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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이어서-!
아침이 되자 통증이 줄었고 기분도 나아졌다. 여전히 배가 아팠지만 출혈 같은 증상은 없었다(유산의 주요 증상은 복통과 출혈이다). 밤새 병원이 열기만을 기다렸으면서 막상 가려니 망설여졌다. 남편이 출근해 혼자 가야 하는데 잠을 못 자 피곤하고 귀찮았다. 별 거 아닌 일로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했다. 진료는 5분도 안돼 끝날 것이었다. 늘 그렇듯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 그래도 집을 나섰다. 마음 한편이 계속 불안했기 때문이다. 또 악몽을 꾸긴 싫었다. 괜찮다는 한 마디가 전부더라도 오늘은 그 말을 꼭 듣고 싶었다.
하필 토요일이라 산부인과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정말이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저출산을 둘러싼 언론의 호들갑을 의심하곤 한다.. 강남 학군지에서 40명을 데리고 수업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대전도 분만병원이 늘 붐비는 데다 산후조리원 예약도 치열하다. 2030 세대가 애 안 낳는 게 문제라는데 정말 그럴까..?) 그중 아기를 데려온 젊은 부부에게 눈이 갔다. 한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기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뽀얀 피부에 토실한 팔다리를 뽐내며 이따금 내 쪽을 쳐다봤고 그때마다 나는 격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나긴 대기 시간 동안 물끄러미 아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문득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간 나에게 임신은, 입덧을 비롯한 각종 불편함을 동반하는, 전에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틈에 불쑥 찾아와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무거운 책임과 막연한 공포를 내맡기는 불청객이었다. 말하자면 사고 혹은 재해였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저 아기는 천사 같았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순수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존재가 내 안에도 있었다. 나와 남편을 닮은 이 아기는 곧 세상에 나타나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할 예정이었다. 몇 달만 지나면 나는 그와 온종일 눈 맞출 수 있었다. 손 잡을 수 있었다. 만지고, 쓰다듬고, 냄새 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임신이란 대단한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1시간쯤 흘렀을까. 그 부부가 먼저 진료실로 들어갔다. 둘째를 가진 듯했다. 여자분은 입덧부터 출산까지 다 겪고도 어떻게 또 임신을 하셨을까? 두 명 육아는 보통 일이 아니라던데.. 하긴 저런 아기라면 또 낳고 싶을 수도 있지. 잠시 그러고 앉아있으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상황을 설명하자 역시나 의사 선생님은 별 문제없을 거라며 쿨하게 반응하셨다. 곧이어 초음파로 본 아기는 매우 건강했다. 사타구니 근처의 부위는 자궁이 맞았고 어젯밤 아팠던 그곳에 정확히 아기가 있었다. 아기집이 커지는 과정에서 종종 이처럼 아플 수 있단다. 선생님은 활발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는 아기에게 "엄마는 아픈데 이놈의 새끼는 신났네!"라고 하시곤 심장 박동을 확인하셨다. 아기 몸속 검은색 점에 마우스를 갖다 대는, 볼 때마다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이라 조금 오싹하기까지 한 그 장면이, 새삼 신비로웠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 소리와, 다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끝났다고 다리를 툭툭 치는 손길, 간호사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에 갑자기 눈물이 날 뻔했다. 몇 번이나 병원에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그냥 다 감격스럽고 감사했다.
집에 오는 길엔 태국 음식점을 들러 팟타이를 시켰다. 배가 고팠는지 후루룩 잘 들어갔다. 남편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엔 설렘과 들뜸이 묻어있었다. 기분 좋게 소식을 전하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오후엔 다이어리에 초음파 사진을 붙이고 짧은 일기도 썼다. 아기 머리 크기도 자로 그렸다. 아마도 그날이었을 것이다, 나의 모성애가 시작된 순간이.
