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네, 저는 '안 움직여 인간'이에요. 누군가 저에게 “날씨가 좋으니 잠깐 걷자”라고 권하면, 항상 “운동하자고? 이동하자고?”라고 묻곤 했어요. 저는 운동하거나 이동할 때 아니면 걷지 않았으니까요.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거든요. '사람들은 도대체 왜 목적도 없이 걷는 걸까?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죠.
Q. '안 움직여 인간'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A.제가 새롭게 만든 말이에요. 안 움직여 인간이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라고 볼 수 있죠. 안 움직여 인간은 움직이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해요. 방 불을 끄러 가기 귀찮아서 스마트 전구를 사고, 휴일에는 가급적이면 침대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머리맡에 나만의 편의시설을 갖춰 놓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가끔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 미룬답니다.
Q. 아, 안 움직여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겠는데요.
A. 하, 가끔은 세상이 좀 각박하다고 느껴져요. 안 움직여 인간과 저질 체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거든요.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만 하고, 돈을 버는 데는 대체로 꽤 많은 시간과 품이 들어가잖아요. 퇴근 후 운동은 고사하고 의자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씻으러 갈 체력이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게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죠.
Q. 그렇다면, 안 움직여 인간으로 살아남는 노하우 같은 게 있나요?
A. 당연하죠! 일단 대중교통을 탈 때면 항상 '빈자리 레이더'를 가동해요. 늘 미어캣이라도 된 양 끊임없이 두리번거리죠. 언제 어디에서나 빈자리가 나면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할 수 있도록요. 앞사람이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기는 모습과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습을 모두 놓치지 않는 것이 포인트예요.
Q. 만약 빈자리가 전혀 없다면요?
A. 아, 그건 최악의 시나리오죠.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날에는 오직 튼튼한 어깨 끈이 달린 가방만을 고집합니다. 손잡이를 잡기 위해서는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왜? 한 손으로 손잡이를 쥐고 한 손으로 가방을 들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셨다면 당신은 아직 진성 안 움직여 인간이 아니에요(칭찬입니다).
진정한 안 움직여 인간은 빈약한 근력 탓에 한 손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거든요. 손잡이를 잡는 손을 계속 교대해 줘야 해요. 그런데 나머지 한 손조차 가방을 드느라 혹사당한 상태라면, 두 손 모두 쉴 틈 없이 고통받게 되는 거죠. 이게 바로 두 손이 모두 자유로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만의 비결인데... 혼자만 간직할까 하다가 특별히 공개합니다. 저는 장을 보러 갈 때마다 항상 밑창이 살짝 닳아 있는 슬리퍼를 신어요.
Q. 밑창이 닳아 있는 슬리퍼요? 그건 왜요?
A.대형마트는 대체로 바닥이 반질반질 매끈해요. 카트를 밀고 다녀야 하니까요. 그래서 미끄럼 방지 기능이 떨어지는 슬리퍼를 신고 가면, 굳이 다리 근육을 제대로 쓰며 걷지 않아도 스케이트 타듯 두 다리를 밀면서 이동할 수 있어요. 인도어 스케이트랄까요. “이 슬리퍼 밑창 닳은 것 좀 봐. 비 오는 날에 신었다가는 큰일 나겠어” 같은 말이 나온다면 최적의 상태랍니다.
Q. 정말... 징하네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안 움직일 수 있나요?
A. 이 정도는 되어야 '안 움직여 인간'이라는 단어의 창시자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니,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요. 숨쉬기 운동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던 제가 어떻게 운동에 입문했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침대 딛고 다이빙>을 통해 그 비밀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