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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 Sep 03. 2021

물건의 역사를 찾아서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나요(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 제주여행기2)

8월부터 아침먹기 리추얼 을 시작하며 자주 쓰는 그릇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릇이 있었다. 2006년 9월 파리로 교환학생 자격으로 자취를 할 때 처음 구입했던 그릇이었다. 오븐에 넣어도 되는 사기그릇이라 탄탄했고 15년 지난 지금 써도 문제가 없는 그릇이었다. 구매한 곳은 유럽에서 나름 이름 있는 식기 브랜드였는데, 막상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하단 이미지의 흰 그릇)


내 인생의 반이나 되는 시간을 함께한 그릇을 떠오르며 막상 내 주변의 물건 중에서 나와 오랫동안 역사를 함께 한 물건을 떠올려봤다. 옷, 신발, 가방, 찻잔 등이 대부분 역사를 오래 함께 해주었다. 반면 뷰티 제품이나 액세서리류는 유통기한이나 관리가 쉽지 않아서 세월에 비껴나가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나오면 다 소중한 가치와 추억을 해왔던 물건이지만, 시간에 지나가면서 내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는 물건이기에 쓰레기통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제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지난 주말에 대대적인 집 청소를 했었다. 옷장의 옷들을 모두 정리하면서 곰팡이가 쓸거나 2~3년이 지나도 입지 못하는 옷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물품보다 옷을 버리는 것보다 구매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나 어플 등 통해 온라인에서 구매한 옷은 옷의 재질이나 디자인 등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내 몸에 잘 맞는지 피부톤에 맞는 색상인지 고려하기보단 좋아하는 색상들에 치중하여 고르기 쉬운 옷들을 고르기에 정작 필요한 옷을 사지 못하고 충동구매로 구입한 옷들이 다수였다. 정말 내게 맞는 톤의 색상은 따로 있음에도, 내 몸의 치부를 가려줄 수 있는 디자인 스타일이 있음에도.. 옷 수거함으로 보내는 옷들은 입지 못하고 눈으로 즐기는 옷들이 대부분이었고 쉽게 사고 쉽게 버리게 되었다. 옷을 살 때는 반드시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내 몸과 피부톤에 맞는지 착용해보고 살 것으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나요


이번에 제주로 여행을 오면서 비움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끔 떠오르게 해 준 장소가 있다. 제주시 탑동에 위치한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이다. 3박 4일간의 이번 여행의 타임스케줄에 없었던 곳인데, 어제 옛 직장 동료 명쌤을 만나고 세번째날 여행지로 정했다. 마침 오늘 오전 시간에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 들러보기로 했다. 예술창작가들과 제작자들을 위한 콘텐츠와 지원기금을 마련하는 공공기관에서 함께 몸담은 그녀는 2년 전 가족과 이주하여 새로운 삶의 공간을 제주에서 그려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주에 들른 터라 그녀의 소식이 궁금하여 만남을 청했다.


어제 그녀가 건넨 쇼핑백이 인상적이었다. 제주 흑돼지, 딱새우 컵라면과 감귤과즐이 담긴 쇼핑백은 스포츠 브랜드 휠라로고가 그려진 종이백이었는데, 그 위에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영어명의 테이프가 휠라 로고 위에 부착되어있었다.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숍에서 사용하는 쇼핑백이라고 그녀가 말해주었다. 에코백이 아닌 쇼핑백을 재활용하는 것. 그녀가 몸담은 그곳은 제주 지역의 오래된 물건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찾고 그의 작품을 알리는 편집숍이으로, 고객이 구입한 물건을 포장하지 않고 쇼핑백을 재활용하는 곳이었다.


 '오래된 물건에 대한 역사성을 주목'하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으로, 현시대의 미술 작품을 새롭게 큐레이팅 하여 좋은 기억으로 남은 아라리오 갤러리 옆 건물에 위치한 공간이었다 신선한 발상의 굿즈 상품을 받아보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 공간을 다녀가고 싶어졌다. 금세 하루가 지나 오전 스케줄은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으로 향했다. 2층 편집숍 계단에 다다르자 그곳에서 '오래 지속되는 훌륭한 개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2층 편집숍은 제주와 관련된 디자인 물품도 있었지만, 일본 디앤디파트먼트 제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제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향후 제주지역의 디자이너 제품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소반, 그릇 등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제주지역의 술 등이 선보여서 인상적이었다. 여러 상품들을 둘러보다가 가장 눈길을 끌었던 곳은 이 공간의 역사와 철학이 담긴 책들이 놓인 서가 코너였다. 이 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다른 곳에서 구입이 어려운 책 같아서 2권을 바로 구매했다.


