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주 째, 내게 생긴 변화
11월 아침, 목요일.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간 계속 누워만 있을 것 같았다. 이날 아침엔 큰맘 먹고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의 새로 생긴 조용한 카페에 왔다. 이틀 뒤에 마감할 기사가 하나 있었다. 프리랜서의 좋은 점은 내킬 때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누워서만 인생을 흘려보낼 순 없다.
"쌍화차 주세요." 따끈한 게 당겼는데 아차 싶었다. 핸드폰을 열어 '임신 쌍화차'를 검색했다. 마시면 안 된다는 게시물이 네댓 개가 나왔다. 정체 모를 한약재가 들어갔다나 뭐라나. 카페 음료에 다양한 한약재가 들어갈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얼마 전부턴 뭐든 안전한 게 가장 중요해졌다. 나는 쌍화차를 오미자차로 바꿨다.
몸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직 7주밖에 안 되어서 배는 나오지 않았다. 툭하면 잠이 오고, 소화불량이 계속된다. 출출한데 더부룩해서 잘 챙겨 먹는 게 쉽지가 않다. 아직까진 드라마나 영화처럼 '웁웁'하는 입덧은 없다. 방심할 순 없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다고 했었다. 5남매를 낳은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입덧이 심하지 않은 나를 보며 엄마와 할머니는 신기해 한다.
"그땐 배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엄마는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6개월이 지나서야 빵이 마구 당겼다고 했다. 36년 전, 23살이었던 엄마는 구로전화국 근처 다세대주택에서 신혼살이를 시작했다. 20대 초반의 엄마 얼굴을 나는 모르지만...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 마산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서울에 와서 아빠를 만나 23살에 첫아이를 가진 엄마. 배에 아기를 품고 혼자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기차 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입에 대면 토하면서, 퇴근할 아빠를 기다렸을 장면을 처음으로 상상해봤다.
요즘 나는 내가 몰랐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궁금하고, 아직은 얼굴도 모르는 뱃속 아기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