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가을날이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너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친한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근데,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데 여자가 더 가을 많이 타는거 같은데? 아니면 나한테 남성 호르몬이 많은 걸까?"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누나! 누나는 사계절 다 타시잖아요."
MBTI를 들먹이자면 나는 대문자F의 성향을 가졌다. 감성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며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다. 날씨에 기분 영향도 많이 받으며 계절도 탄다. 요즘 푸르고 높은 하늘과 하얗고 뭉게뭉게한 구름을 올려다보며 매일, 여러 번 감탄하는 중이다. "아~ 진짜 가을~ 너무 좋잖아!"
산책하듯 느긋하게 걷고 싶어서 자꾸 나간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좋아하는 나무도 실컷 보며 걷는다. 끝부터 시작해서 그라데이션으로 빛깔이 변하고 있는 나뭇잎을 보며, 벼가 누렇게 익어 눈이 부신 황금 들판을 보며, 계절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에 경탄하게 된다. 물드는 이계절의 신비함이 아름답고 나도 곱게 물들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으로는 올해가 몇 달 안남았구나 싶어 살짝 센치한 감정에 빠진다.
그러나 오늘은 그냥 가을에 흠뻑 취하고 싶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에 감사가 절로 나왔고, 아직은 마른 낙엽이 씁쓸하게 나뒹굴지 않아서 보기 좋았다. 아마도 조금 통증이 덜해진 허리 상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무엇보다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감격스럽고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일거다. 이 기분좋은 날, 밤바람을 맞으며 캔맥주 한 캔 시원하게 들이키고 싶은 가을밤이다. 문학인들이 깊은 행복에 빠진 이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