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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차이와 반복

실력이 제자리인 것 같이 느껴질 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걷는다. 해가 머리 위쯤 떠있는 시간 삼십 분 정도 길을 걷는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서 그런지 한 번쯤은 마주쳤던 것 같은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매일 걷는 속도가 비슷한지 신호등 불빛이 바뀌는 타이밍도 익숙하다. 그러한 익숙함 속에서 가끔 놀라게 될 때가 있다. 만개한 꽃을 보게 될 때다. 매일 별 차이 없다고 생각되는 길을 걷지만 색색의 꽃이 핀 길은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의 시선은 만개한 꽃에 사로잡히게 된다. 꽃길이 끝나면 다시 꽃길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대체 저 꽃들은 언제 이렇게 핀 거지?”, “분명 어제는 못 봤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핀 건가?”


매일 같은 시간 체육관에서 주짓수를 한다. 해가 머리 위쯤 떠있는 시간 한 시간 정도 주짓수를 한다. 매일 같은 시간 체육관을 가기에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익숙한 사람들과 스파링을 하며 익숙해진 기술을 주고받는다. 가끔 그러한 익숙함 속에서 놀라게 될 때가 있다. 내 실력이 제 자리인 것 같이 느껴질 때다. 매일같이 수련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내 몸놀림에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다 타이머가 울리면 파트너와 악수를 하며 스파링을 마무리 짓는다.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러 가는 길, 파트너를 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왜 이리 숨을 가빠하는 거지?”, “혹시 어디 부상을 입은 건가?”



어느 날 길을 걷다 또다시 만개한 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일찌감치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꽃이 만개했다는 사실은 꽃보단 그 꽃을 보는 사람이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 생각은 주짓수로 이어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짓수 실력도 꽃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개했다는 사실은 꽃보단 그 꽃을 보는 사람이 더 잘 느낄 수 있듯, 주짓수 실력은 나보단 나와 대련하는 상대가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을. 같은 하루를 반복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실은 계속해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제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 그럴 땐 실망감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히다 보면 실망감만 더 커질 수가 있다. 그런 실망감이 쌓이다 보면 결국 반복하던 걸 멈추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럴 땐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반복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또 그런 사람들이 느끼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주변 사람으로 인해 차이가 생긴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그들로 인해 반복하던 것을 또다시 즐겁게 반복하게 될지도.


반복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씨앗에게도 분명 꽃이 되기까지 무수히 반복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꽃은 어느 순간 만개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반복의 힘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씨앗을 꽃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무엇이든 반복을 하고 있는 이라면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앞으로도 즐거운 반복을 반복하여 만개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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