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매년 8월이 다가오면 나는 친구와 함께 올레길을 걷는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하는 여행이다. 사실, 지금의 사회생활에서 부족함은 없다. 좋은 호텔에서 머물며, 골프를 치고,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매년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올레길 걷는다. 대학생 때처럼,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고단하게.
이 여행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해가 갈수록 체력도 부담도 커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 길을 걷는다. 걷는 동안 많은 것을 느낀다. 길 위에서는 일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대신 묵묵히 발을 내딛는 소리만 남는다. 친구와의 대화도 단순하다. “오늘은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배고프다.”, “잠자리가 좀 불편하네.” 그러다 문득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걸으며 우리는 삶에 대해 묻는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이 질문은 친구와 나 사이에 오가는 가장 익숙한 질문이다. 일상 속에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쌓인 일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약속과 계획 속에서 우리는 가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땡볕 아래를 걸으며, 지쳐 발걸음을 내딛을 때 이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우리는 종종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답을 찾지 못한 상태로도 길을 계속 걷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대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 던지며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땀에 젖은 티셔츠와 저녁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소박한 식사가 우리를 다시 학생 시절로 되돌려놓는다.
이 여행은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길을 걸을 것이다. 삶은 계속되고, 질문은 반복된다. 때로는 힘들고 지치지만, 그 질문이 있기에 길 위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지만 걸으며 곱씹다 보면, 이 대답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가 나에게 심어준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책에서 읽었고, 행복이라는 말은 광고에서 보았으며, 충만함이라는 표현은 강연에서 들었다.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고, 발바닥이 아프도록 걷다가 잠시 쉬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이 길 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어떤 사치스러운 휴양지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감각이라는 것을. 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와 나눈 소소한 대화,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 하나에 피곤한 몸을 기대는 시간. 그 순간들은 5성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호화로운 식사보다 더 깊이 나를 채운다.
성공, 행복, 충만함이라는 목표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진짜 충만함이 어떤 감정인지, 우리는 길을 걷는 동안 어렴풋이 깨닫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작은 것에서 느끼는 만족. 길 위의 시간들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놓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공은 멀리 있지 않고, 행복은 완벽한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땀을 흘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하는 것, 힘들게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누는 작은 대화,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삶이 주는 선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느냐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밤이 호텔 스위트룸보다 더 값지고, 길 위에서 느낀 작은 만족이 수많은 명품보다 더 빛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천천히 배우고 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은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마음 가면에서 우리가 사회적 기대에 따라 삶을 살 때, 자신의 진정한 욕망은 외면받고, 결국 혼란과 방황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내가 그랬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순간들, 나는 사회가 정의한 성공을 쫓으면서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달리고 있었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살고 있는 동안,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에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누구의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묻지 않고, 단지 기대에 맞추어 달리는 삶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시간들은 계속 쌓여갔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 그 계획을 달성하는 데 집중했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고도 늘 마음 한편에는 알 수 없는 허탈함이 남았다. 사람들은 축하해줬지만, 정작 나는 축하받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내가 이루어낸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겠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한 것에 불과했다.
어느 날, 올레길을 걷던 중 친구가 물었다. “넌 정말 이게 하고 싶었던 거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 질문은 계속해서 내 안에 머물렀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렸을 뿐,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빅터 프랭클은 “공허함은 단지 목적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목적을 추구할 때 더욱 깊어진다”고 했다. 그 말이 나를 꿰뚫는 듯했다. 나는 외적으로 성공해 보였을지 몰라도, 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찾아오는 허전함은 어쩌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취를 쌓을수록 더 깊이 파고들던 공허감은, 나의 목표가 나의 진짜 욕망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스테거(Steger, 2012)의 연구처럼, 삶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내면의 혼란과 고립감을 경험한다. 나 역시 그랬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자 노력했지만, 마음속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져갔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나는 조금씩 그 공허함의 정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매년 친구와 함께 떠나는 올레길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지친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가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길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이곳에서는 누구의 기준도, 명확한 목표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친구와 컵라면을 나눠 먹는 순간이, 5성급 호텔에서 즐기는 만찬보다 더 행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진짜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이 질문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나는 화려한 성공과 완벽해 보이는 삶보다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비록 느리더라도, 그 과정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공허함 속에서 방황하던 시절, 하루하루는 그저 흘러가기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또 다음 날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하루들은 단지 지나갔을 뿐, 내 삶에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지 않았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습관에서 비롯되며, 그것이 삶의 의미와 연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방향성을 잃는다고 설명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하루는 반복되었고, 나는 단지 시간을 소비하며 "해야만 하는 것"에 매달렸다.