그간 나는 '애착'이 '애증'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내가 내린 애착의 정의는 이랬다. 한 사람이 그의 본능 혹은 필요, 취향, 긍정적인 경험, 좋았던 기억 등에 따라 어떤 대상을 한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 그래서 아껴주고 싶은 것. 돈과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고 더 자주, 오래 보고 싶어 지는 것. 모성애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으로 타고났든, 간절하게 원해서든, 키우며 정이 들든 그것의 이유와 정도는 제각각이어도 '좋음'으로만 구성된 짙은 사랑이라는 점은 똑같다고 믿었다. 아이가 자라면 감정이 복잡해지겠지만 적어도 갓난아기를 향한 엄마의 마음은 순도 100% 애정일 터였다. 그게 모성애의 정의이자 본질인 줄 알았다. 그러니 만약 나에게도 모성애가 생긴다면 그 시작은 분명 (아기의 귀여운 외형이나 사랑스러운 행동 따위에서 오는) 호감에서 비롯되리라 예상했다.
실상은 반대였다. 나의 모성애는 고통에서 시작됐다. 끔찍했던 입덧과 환도 통증, 그로 인한 고생, 짜증. 원하는 걸 못하는 데서 오는 슬픔과 무력함, 그걸 버티고 이겨냈던 과정.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얻겠단 오기, 갑작스런 복통, 아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공포. 이것들이 쌓여 진한 애착으로 변했다.
성경 속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따먹는다. 이에 대해 하느님은 아담에겐 노동의 저주, 이브에겐 출산의 고통이란 벌을 내린다. 임신하고 처음엔 괜히 이브를 원망했다. 언니 왜 그랬어,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임신과 출산이 힘든 건 신의 큰 그림 같다. 신도 아는 것이다. 애착이 어디에서 오는지. 나는 희생도 양보도 원한 적이 없다. 다만 상황에 밀렸고 정신 차려보니 이미 많은 부분을 내어주고 있었다. 임신하더라도 내 일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몸이 안 따라줬다. 체력도 여유도 없어서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는 과정에만 집중하게 됐다. 지금도 이런데 출산 후엔 어떨까. 내 몸이 망가질수록, 고초를 더 겪을수록 아이에 대한 애착이 심해질 것 같다.
그러니 이제야 이해된다. 학교에서 마주한 모성애의 이상한 단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생색내는 엄마들, 자기가 낳아놓고도 육아가 너무 힘들다는 투정과 자식을 자기 뜻대로 키우려는 통제 심리. 왜 저렇게 극성이지? 이기적이지? 왜 아이만 보고 살아? 애초에 자식한테 덜 해주고 덜 바라면 되잖아. 일찍 독립시키고 내 인생 살면 되잖아. 생색도 덜 내고 효도도 안 바라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나?
안 된다. 그게 안 된다. 보통의 관계처럼 적당히 거리 두고, 서로 선 넘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잘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임신을 한 순간부터 엄마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모든 걸 빼앗긴다. 그래서 쿨할 수가 없다. 생색을 안 낼 수가 없다. 주변을 두루 살피고,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공정하게 대하며, 바라는 것 하나 없이 느긋하게 지낼 수가 없다.
요즘엔 유튜브에 아기 영상이 뜨면 지나치질 못 한다. 유산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길 가다 아기를 만나면 한참 바라보게 되고, 우리 아기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태동이 느껴질 땐 배 안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 같다. 아기는 물고기고 나는 바다다. 내가 바다라니, 누군가를 품기엔 속도 좁고 그릇이 작은데.. 남편이 아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면 "진짜 사랑해? 왜?"라고 물어보지만.. (나는 아직 사랑까진 아닌 듯..) 얼른 아기를 보고 싶고.. 건강과 면역력을 위해 모유 수유도 해주고 싶다. 한편으론 이러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게 될까봐, 그래서 집착하고 옭아매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나를 갉아먹는 사랑은 하기 싫다. 역시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