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점이라는 점수는 무엇일까?
과락이란? 어떤 과목의 성적이 합격 기준에 못 미치는 일. 공무원 시험은 과락이 있다. 한 과목이라도 40점미만을 받는 경우 과락이 되어 불합격한다. 자격증도 아닌 공무원 시험에는 왜 과락이 존재할까? 자격증이라는 것은 어떠한 자격을 주기 위해 모든 과목을 균등하게 알아야 하는 것을 목적을 하기 때문에 과락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에 적용되는 이유는 알기 어려웠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잘 해야 하는 과목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학원을 등록하면서 100점을 받겠다는 목표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은 먹었지만, 어떻게 공부를 해야 될지 막막했다. 내가 준비할 공무원 시험 5과목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학, 사회 중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건 영어였다. 영어는 기본기가 안 되어 있으면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기도 하고, 영어로 많은 당락이 결정된다고 말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득점을 받기 까다로워하는 과목이었다. 나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던 나는 처음 2달 동안은 학원에서 영어 수업만 듣기로 했다.
영어 수업 첫날, 실력 테스트를 쳤다. 공무원 학원을 가서 처음으로 응시하는 공무원 영어 모의고사였다. 공무원 시험이 어떤 유형으로 나오는지도 모른 채 학원을 갔던 터라 모의고사 문제 유형은 생소하고 낯설었다. 문제의 양과 관계없이 시험이 생각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찍는 게 더 많았다. 단어도 문제는 하나도 모르겠고, 문법과 독해는 그나마 알던 지식을 총 동원해서 풀었다.
푼 모의고사는 OMR 카드에 마킹해서 제출을 하면 영어 모의고사 등수를 알려준다고 했다. 수업을 한 지 10분 정도가 지났다. 갑자기 진동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진동소리에 나는 시험 결과 알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수업 중에 나는 결과가 내심 궁금했다. 이 모의고사는 어쩌면 시험 준비의 기세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력 테스트라는 명목이 어쩌면 나의 그동안의 실력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학원을 가면 기초 학습 능력을 보기 위한 테스트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니 결과가 좋게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시험 결과는 35점 180/200등이었다. 나와 동점을 받은 친구들이 15명 정도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꼴등이었다. 그 점수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공부를 안 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공부를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객관적인 점수로 다시 눈으로 확인하니 부끄러웠다.
나의 영어점수 35점. 35점은 공무원 시험에서 과락으로 불합격하는 상황. 첫 모의고사의 결과는 나의 공부 상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공부를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에서 과락을 받을 정도의 실력인 줄은 몰랐다. 사실 나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공무원 학원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나의 기본 상태를 알게 되니 여기에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는 틀린 문제를 보며 문제점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사실 문제점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보통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형별로 틀린 개수를 찾아야 되는데, 나는 맞힌 문제를 세는 게 더 빨랐기 때문에 파악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실력 테스트에서 과락을 받을 정도의 실력이면, 사실 공시를 하는 게 맞을까? 시험을 준비하는 방향성이 맞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에 과락이 있다는 것은 과락이 안 되면 공부를 하지 말라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궁금해졌다. 첫 실력 테스트에서 과락을 받은 사람 중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확률은 얼마나 될지. 내가 열심히 하면 합격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해봤다. 고민을 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시험의 결과가 과락인거지 1년 뒤에도 같은 결과를 받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락이라는 것은 이 시험을 합격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기본 점수이지 않을까? 나는 현재 기본기가 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남들보다 조금 뒤쳐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건 조금 남들보다 공부를 안 했던 시간만큼 고생을 더 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나의 상태를 직면할수록 두려움이 커지면서 지금 당장 포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주변에 공부한다고 말도 다해놓은 상태인데, 지금 그만두면 좀 스스로에 대해서도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나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 얼마만큼 공부를 해낼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나는 일단 1년만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시험에서 과락을 받은 것은 남들보다 더 노력하라는 뜻이지, 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 대한 자격을 말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