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살이다!
올해 6월부터 9월까지의 독립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나는 엄마 밥을 오래오래 먹고 싶어서 집에서 나와 혼자 자취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을 훅 맞이하지 않을까? 싶어서 가능한 모두 건강하고 하루라도 젊을 때에 가족들과 쭉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러던 내가 6월 즈음에 독립을 하기로 마음을 굳게먹게 됐었다. 그때 난 엄청 갑갑한 무엇인지도 모를 무언가를 파헤치고 있는 시기였다.
상담이 꽤 진행되면서 많은 걸 깨닫고 충격을 받으며 인정하기 어려운 것들을 바라봐야 했다. 진짜 나와 내 상처들을 마주해야 하는 깊은 시간 속에 잠겨 감정의 소용돌이가 막 치닫는 중심에 서있던 때였다.
초반 상담에서 스트레스에 관한 구체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검사를 했었는데 놀랍게도 가족과 관련된 수치가 매우 높고 억눌리는 게 많다는 전혀 모를 말들을 들었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표현 잘하고솔직하고 즉각적인데? 내가 억눌리는 게 있다고?‘ 결과지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이후 선생님께 들은 더 놀라운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엄마를 지켜야겠다‘라고 스스로 선택했었다는 거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이게 나를 억눌렀다는 것도 생각지 못 한 주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식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엄마가 너무 대단하고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했었다.꼭 보답해야지 하고 감사함에 대한 마음의 보답을 ‘엄마를 내가 지켜야겠다’ 라고 스스로 결정 내렸던 것 같다.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할 때나 어디 해외여행을 가려하면 마음 한편에 ’엄마도 데려가야 하는데‘가 있었다.
이제 내가 컸으니 좋은 것도 많이 보여주고 싶고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그렇지 못한 현실일 때면 나만 좋은 것들을 먹고 보고 듣는 게 미안하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가졌었다.
나는 5살 위의 언니, 7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는 삼 남매 중 둘째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가장 먼저 나를 찾았고 의도치 않게 내가 상황을 정리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었다. 나의 포지션은 조정자였다.
의견을 추려 가장 타당한 것으로 마무리를 지어왔기때문에 내가 지치는 것은 못 보고 우리 집의 이 룰은 평등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가족들은 각자의 주장들을 피력했고 그 가운데에 나를 두었다. 내 에너지의 방향이 나에게로 향했다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많이 달랐겠다고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졌다. 탈출하기 위한 휴식처이자 나의 날것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확신이 섰을 때 가족들에게 그간의 서사를 말했고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다행히 내 뜻을 존중해 주셔서 곧바로 엄마와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을 고르는 기준은 하늘이 잘 보이고 정들 수 있는 걷기 좋은 동네였으면 했고 내가 좋아할 소소한 모먼트들이 많은 동네. 가본 적 없는 낯선 곳보다는 알고 있는 친숙한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까다롭고 맞추기 어려운 기준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이 탁 트여있는 고즈넉한 북촌에 있는 집을 계약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6월의이야기이다.
그 뒤 잔금일이 9월이라 계약만 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장작 세 달 동안의 애달픈 기다림과 잔금일 한 달 전부터 신청이 가능한 전세자금 대출을 무직인 상태로 받기까지 희비가 교차했다.
결과적으로 오늘! 대출 승인이 떨어지고 그토록 갈망하던 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하필이면 일을 쉬고 있을 때에 실행에 옮겨야 해서 너무 조마조마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한 결단을 내렸고 동시에 죄책감도 조금은 내려놓았다. 이 모든 과정이 네 달 만에 이뤄진 일이다.
사실 북촌 집 계약 전에 서촌에 있는 집을 계약했었는데 부동산과 집주인이 같이 사기를 쳐서 계약을 엎은 일도 있었다. (엄마가 꾼 똥꿈 덕분에 엎을 수 있었다ㅋㅋ)
관점이 바뀌면서 중요한 것들이 달라지고 사고가 바뀌는 시기이다.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이 나를 환기시켜 주고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첫 홀로서기가 마냥 좋다고 할 순 없고 두려움도 따르지만 나를 위한 선택의 한 걸음을 뗀 것에 큰 의미를 둔다. (다만 보리를 매일 못 봐서 많이 슬프고 걱정이 된다.)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올해가 1살이라고ㅋㅋ새로 태어났다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얘기하고 있다ㅋㅋㅋ
나는 1살이다 ㅎㅎㅎ하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