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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일 Aug 06. 2021

이 농담같은 섹스

나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너는 왜 사랑한다고 안해? 너 나 사랑 안 해?”

그는 마치 뜯긴 돈을 받아내야 하는 사람처럼 나를 다그쳤다.

“어.. 사..랑하지...”

억지로 뱉었다.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그 카페, 그 의자에 박제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 답을 받아낸 걸로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모텔로 갈까?”

밀려버린 지독한 부채를 청산한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치우고 나는 그를 따라 일어났다. 순간이었지만 마치 내가 인질처럼 느껴졌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은 죄로 그와 잠을 자야하는 인질. 납치범은 나의 옷을 벗기고 나를 침대위에 눕혔다. 나는 속으로 계속 숫자를 셌다. 그가 내 위에 쓰러질 때까지, “좋았어?”란 질문을 할 때까지. 그 질문이 나오면 나는 기다렸던 것처럼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나는 진짜 잠을 잘 수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때 그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사랑해.”

서로를 알게 된 지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 그는 사정하며 저 말을 내뱉었다. 바로 직전 콘돔 착용 때문에 우리는 몇 분을 실랑이했다. 분위기고 뭐고 이미 다 깨져버렸고, 당장 옷을 챙겨 입고 그 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마치 발이 묶여있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절차(?)를 진행시키고, 마침내 끝이 왔을 때, 그는 “사랑한다고” 내게 고백한 것이다. “뭐라고?” 그가 내 위로 엎어졌을 때 다시 물었다. “사랑한다고. 나랑 결혼하자.” 장난이었길 바랐지만 진심이었다. 그는 단지 “느낌”이 나지 않아서 콘돔이 싫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랑했지만 콘돔은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콘돔보다 못한 사랑이라니. 다음날 아침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나는 울었다. 너무 가벼워서 무거운 사랑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사랑”이라 불리는 연애를 하며, 나는 자주 내가 정해진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이런 말을 해야 하고,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게임. 나는 충실하게 정해진 대사와 행동, 그리고 표정을 연기해야 했다. 상대가 “사랑한다”말하면 “나도”라고 대답하고, “보고싶다”라고 말하면 “나도”라고 대답해야 했다. 내가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보고싶은지 생각하기도 전에 대답이 나와야 했다. 마음보다 말이 더 빨라야 했고, 그 타이밍을 놓치면 나는 다시 심판대 위에 세워졌다. “너는 나를 왜 만나니?”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서, 상대가 좋아져서 만났는데, 호기심과 사랑은 생각보다 아주 먼 거리에 존재했다. 상대를 알아가는 시간과,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시간은 늘 달랐고, 그래서 내가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상대의 사랑은 늘 끝나있거나, 아니면 끝나는 중이었다.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늘 나만이 느끼고 나만이 절망하는 억울함이었다.


단 한번, 내가 먼저 사랑을 느낀 상대가 있었다. 우리는 같이 니체를 이야기했고, 그는 나에게 처음으로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의 몸, 아니면 나의 섹스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 숲에서 그는 단연 돋보였다. 글은 나였고, 곧 내가 글이었으니까, 글을 보여달라는 말은 나 자신을 보여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에게 글을 보여줬고, 그는 아주 긴 답장을 해왔다. 순식간에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사랑이 시작된 이후였다. 그러나 그는 나와 달랐다. 섹스 이후 그는 눈에 띄게 생기를 잃어갔다. 우리가 나눈 그 많은 이야기-운명, 사랑, 인간, 절망, 허무 등등-가 단 한 번의 섹스를 위한 값이었다니, 나는 이 가벼운 거래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한번 입고 아무데나 처박힌 철지난 코트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같은 사랑을 한다고 믿지만 결국 상대에게 영원히 가닿을 수 없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나와 타자 사이, 영원히 가닿을 수 없는 거리를,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제와 생각해보면 과연 사랑이 맞았을까 싶다. 그저 그를 갖지 못해서 더 갈증이 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유와 사랑은 무엇이 다를까. 사람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존재고, 소유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것 아닐까. 온전히 내 것이 아닌 존재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나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빚쟁이처럼 받아냈던 사람도, “사랑한다”는 말을 사정하듯 내뱉었던 사람도, 결국 내 것이었기에, 혹은 완전히 내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적어도 사랑은, 상대의 공간을 얼마나 비워두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내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비워둬야 하는 자리. 그 자리에 무엇이 올지 모른 채로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 우리는 언제나 상대의 “정보”를 알 수 있을 뿐이지, 상대의 “느낌”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같은 세계를 공유한다고 믿어도 그 세계는 늘 각각의 세계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늘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랑이라고 믿지만 형태만 같을 뿐 다른 내용의 사랑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사랑에 대한 빈곤한 사유가 어떤 절망을 불러오는지. 나의 사랑은 많은 경우 거래였고, 이미 정해진 연극이었고, 섹스에 대한 값이었고, 단 한순간의 오르가즘이었다. 나의 사랑에는 단 한 번도 사랑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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