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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Nov 06. 2020

흐린 가을날은 마음껏 우울해하자

2020.11.6.금

우체국 가는 길.
가을이 깊어가는 길이 아름답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어서 겨울이라면 눈이라도 기대해봄직한 날씨다. 일요일부터는 기온이 더
 내려갈 거란다. 난방 기름도 넣어두었고 겨울 옷들도 꺼내놓았으니 겨울이 두렵지는 않다.



그전엔 겨울을 좋아했었다. 찬 바람 속을  쏘다니기를 즐겼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도 한겨울에 갔었다.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위를 우아직 - 우리 나라 봉고 같은 - 을 타고 건넜었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을 좀 데면데면 하게 대한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고 권태기를 보내는 연인 같다고나 할까.
독거노인 -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가 부부만 남은 자신을 가리켜 한 말 - 둘이서 어떻게 겨울을 보낼지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하기야 서른 번도 더 읽은 소설이 무에 재미 있으랴.


한두 차례 여행을 다녀왔어야 하는데 발이 묶여 그냥 넘겼더니 금단현상 조짐이 보인다. 살짝 우울하다. 며칠 째 계속 병원 가고 장 보고 분주하게 보냈는데 계속 무언가를 살 게 생긴다. 사는 것은 사는 것인가보다.

우체국 볼 일을 마치고 마트에 갔다. 장을 담궈본지 오래되었다. 큰댁에서 얻어 먹는데 달라기가 민망해서 한 번 갖고 오면 최대한 오래 먹으려고  마트에서 산 된장과 섞어서 먹는다. 흐린 날씨에 딱 맞을 홍합탕을 하려고 홍합도 샀다.



주차장에서 <아무튼, 3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처음 생각은 한 시간 걷는 것이었는데 우울이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만사가 귀찮아졌다. 집에 가서 눕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빗방울이 동차 앞창을 때린다. 앗싸! 운동은 접고 세탁소 들렀다가 평소에 금지간식인 핫도그와 도넛을 사자!

흐린 가을날엔 마음껏 우울해 하면서 핫도그와 도넛을 먹자!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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