 노리기만 한다면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죠. 등껍질 안에서 기회를 엿보던 거북이가 머리만 배꼼 내밀어 상대를 꽉 깨물 때처럼 말이에요. 불리한 자세이긴 하지만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분명 방어력이 눈에 띄게 증가할 거란 확신이 듭니다. 이점은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주짓수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저에게 있어 글쓰기는 터틀가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삶이라는 상대에게 제압당하기 일보직전 마지막으로 취하게 되는 방어법이었기 때문이죠. 그동안에 삶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를 공격해왔습니다. 불안함, 우울감, 무기력함, 존재감 상실 등 다양한 기술이었죠. 저는 제가 알고 있던 방어법을 총동원해서 상대를 막아보려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물론 처음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얄팍한 전술이었는지 삶이라는 상대에게 금방 파훼되고 말았죠. 시간이 지날수록 방어선이 무너지는 날은 잦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방어선이 무너지면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쁘게 흘러갔습니다. 삶에서도 최후의 보루가 절실한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러던 중 글쓰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로 인해 변할 것 같지 않던 삶이 변했다는 이야기였죠. 대학생 시절 글쓰기에 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저는 터틀가드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에 나라곤 못할 것도 없었던 것이죠.

동시에 상황 또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터틀가드로 한쪽으로 치우칠 것 같은 경기의 양상을 바로 잡듯 글로서 무너져가는 삶의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글을 쓰고 싶은 소재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땐 기뻤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를 잊어버릴 수 있었으며,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을 땐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글쓰기는 저에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존재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삶이라는 상대가 어떤 공격을 퍼부어도 잘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있어 터틀가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기원합니다. 없다면 찾게 되기를, 있다면 잘 더 할 수 있게 되기를. 늦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배우기 가장 좋은 때는 언제나 지금뿐이니까요. 그동안 주짓수를 하며 절실히 깨닫게 된 바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기술, 그래서 나를 당황케 만드는 기술은 언제나 존재했고, 그런 기술을 접하게 되었을 땐 지금 익히는 것만이 최선이었으니까요. 내가 어떤 기술에 무기력하게 당했는지 잊어버리는 건 정말이지 한순간이었습니다.

모두에게 등껍질이 자라나기를 바라봅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지켜줄 단단한 등껍질이요. 그 등껍질을 이용해 한쪽으로 치우칠 것 같은 삶과의 대결에서 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서라도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