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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이 Oct 18. 2022

따뜻한 토마토가 좋아

[2/100] 도전 : 1일 1글쓰기

요즘 토마토에 푹 빠져 있다. 몰랐는데 나는 토마토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잘 먹지 않던 큰 토마토 5kg짜리를 한 상자 사서 먹고는 또 금방 2kg짜리를 구매했다. 1인 가구라 식재료를 사면 대부분 상해서 버리게 되거나, 끝부분에는 숙제처럼 억지로 먹게 돼서 한동안 살 일이 없는 것에 비하면 아주 좋아하는 편인 거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프로젝트 좋아해'가 이틀 만에 나의 새로운 취향을 깨닫게 한다.


며칠 전에는 9월 한복판에 3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더니 태풍이 지나간 뒤로 아침저녁으로 제법 기온이 서늘하다. 아무리 겨울에도 찬물만 마시는 나지만 이런 때는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음식이 생각난다. 냉장고에 잘 씻어서 엎어둔 토마토 몇 개를 꺼냈다. 토마토는 구매 직후 깨끗이 씻어 꼭지를 딴 다음 궁둥이를 하늘로 보게 펼쳐 놓으면 오래간다기에 조금 번거롭지만 매번 꼭지를 딴 채로 쟁반에 펼쳐 냉장 보관을 하고 있다. 끼니 때가 아닌데 왠지 헛헛할 때 그냥 냉장고 문을 열고 꺼내 먹으면 돼서 간편하다. 과일처럼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찬 토마토도 좋지만 역시 입안 가득 굴려가며 식혀 먹는 따뜻한 토마토가 좋다.

 

오늘의 메뉴는 토마토 달걀 볶음. 요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간편한 조리에도 매번 토마토에서 나온 물 때문에 질퍽해져 번번이 실패했다. 때마침 양송이버섯이 있어 양파와 함께 채 썰어 버터에 볶아내고, 토마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천천히 약불에 익혔다. 토마토에 껍질이 벗겨지고 살짝 모양이 흐트러질 때까지 최대한 안 건드리는 게 관건! 굴 소스 반 스푼을 둘러 살짝만 섞어주고 한쪽으로 미뤄둔다. 아직 스탠 팬 사용에 익숙지 않아서 스크램블을 하면 절반은 프라이팬과 나눠 먹고 있지만 용기 내 비워둔 한쪽에 달걀을 깨어 휘휘 저어준다. 달걀이 어느 정도 익으면 소금 챡챡! 뿌려 토마토와 또 슬-쩍! 섞어주면 끝! 이번에는 토마토의 기분을 살피며 조리했더니 물기도 없이 간도 잘 맞춰졌다!


뭉근하게 익힌 토마토는 제법 뜨겁다. 잘못 먹으면 치아가 모두 빠진다는 뜨거운 조림 무만큼은 아니지만 잇몸 안쪽까지 순식간에 열감이 퍼질 만큼 뜨거워 조심해야 한다. 이미 전부 익어 뭉근하게 퍼지는 토마토는 뜨겁고 살짝 시큼하고 달달한 맛이 공존한다. 토마토의 심지는 살짝 아삭함이 살아 있어 사각사각 씹히는 맛도 좋다. 잘 구운 빵 위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스튜처럼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맛있다. 토마토 껍질이 걸리적거리는 사람들은 한 번 데쳐 껍질을 벗겨낸 다음 요리하는 게 좋지만 나는 개의치 않아 그대로 하는 편이다. 버터에 구운 양송이와 고소한 스크램블의 찬조 출연도 꽤 풍미가 좋다. 빨간 토마토만큼이나 따뜻한 느낌이 속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리틀 포레스트>. 사실 무심하고 관찰자적인 일본판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굴뚝으로 나오는 흰 연기만큼이나 따뜻한 감성의 한국판도 여러 번 볼 만큼 좋아한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주인공 혜원의 엄마가 토마토를 베어 먹고 노지에 꼭지를 던지면, 이게 새싹으로, 줄기로, 다시 토마토로 자라는 장면이다. 이때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던져놓아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으려면 노지에서 햇볕을 듬뿍 받고 완숙이 된 상태에서 딴 토마토여야 한다.“


내가 먹은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병충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자란 토마토일 테지만, 요알못 손에서 아무렇게나 요리되어 삼킨 토마토가 다시 내 안에서 싹을 틔울 수 있길 바란다. 특히 최근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길을 잃은 쓸쓸한 나에게. 춥고 쓸쓸한 가을겨울을 버틴 나의 따뜻한 토마토가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새빨간 열매를 맺어주길. 토마토 달걀 볶음에 마음을 기대본다.


출처: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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