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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0. 2021

올레길, 이동이 아닌 치유로 걷기

바다도 만나고 구름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지만 결국 나와 마주치게 되는 길

<올레길을 걸으면 바다도 만나고, 구름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지만 결국 나와 마주치게 된다.>

 '걷기'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스포츠이자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치료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한때 지방자치단체별로 걷기에 좋은 길을 발굴하고 조성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더랬다. 대한민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주역은 누구일까? 한동안 많은 셀럽이 걷기의 장점을 역설(力說)하며 걷는 즐거움을 몸소 보여주었지만, 벌써 십수 년도 전에 걷기를 국민운동으로 만든 장본인이 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제주 올레길이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한다. 통상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평범한 시골 동네 길이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탄생했다. 도시에 있는 복잡한 도로가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기능에 집중한다면 제주 올레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데 집중한다. 그 사람은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여행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몸은 지쳐가지만 마음이 치유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진정한 자아와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도에 갈 비용이면 조금 더 보태 해외여행 가는 게 낫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정도로 제주 여행이 주춤했던 적이 있었다. 뜸해진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제주로 돌린 결정적인 이유가 올레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출처 : 제주올레 홈페이지 /  https://www.jejuolle.org/trail/kor/>

 제주 올레길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개발했다. 제주 출신 언론인이었던 서명숙 이사장이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고향인 제주에도 그 같은 치유의 길이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계기가 되었다. 2007년 9월 제1코스 (시흥~광치기 올레)가 개발된 이래, 현재까지 총 21코스가 개발되었다. (부속 코스까지 총 26개, 425km) 제주의 해안지역을 따라 골목길, 산길, 들길, 해안길, 오름 등을 연결했으며 제주 주변의 작은 섬을 걷는 코스까지 다양하다. 제주 어딘가를 걷고 있다면 그 길이 올레길인 셈이다. 


<제주올레 7코스 :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 월평 아왜낭목 쉼터 / 출처 : 제주올레 홈페이지)

 우리 가족은 해안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제7코스를 완주했다. 제7 코스는 총길이 17.6km에 난이도 '중', 소요시간은 대략 6시간이라고 제주 올레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한 여름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기에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이미 두 차례나 한라산 정상 등반 경험이 있던 터라 해안길은 가벼운 산책 정도로 생각하고 나섰는데 정말 큰코다칠 뻔했다. 아내는 발바닥에 엄청 큰 물집이 생겼고, 둘째 아이는 몇 번이나 길 한가운데 누워 버렸다. 그래도 도착 지점인 월평 아왜낭목 쉼터에서 웃으며 '다음에 한번 더'를 외치는 모습을 보니 두꺼운 허벅지가 헛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외돌개 주차장에서 돔베낭길 주차장까지 일부 구간만 걸어보는 것도 좋다. 아쉬운 대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을 경험할 수 있다. 

<코스 초입인 폭풍의 언덕>
<외돌개 전망대>
<열심히 걷다 보면 이런 풍경은 공짜다>
<아직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강정마을도 지나간다>

 일부 해안길을 걷다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종종 있었다. 각종 해양 쓰레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철없는 일부 관광객들의 소행이라 추측했다. 플라스틱 음료수 용기, 화려한 색상의 과자 봉지, 검은 비닐봉지와 아이들 물놀이 도구까지 쓰레기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가져온 물건 그대로 가져가기만 해도 아름다운 제주의 바닷가를 쓰레기 더미로 만들지 않을 텐데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쏟아졌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지금처럼 플라스틱에 의존해 계속 살 경우, 2050년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바다는 지구 산소의 약 50%를 공급하는 중요한 보고(寶庫)이자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자연적으로 포집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국가가 수산물을 주요한 식량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굳이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 않더라도 이대로 방치하면 제주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배낭에 빈 생수통과 음료수병을 고스란히 담아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배달 음식에 딸려오는 일회용 숟가락이나 포크 사용하지 않기, 텀블러와 에코백 사용 생활화하기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사용을 멈출 수는 없지만, 조금씩 줄여나가야만 했다. 물론 ‘나 하나 바뀐다고 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하나의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한 촛불이 모여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올레길은 하루를 온전히 내주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다양한 제주의 비경들을 보여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제주도 너무 아름답지만, 오로지 자신의 다리에 의지한 채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면 색다른 제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흔하디 흔한 풀 한 포기, 이름 모를 들꽃과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어느새 치유된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이들에게만 제주가 허락한 선물이다. 마법 같은 신비한 힘의 원천이 제주나 올레길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처음부터 우리에게 속해 있었다. 다만 올레길은 꽁꽁 닫힌 문을 살짝 열어주기만 할 뿐이다. 몸도 마음도 지친 당신이 올레길을 걸을 수 없다면 먼저 동네 골목길을 걸어보면 좋겠다. 혹시 그곳에도 당신이 알지 못하는 마법의 힘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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