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바쁘게 지낸 사이, 문득 바라본 나무들이 어느새 짙게 물들어 있었다. 단풍은 그저 색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자취였다. 붉고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서로 다른 빛을 내며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이미 성급하게 바닥에 내려앉아 이리저리 흩날리는 잎들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나뭇잎들이 이제는 바람을 타고 떠다니며, 이 계절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중이었다.
단풍이 든다는 것은 엽록소가 서서히 빠져나가며 나무가 잠시 성장을 멈춘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무는 긴 겨울을 위해 내면 깊이 영양분을 쌓아두고,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결과, 나뭇잎들은 화려한 색으로 변해가며 그저 찰나의 아름다움을 남기고는 바닥에 내려앉는다.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이 단단한 내면의 힘을 알기에, 단풍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살아오며 나 또한, 고집스레 붙잡고 있는 생각들과 습관들이 있다. 그리고 그게 때론 버겁기도 하고,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생의 절반을 넘긴 지금, 나 또한 단풍처럼 내려놓을 것들은 내려놓고, 지켜야 할 것들은 내 안에 더 깊이 쌓아두어야 할 때가 아닐까? 나무들이 성장을 멈춘 게 아니라 내면에 단단히 힘을 채우는 것처럼, 나 역시 오래된 아집과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결코 끝이 아니다.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을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운 휴식이다. 지금 나무들이 내면 깊이 에너지를 모으는 것처럼, 나도 새로움을 위해 비우고, 더 소중한 에너지를 채워갈 때다. 언젠가 또다시 피어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정갈히 다듬어가는 계절이다.
이 계절, 단풍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이야기를 따라 우리도 조금씩 내려놓으며 새로움을 준비할 수 있다면, 삶은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질 것이다.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움을 위한 시작이다. 비우고 채우는 법을 알 때, 우리는 더 깊고 단단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