브레네 브라운은 불완전함의 선물에서 “우리는 바쁨으로써 공허함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바쁜 일정 뒤에 감춰져 있었다. 바쁨은 내가 진짜 중요한 질문들을 피할 수 있는 변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는 삶에서 벗어나려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이 질문은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이 질문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내 안의 공허함을 인정했고, 하루를 흘려보내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내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변화시켰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부터 출발할 수 있었다.
삶의 방향을 잃은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날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내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탐구하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질문 속에 답은 없었지만, 질문은 나를 변화로 이끄는 강력한 신호였다.
내 안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수많은 일을 처리하고, 목표를 이루어냈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나는 만족하지 못할까?" 내가 간절히 원했던 성공과 성취를 손에 넣었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텅 빈 마음과 방향을 잃은 듯한 감각뿐이었다.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 감정을 "실존적 공허감"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허감은 목표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목표를 쫓고 있을 때 더 깊어진다." 그의 말처럼, 나는 분명 목표를 쫓고 있었지만, 그것이 진정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이었다. 내가 추구했던 많은 것들이 나의 진짜 욕망이 아닌, 사회가 정해준 "성공"의 기준이었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마이클 스테거(Michael Steger)의 연구에 따르면, 삶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심리적 단절과 고립감을 경험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외적으로는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를 이루고 있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동기만으로는 내 안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바쁘고, 체계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불완전함의 선물에서 "우리는 바쁨으로써 취약함과 공허함을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랬다. 일정이 빽빽한 스케줄은 내가 내면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변명이었다. 바쁨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할 시간을 앗아갔다.
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공허함을 무시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목표를 이루고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채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는 이 반복적인 패턴은,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질문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왜 하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이 질문을 피해 왔다. 답을 찾지 못할까 봐, 혹은 답이 두렵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 이 질문에 답하려고 애썼다. 공허함이 내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내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내적 동기, 즉 개인적 가치와 연결된 동기가 웰빙의 핵심 요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외부의 인정과 사회적 기준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한 외적 동기는 나를 잠시 움직이게 할 수는 있었지만, 내 안의 진짜 동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불편했다.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고, 어떤 질문에는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질문들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내가 스스로의 삶을 다시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 공허함은 내가 견딜 수 없는 무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없애고 싶었고, 메우고 싶었으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점차 공허함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공허함이 나를 더 나은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면?"
빅터 프랭클은 공허함이 단순히 괴로움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그는 "불편함은 의미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공허함은 더 이상 내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하지만 점차 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나를 방해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내 가치를 반영하는 삶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삶이 아니라, 내면에서 진정으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삶이었다.
내 안의 공허함을 마주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인 과정이다. 공허함은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그 공허함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내 가치와 맞지 않는 일에 "아니요"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내 장기적인 목표들을 다시 점검하며, 그것들이 진정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허함이 단순히 결핍이 아니라 성장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허함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채울지 선택할 수 있는 여백이었다. 마이클 스테거의 연구는 삶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 웰빙의 중요한 예측 요소라고 강조한다. 나는 아직 모든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방향을 알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 대신,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공허함은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멈추고, 성찰하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신호다. 공허함은 실패의 징조가 아니라, 성장의 시작이다.
많은 날들, 나는 단지 하루를 견뎌내기 위해 살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끝내는 것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하루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모"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살고 있지 않았다. 단지 생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나를 하루의 순간들로부터 분리시켰다.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그의 책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현재를 사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미래를 향해 서둘렀다. 다음 목표, 다음 성취, 다음 할 일들에 집중하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나를 만족시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작은 변화를 시작했다.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오늘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었는가?" "오늘의 시간을 내가 소중하게 사용했는가?" 이런 질문들은 내가 하루를 그저 흘려보내는 대신 더 의식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나는 감사의 마음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에몬스(Emmons)와 맥컬로(Emmons & McCullough)의 연구에 따르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웰빙을 크게 향상시킨다. 하루가 끝날 때, 크고 작은 순간들을 돌아보며 내가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렸다. 한 잔의 따뜻한 커피, 친구와의 짧은 대화,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프로젝트 등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하루가 특별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성취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작은 행동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눈 대화, 스스로를 위한 조용한 시간, 그리고 정성을 다해 마무리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하루를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돌아보고,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내 하루가 단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이 되도록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곧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사는지를 결정한다. 하루를 "견뎌내야 할 시간"으로 여기는 대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기회"로 바꿔보자.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