첫 번째 책은 디앤디파트먼트 창립자 나가오카 겐메이가 쓴 2014년에 발행한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 , 두 번째 책은  2018년 12월 7일부터 2019년 3월 4일까지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에서 기획한 <롱 라이프 디자인 1, 47도도부현의 건강한 디자인 展>이었다. 하루 안에 다 훑어볼 수 없었지만, 여러 물품들의 역사를 담은 두 번째 책이 속독하기 좋아서 빠르게 훑어보았다.


"롱 라이프 디자인이란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언젠가부터 애착을 갖게 되는 물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인은 더는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해내는 것,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d47 MUSEUM 창립자, 디앤디파트먼트 디렉터, 디자인 활동가 나가오카 겐메이>  


다른 해보다 올해는 브랜드, 디자인, 세계사에 대한 공부를 더 해보기로 한 해라 마음먹은 만큼 치밀하게 공부를 하기에 일상의 역할들이 많아 접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능한 책을 구입하거나 대출할 때 이 3개 키워드에 맞춰 책을 골랐다. 특히 오늘 들렀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은 이 세 가지 키워드에 딱 맞는 콘텐츠 공간이었고, 내가 고른 책 2권 또한 이에 부합되는 서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치 있는 물건은 명품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명품의 가치를 알고 있는 이들은 그 물건을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관리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언급했던 강판은 언제 샀는지 구입 시기가 가물한 물건이었는데, 20년간 사용하며 그 물건을 구매한 곳은 어딘지, 브랜드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기 전에, 왜 그 물건을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물음을 하고 있다. 더 멋진 강판을 만나지 못해 계속 사용하고 있는 이 물건은 곧 '롱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철학에 와닿으며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으며 시간과 관계없이 생활 속에 스며들어 함께 지내는 제품 디자인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과연 내게도 오랜 역사를 함께하는 물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15년 전에 파리에서 구입한 흰 오븐 그릇처럼, 지금도 아주 유용하게 잘 쓰며 관리하고 있는 생활용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와 반면 최근에 기분전환으로 문구점에 자주 들러 새로운 문구용품을 많이 사는데, 이 심리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앞서 15년 된 그릇에 대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 만큼, 나의 경우 새 물건보다 손때묻은 물건과 옷을 더 편애하는 편이다. 다음 기회에는 왜 문구류를 새로 구입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롱 라이프 디자인'에 대한 다섯가지 철학과 비교하여 답을 내려봐야겠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건강하게 확산하는 다섯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1. 전하다.  

그 지역에서 오래 지속하는 '일'과 '물건'을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과 함께 전하고 있습니다.

2. 먹다.

그 지역의 '식'을 통해 지역에서 오래 지속되어온 풍토를 전하고 있습니다.

3. 배우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다양한 것을 배우다.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하며, 미래를 생각한다.

4. 여행하다.

'그 지역다운 곳'을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한 권으로 정리해낸다. 다움을 돌아보기 위한 여행 잡지.

5. 일본을 느끼다.

일본의 47도도부현을 한눈에 바라보는 일본의 첫 토산물 MUSEUM을 비롯한 3개 공간입니다.


<롱 라이프 디자인 1, 47도도부현의 건강한 디자인 展>  서적 중 발췌



 2층 편집숍에 다다르자 나를 반긴 쇼핑백(왼쪽부터), 고객들이 가져온 쇼핑백을 재사용하고 있었다.
휠라 로고 브랜드를 가린 디앤디파트먼트 테이핑한 재사용백은 명쌤이 어제 건넨 쇼핑백, 그 안에 든 컵라면은 오늘 아침으로!
디앤디파트먼트는 큰 대로의 길가에 입구를 내지 않고 골목 사이에 입구를 만들었다. 처음 이 장소가 들른 고객들이 이 구역에 친근감을 가져다주는 배치였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핫하다는 포토존에서
'롱라이프디자인' 에 대한 철학을 책으로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2층 편집숍 일부 모습, 돌하르방이 신선한 굿즈 상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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