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가는 길. 가을이 깊어가는 길이 아름답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어서 겨울이라면 눈이라도 기대해봄직한 날씨다. 일요일부터는 기온이 더 내려갈 거란다. 난방 기름도 넣어두었고 겨울 옷들도 꺼내놓았으니 겨울이 두렵지는 않다.
그전엔 겨울을 좋아했었다. 찬 바람 속을 쏘다니기를 즐겼다. 시베리아 바이칼호수도 한겨울에 갔었다.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위를 우아직 - 우리 나라 봉고 같은 - 을 타고 건넜었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을 좀 데면데면 하게 대한다.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고권태기를 보내는 연인 같다고나 할까. 독거노인 -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가 부부만 남은 자신을 가리켜 한 말 - 둘이서 어떻게 겨울을 보낼지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하기야 서른 번도 더 읽은 소설이 무에 재미 있으랴.
한두 차례 여행을 다녀왔어야 하는데 발이 묶여 그냥 넘겼더니 금단현상 조짐이 보인다. 살짝 우울하다. 며칠 째 계속 병원 가고 장 보고 분주하게 보냈는데 계속 무언가를 살 게 생긴다. 사는 것은 사는 것인가보다.
우체국 볼 일을 마치고 마트에 갔다. 장을 담궈본지 오래되었다. 큰댁에서 얻어 먹는데 달라기가 민망해서 한 번 갖고 오면 최대한 오래 먹으려고 마트에서 산 된장과 섞어서 먹는다. 흐린 날씨에 딱 맞을 홍합탕을 하려고 홍합도 샀다.
주차장에서 <아무튼, 3시>를 쓰고 있는 중이다. 처음 생각은 한 시간 걷는 것이었는데 우울이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만사가 귀찮아졌다. 집에 가서 눕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빗방울이 자동차 앞창을 때린다. 앗싸! 운동은 접고 세탁소 들렀다가 평소에 금지간식인 핫도그와 도넛을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