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are special(3) - 경쟁의 관점에서 다름의 관점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읽는 분들은 아래 글을 꼭 보고 오시길 바란다.
'I's are special - 들어가기 전에(https://brunch.co.kr/@iarespecial/4)
우리나라는 참 순위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혹은 다녔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고 직업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한다. 가장 기초적인 건 역시 나이일 것이다. 나이가 적고 많음으로 우위를 가지려고 하는 게 큰 듯하다. 그걸 반증하는 가장 좋은 예시는 역시 다툼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사실 다툼이 생겼을 때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이 크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일 텐데 거기서 나이는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
게다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순위를 매겨서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1등인 사람은 명예와 자부심을 얻고 꼴등은 좌절과 자책을 얻는다. 또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보다 순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강해진다. 회사 부서에서도 직책이 높은 사람은 갑이 되고 낮은 사람은 을과 병과 정이 된다. 뭔가 이상하다.
경영 도서인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에서는 책 제목처럼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서 무(0)에서 유(1)를, 그것도 유일한 하나가 되라고 말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고 있는 시장에 들어가면 그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고 먼저 시작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시장이면서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시장을 찾아서 개척하면 그 순간 내가 그 시장의 1등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근거이다.
물론 이런 얘기만으로 250페이지를 채우지 않았다.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필자가 그동안 봐왔던 독보적인 시장 주자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분석했고 이 분석에 대한 내용이 전에 이렇게 '하나'(원 One)이 되는 것은 어떤 공식이 있어서 쉽게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순위를 매기는 것과 경영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이어서 적은 이유는 독보적인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사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각자 개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쓴 글인 ''다르다'와 '틀리다''(https://brunch.co.kr/@iarespecial/2)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은 다 다르다. 생긴 것부터 나이, 가지고 있는 능력 등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몇 개 되지 않는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물론 사람의 능력은 순위를 매길 수 있다. 축구 선수를 분석할 때도 속력, 가속력, 키, 반응속도, 패스 정확도 같은 기준을 사용한다. 이런 점수들이 높으면 높을수록 우수한 선수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이런 순위는 운동신경이라는 항목 안에서의 순위일 뿐 그 사람의 전체적인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다.
위 이미지에서 왼쪽 그래프가 A, 오른쪽 그래프가 B라는 사람의 능력치라고 하자.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대단한 사람인가. 당연히 알 수 없다. 특히 내가 일부러 왼쪽 그래프에서 오른쪽 그래프를 만들 때 위치만 바꿔놨기 때문에 능력의 총량까지 같아서 더 판단할 수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능력의 총량이 다 비슷하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드래곤볼의 스카우터마냥 사람을 보자마자 그 사람의 모든 능력치 점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능력자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존중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주제에 너무나도 적절한 성경 말씀으로는 '달란트 비유'(마 25:14-30)가 있다. 해당 구절을 보면 어떤 주인이 다른 나라에 잠시 갔다오면서 세 명의 종들에게 돈을 맡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마지막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주인은 자리를 비운다. 이 중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를 해서 받은 돈만큼의 수익을 남겨서 돌아온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잘못을 해서 돈을 잃어버리면 주인에게 혼이 날까봐 겁이 나서 땅에 돈을 묻어놨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보여준다. 이때 주인은 그렇게 잃어버릴 것이 두려우면 돈을 빌려줘서 이자수익이라도 냈어야 하지 않고 화를 내면서 돈을 뺏고 그 종을 쫓아낸다.
이 비유에서도 주인은 각자 종마다 다른 금액을 맡긴다. 우리도 마찬가지. 누군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 분야에서도 긍긍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총량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 받는 것은 얼마나 받았는가에 달려있지 않고 얼마나 남겼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받은 금액과 자신이 받은 금액을 비교하고 실망해서 그렇게 땅에 묻어뒀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한 달란트도 사실 2022년 9월 29일인 오늘 기준으로 2,589,508,000원(약 26억 원)의 가치라고 한다. 남보다 적게 받은 것은 맞지만 절대적으로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는 게 핵심이다.
이 비유와 현실의 차이점은 직접적으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유에서는 기준이 받은 돈의 금액 하나뿐이었지만 사람의 능력을 분석할 때 사용하는 기준은 너무 많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내 능력치와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비교해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얼마만큼의 달란트(재능)를 받았는지를 많은 경험과 시도를 통해 알아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열심히 해내면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세상의 발전방향도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경제적으로도 잘될 수 있도록 바뀌어가고 있다. 유튜브를 예로 들면 지금 유튜브로 경제활동을 하시는 분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계신 분들은 다루는 주제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정말 많은 것이 다르다. 그러나 그분들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거나 잘하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을 가지고 영상을 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3-4년 전만 하더라도 유튜버라는 직업은 인정받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구독자 수에 따라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거나 그 이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는 그저 개성이 경제적 수익도 만들 수 있다는 흐름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경제적 수익을 얻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는 듯하다. 어떤 예시가 있는지는 이후에 쓰게 될 글에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제는 의미없는 비교 따윈 내려놓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시험해보고 도전해보는 건강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