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저녁에 술 한잔하고 집에 오던 중이었어. 나는 어느 노래방 입구에서 멈춰 섰어. 거나하게 마셨으니 이참에 한잔 더 하려고? 노래방에 들러 놀다 갔냐고? 아니야. 노래방은커녕. 그냥 간판에 쓰인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을 뿐이야.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았어. 지금도 살고 있어. 약속이 있으면 그 노래방을 지나 신호등을 건너. 그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기도 해. 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어. 그런데 오늘따라 새삼스럽게.그것도 하필이면 노래방 앞에서.
노래방 간판에 쓰인 글자가 훅! 하고 가슴을 치고 들어왔어. 발걸음이 얼어붙었어.
다산
다 산 ...
사고도 더 산
사시고도 더 사셨어야...
아버지는 후했어. 친구분들을 만나실 때에도.가진 것별로 없어도 후하게 쓰셨지. 봉사 활동과 지역 로터리클럽 회장직을 맡아하며틈틈이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면서. 그렇게 나름 멋진 인생을 사셨건만, 당신의 몸에 들어박힌 암세포는 걷어내지 못한 채 그리움만 남겨 두고 떠나셨어. 자식으로서 해드린 것도 없고, 부족한 게 많았는데....
코로나19가 엄습하던,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몇 해 전 여름 어느 날, 그날도 땡볕이 온누리를 달구는데 견디기 만만치 않았어. 집안에만 있기 지루하여 어디든 나서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세상과의 단절, 고립감에 슬픔이 꾸역꾸역 밀려들었어. 한바탕 울고 나면 속이시원할까. 답답한 마음 달래려 아내와 무작정 차를 몰고 나왔어.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보은 속리산. 때는 점심시간, 그곳에서 우리는 차를 식당 옆 근처 도로가에 바쳐놓고 칼국수를 먹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갔지.
오리숲을 지나 법주사까지 갈까 하다 세조길까지 걸었어. 중간중간 시원한 계곡에서 발 담그는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니 속이 풀리는 것 같았어. 내려오는 길에 법주사에 들르고 속리산 조각공원에서 쉬던 참에 눈에 띈 풍경!
나무와 버섯이 한 몸 되어 엉겨 붙어 있대. 사이좋은 연인처럼!
나무와 버섯이 함께하는 그 모습에 희망이 보였어. 코로나19가 아무리 지독한 놈이라 해도 언젠가는 물러가지 않겠어. 사람 간에도 전염이 되니 붙어 다니지 말라고 해도 나무와 버섯은 저렇게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걸 보고 나도 감동 먹었지. 붙어살고 있는 게 보기 좋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