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스키 Dec 23. 2021

나에게 아침이란

AM 8:00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저혈압과 빈혈이 심하기에 벌떡 일어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첫 번째 알람은 눈뜨는 시간, 말 그대로 눈만 뜨는 시간을 알려준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눈을 깜빡거리거나 심호흡하면서 여전히 잠자고 있는 몸을 깨운다.


AM 8:08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몸을 옆으로 돌려 손으로 매트리스를 짚고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는다.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고, 정말 짜증 날 때는 돌고래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무튼 너무 급하게 움직이면 현기증이 오기 때문에 나무늘보 같은 속도로 천천히 손을 뻗어 전날 밤에 떠 놓은 물을 마신다. 물 양은 딱 180mL인데, 가능한 한 다 마시려고 노력한다.


AM 8:13

마지막 알람이 울린다. 이제 일어나 화장실에서 볼일 좀 보고, 체중계에 올라간다. 이때 나오는 숫자에 따라 그날의 운동량과 점심 메뉴가 결정된다. 이쯤 되면 잠에서 완전히 깬 상태이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재빨리 아침 음료를 마신 다음 출근 준비를 하든, 운동을 하든 그때그때 일정에 맞추어 생활한다.


겨우 십오에서 이십  사이의 특별할  없는 루틴이지만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분까지 정확하게 맞추어 움직이고, 어지간한  아니면 바뀌는 법이 없다. 사실 언제부터 이렇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침을 미워한다. 아침의  모습은 얼핏 보면 규칙적인 듯하나, 실은 알람의 노예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투성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고 싶지만 아침에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에게 아침은 재미없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에 변화를 주기 시작한 것은   전부터다. 체중을  후에  마시던 커피를 더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잔이라도 줄여보고자 채소 주스로 바꾸었는데 처음  주간은 머리가 콕콕 쑤셨지만 지금은 참을만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커피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맛이나 향을 의식하고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 마시듯이 그냥 꿀떡꿀떡 들이켰다. 그런데 요즘 채소 주스를 마실 때는 맛도 음미하고 건강해지는 기분도 즐기면서 행복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주스가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커피 마시지 않기를 잘 지키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해서 그런 듯하다.


아침이 즐거웠던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낯선 기분이지만 싫지 않다. 무언가를 자제하고 스스로 컨트롤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던가. 늘 같은 일상이지만 조금씩 변화를 주다 보면 언젠가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전 02화 똑딱똑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