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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들리Ridley Aug 20. 2024

그해 가을밤과 이 시대의 사랑

리들리 수필

  대학교 3학년이 되고서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쉽게 말해 2학기였다. 유달리 좋은 강의를 많이 접할 수 있던 학기였다. '사랑학개론'처럼 이전부터 듣고 싶었던 인기 강의나, '창작의이론과실제'처럼 좋아하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해 여름은 유달리 수강 신청에서 운이 좋았다.



  '창작의이론과실제'는 시를 배우는 과목이었다. 수십 년째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고 계신 교수님과 함께 시를 쓰고 합평하는, 일종의 실습수업. 조별과제는 없었지만, 개인 발표는 있었기에 강의실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시 쓰는 일을 얕보았다가 교수님의 비평에 초라해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 만 나는 그 수업이 좋았다. 남들은 재미없다며 멀리하던 교수님의 강의 방식이 내게는 잘 맞았고, 다른 수업에 비해 적당히 현학적이었기에,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랑>이라는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그때 사 읽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시집을 바꿔가며 그것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다. 필사를 과제로 내어주기도 하셨다. 당시의 나는 시집을 읽어 본 일이 적었기에, 시집을 사는 일이나 시집을 읽고 따라 쓰는 일 모두 어색했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시와의 동행. 와닿지 않아 억지로 읽은 시가 있었고, <내 청춘의 영원한>처럼 좋아하게 된 시도 있었다.



  석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입에서는 늘 입김이 나왔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교수님은 박수갈채와 함께 강의 마치셨다. 몇 주만 더 듣고 싶었던 수업이 기어코 끝나버렸다. 모든 수업을 들은 나의 점수는 B+. 만족했다. 교수님께서는 과에서 점수를 가장 짜게 주시기로 유명하셨고, 알음알음 들은 바로는 D나 F를 받은 학생도 몇몇 있었으니까.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나름 만족할 만한 점수였다. 교수님을 다음 해에도 뵙기를 바라며 3학년을 모두 마쳤다.



  그러나 교수님을 다시 뵙게 된 곳은 강의실이 아닌 지역 언론의 보도에서였다. 새로 부임한 총장에 맞서 시위에 나선 교수님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계셨다. 보복성 징계에 부당함을 호소하는 시위. 교수님께서는 부당한 처우에 굴종하는 순간 학생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화면을 조용히 캡처해, 그것을 틈틈이 바라봤다. 교수님이 다시 떳떳해지길 바랐고, 나 또한 언젠가 맞이할지도 모를 부조리에 맞설 수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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