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교 May 13. 2024

작가에게도 필살기가 필요하다

'믿고 읽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지난 이야기

글 써서 먹고살기로 결심한 뒤 뼈저리게 느낀 게 하나 있다면, 영감이 올 때만 쓰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는 걸.

그러나 천재들의 루틴에 따르면, '글이 술술 써지는 느낌'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어떤 날에는 좋은 글이 나오고, 어떤 날에는 더 많이 고쳐야 할 글이 나올 뿐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잘 써지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냥 계속해서 쓴다면, 그 모든 시간이 모여 결국 한 권의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믿고 읽는 작가'란 무엇인가


가끔은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아, 글 정말 잘 쓴다." 이 작가는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훔쳐 읽은 것처럼 글을 쓸까. 이럴 땐 책을 손에 든 채로 잠시 미소 짓게 된다. 좋은 글을 발견한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니까.


그러나 정말 가끔은, 좋은 것을 넘어 충격적인 글을 읽게 될 때가 있다. 이때는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잠시 그 자리에서 책을 덮고 탄식을 내뱉을 뿐이다. 작가의 경이로운 통찰력이나 상상력, 문장력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충분히 감탄하고 나서야 다시 책을 펼친다. 이건 그 작가를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쫀득한 문장이나 장대한 세계관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길래 이런 글이 탄생했을까? 나도 죽기 전에 이렇게 엄청난 글을, 아니, 이런 문장을 하나라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다짐한다. 이 작가가 향후 어떤 책을 내더라도 기어이 찾아 읽으리라. 내게 있어 '믿고 읽는 작가'는 이렇게 탄생한다. 믿고 읽는 작가 리스트가 늘어날수록 책을 읽는 기쁨이 늘어가고, 서점에 드나드는 일이 더 잦아진다.




아무도 믿지 않던 나의 글


누군가 내 글을 '믿고 읽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꾸준히' 써야만 한다. 둘 중 하나만 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 둘을 병행해야 한다니, 읽는 이에게 신뢰를 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 중앙지에서 칼럼 연재를 제안받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계약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부탁을 받게 되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앞으로 연재할 글 열 편의 목차를 미리 알려줄 것, 그리고 첫 원고를 아주 여유 있게 보내줄 것. 팀 내에서 "원고를 촉박하게 받아 그대로 싣기에는 불안하다", "목차를 미리 검토하고 싶다"라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글을 충분히 수정할 수 있도록 미리 보내달라'라는 건 글쟁이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부탁이 아주 정중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나는 몇 권의 책과 칼럼을 집필한 이력이 있었지만, 중앙지 정기 연재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아직 나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그 말은 정당했다. 실력을 증명해 신뢰를 주면 되는 일이었다.




작가에게도 필살기가 필요하다


잘 갈아낸 칼날 같은 통찰력,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한 세계관, 읽는 이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필력까지. 믿고 읽는 작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필살기가 하나씩 있다. 그러니 믿고 읽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장점을 하나 정해두고 갈고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능력 있는 작가가 쏟아지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주어진 일은 미리 끝내고, 촉박한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기한 안에 완수한다. 처음에는 이게 나의 장점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항상'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는 걸. 


회사로부터 목차와 원고 한 편을 미리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칼럼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 년간 연재할 글의 제목과 각 글의 내용을 모두 담은 기획안을 만들고, 한 편이 아닌 두 편의 원고를 미리 썼다. 약속된 날짜가 오기 전 세 개의 파일을 미리 보냈다.


시간이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목차와 원고가 너무 좋아 팀에서 물개박수가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원고를 쓰는 내내 이 말을 어찌나 고대했는지!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를 감쌌다. 나는 이렇게 약속을 지키며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장점


약속을 지킨다는 건 엄청난 문장력이나 통찰력처럼 강력한 필살기는 아니다. 그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하며, 절대 녹슬지 않을 장점이다. 지각하지 않는다. 좋아질 때까지 고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기로 다짐한 이후부터는 글을 쓰는 두려움이 확연히 줄었다. 어떤 글이든 시간과 공을 들여 고치면 되니까.


작가로서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누군가에게 '믿고 읽는 작가 되기'다. 단 한 명뿐이라도 좋으니, "저 사람 글은 늘 좋더라"라고 말해주는 독자가 나타나면 좋겠다. 그날이 올 때까지 꾀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써나갈 셈이다.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장점을 무기처럼 두르고서.



소소한 일상과 각종 소식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이전 05화 '천재 작가'에게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