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브런치북을 내며
코로나 19로 서울 출장은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었고, 일터와 거주지를 떠나 타지에서의 보내는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개인 시간을 내어 서울을 방문하는 일은 손가락 안에 꼽았다. 지난 10월에는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북토크에 참여했다. 책 이름은 [나의 사적인인 예술]. 패션지 보그와 바자의 피처디렉터에 몸담은 윤혜정 저자가 만난 19명의 예술가의 인터뷰집으로 내 마음을 울렸던 두 명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미술가 김수자와 일러스트작가 장필립 델롬.
내가 추구하는 건 명성이 아니라
진실되고 정직한 가치입니다.
_김수자 미술가
나는 내 삶에 영향을 준 예술가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진화하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있거든요.
_장필립 델롬 일러스트 작가
자수와 보자기로 잘 알려진 김수자 미술가의 말은 글쓰기에 대한 내 마음가짐을 대변해주었다. 한 편을 쓰더라도 조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정직하고 진실되게 글’을 쓰겠다는 마음.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냐고 묻는 저자의 답변에.. ‘시간을 초월하는 통시적 질문자(questioner)로 남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녀. 어느 직업이든 인터뷰어의 자세로.. 살고 싶다는 마음 들었다.
20년간 인터뷰 글을 오래도록 좋아했었고 인터뷰어의 삶을 선망했었다. 한때 공연예술가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직업의 매력에 더욱더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인터뷰이들이 기억에 남을 좋은 질문이라고 피드백을 주면 가장 행복하기도 했다. 인터뷰 장르에 대한 사랑과 애증으로, 첫 책은 인터뷰 책으로 싶었다는 윤혜정 저자처럼 그녀가 느꼈던 인터뷰의 참맛을 나 또한 알아버렸기에.. 놓아버렸던 그 직함을 내 일상에서라도 되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의 글감은 '아이’였다. 내 일상에 공존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가 명확해지고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타인'. 그 타인의 역사를 앞으로도 꾸준히 글로 담아보려고 한다. 그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시간, 공간 등등. 그를 위한 자서전을 내가 써줄까 싶다.”
_[내가 만든 철저한 타인] 에필로그 중
2019년 2월에 썼던 첫 연재글(아침형 인간이 되었다)과 세 번째 글(어느 별에서 왔니)이 다음메인에 차례로 게재되면서 조회수 4만 뷰를 넘었다. 첫 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가. 시작하면서 꾸준히 써보기로 마음먹었지만, 행동은 쉽지 않았다. 이후 그 이후 1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시간도 없었다. 복직 후 내 시간을 찾으면 다시 연재 글을 쓰겠다는 결심도 옅어졌다. 그렇게 내 일상에 집중하며 일과 육아에 온전히 몰입할 때 번아웃이 왔다.
일상에서 어떻게든 내 개인 시간을 확보해야 육아도 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4시간 중 내 시간을 찾는다는 것은 자투리 시간이라도 모아서 글쓰겠다는 의지였다. 육아하며 작가 생활을 병행한 미국 소설가 셜리 잭슨의 말처럼 '나한테 글쓰기란 휴식'이었다. 집에 들어오면 집안일과 육아로 종일 의자에 편히 앉지 못하는. 엉덩이와 의자가 하나가 되어 집중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몸과 마음의 쉼을 주었다. 계속해서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 여러 방법을 찾아보았고, 지난 8월부터 글쓰기에 대한 조급함이 커져서 글의 완성도를 떠나 우선 써보기로 했다.
8월의 마지막 날에 썼던 '뒤늦게 본 엄마의 손편지 '가 6만뷰를 도달하면서...내 브런치 연재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좀 더 용기 내어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같은 시기에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를 통해 내게 맞는 모닝리추얼을 만났다. 9월과 10월에는 월 4회씩 연재글을 꾸준히 쓰게 되었고.. 총 8편의 글을 모았다.
8편 중 2편이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고, 이 좋은 기운을 받아 브런치북으로 묶어서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 '공모전에 도전해봤다. [육아일기가 아닌 나의 성장일기] 매거진에서 [내가 만든 철저한 타인] 브런치북으로. 아이를 철저히 타인으로 바라보게 된 엄마가 관찰한 아이의 이야기. 2019년 2월 8일부터 2020년 11월 1일까지의 아이와 일상에서 누렸던 에피소드를 담았고, 프로롤그와 에필로그, 번외 글을 더해 총 17편으로 편집했다.
글은 사진보다 그때의 잔상을 떠오르게 한다. 단편적인 시각에 의존한 기억을 주는 사진보다 글은 오롯이 그때의 감정과 생각에 빠지게 한다. 몸으로 느꼈던 공기, 촉감, 공간의 향기까지. 오감을 느끼게 만드는 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첫 브런치북을 내면서 또 다른 주제의 글쓰기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목차를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여러 책들과 수상된 브런치북들을 모니터링하며 차차 터득하게되었다.
아마추어이기에 미숙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뭐든 알고자하면 기회가 주어진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고 혹은 내가 기회를 만들더라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지금처럼 과정을 즐기며 오래도록 글을 써보고 싶다. 다음메인에 5번씩이나 소개된 비결?! 정기적으로 글쓰기. 주1회가 되든, 월 1회가 되든.. 나만의 약속을 만들기. 글쓰는 부담감과 두려움을 버리기. 자투리시간을 활용하여 글감을 메모하고 작가의 서랍에 글감들을 미리 저장하기. 흰 백지에 글을 쓰는 것보다 훨 수월하다. 글쓰는 재미를 알려준 브런치 고마워!
덧.
지난 8월,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하는 엄마의 자격으로 인터뷰이로 나섰다. 이달 중에 브런치를 통해 인터뷰 글이 소개된다고 한다. 인터뷰이 삶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만난 이들의 이야기로 꾸밀 새로운 매거진을 기획 중이다. 언젠가 브런치북으로 엮을 수 있겠지. 서두르지 않고!!
내 일상에 공존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가 명확해지고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타인'. 아이는 기존에 내 인생에 없었던 새로운 타인이었다. 그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은 내가 몰랐던 그만의 역사가 있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만든 타인이므로 철저히 그의 과거는 내 몸 안에 있었다.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의 유년시절의 포트폴리오는 내가 그려내고 내가 만들어가는 대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성별과 생김새 등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격과 가치관 등 아이의 인생은 내가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그 자체로 인정해주기. 정체성이 생기면 기꺼이 그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의 그림을 그려 나겠지만. 그가 스무 살, 성인이 되고 내가 '20년 차 엄마'가 되면 내가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_[내가 만든 철저한 타인] 브런치북 소개글
올해는 브런치통해 많은 기회를 얻습니다. 결혼 후 세종으로 이주해 자기 일을 찾은 30대 여성 8명의 인터뷰집에 제 이야기가 소개됐습니다. <나의 사적인 세종이주기> 브런치북으로도 발간된다고 합니다. 즐겁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