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전에 시간이 나서 동네 카페를 갔습니다. 비도 오고 습한 장마철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흘러 정신이 혼미하고 어지럽습니다. 호우경보 문자도 오네요.
언제부턴가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한다는 안내에 여전히 적응이 안 됩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더 좋은데 눈이 부시게 겉만 화려한 모니터 화면과 대면해야 한다니요. 화면을 뜯어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전선과 납땜 자국만 있을진대 참으로 허탈합니다.
걸음을 앞뒤로 옮겨가며 눈살을 찌푸리다 겨우 하나하나 선택하여 주문 번호를 받았습니다. 가져온 책을 올려놓고 펼치려는 찰나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고 합니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겨를이 없습니다. 한 손으로는 빨대를 챙기고 다른 손으로는 음료를 들었더니 놀라움이 느껴집니다. 음료를 쥔 손이 왜 뜨겁지요? 날씨가 더우니 손도 열이 받나요? 빨대를 들었던 손은 너무 부끄러워 볼이 빨개져 다시 내려놓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 날씨에 뜨거운 커피라니. 제대로 주문한 게 맞는지 물어봐 줄 수는 없었나? 저 반짝이는 텅 빈 고철덩어리에서 아이스라는 글자는 본 적도 없는데? 커피머신 바로 앞에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었음에도, 아르바이트생 2명은 서로 수다를 멈추지 않느라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나? 그러게 내가 주문 좀 받아달라고 할 때 그냥 받아주지 키요스크를 이용하라니...?
커피를 즐기지도 않는데 큰맘 먹고 책 보려 왔건만, 이 무슨 봉변인가. 또 음악소리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다른 카페들은 잔잔하고 조용한 음악이 잘만 나오던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너무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귀한 시간이라 책을 펼칩니다.
여전히 마음은 불편합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들은 너무도 즐겁게 일하고 있고 웃음소리를 듣다 보니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잠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보았습니다.
아침에 카페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음료 만들 준비가 한창입니다. 문 열자마자 오신 손님이 키오스크가 생긴 지가 언제쩍인데 주문을 받아달라니. 이 손님은 눈치도 없는 건가.
어라? 이 날씨에 아이스가 아니네? 독특하신 분이네. 금방 자리를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카페 에어컨이 추워서 그런가? 손님 취향은 존중해 주어야지.
'짜잔' 초 스피드로 음료 준비했으니 많이 놀라시려나~
오늘 선곡은 비도 오고 찝찝하니 신나는 댄스곡으로 가자~!! 어제 있었던 일 수다 좀 떨면서 스트레스 풀어 볼까~!?
이번엔 손 등이 아니라 얼굴이 빨개집니다. 눈치 없이 바쁜 사람 붙잡고 무리한 요구를 했고, 키오스크 화면을 좀 더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스를 꼭 찾아서 선택해야겠습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카페가 직장인데 맘 편하게 대화도 못해서야 되겠나요? 즐겁게 일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할 판입니다.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가 나옵니다. 커피 제조 스킬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90년대 댄스곡이 나오다니, 노래 선곡에 감각도 있는 분이네요? 책도 보고 노래도 듣고 비 오는 날씨에 기분 째집니다.
결국 제 잘못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불평하지 않고 마음을 고쳐 먹었음을 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평온을 되찾고 독서 삼매경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