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저녁에 술 한잔하고 집에 오던 중이었어. 나는 어느 노래방 입구에서 멈춰 섰어. 거나하게 마셨으니 이참에 한잔 더 하려고? 노래방에 들러 놀다 갔냐고? 아니야. 노래방은커녕. 그냥 간판에 쓰인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을 뿐이야.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았어. 지금도 살고 있어. 약속이 있으면 그 노래방을 지나 신호등을 건너. 그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기도 해. 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녔어. 그런데 오늘따라 새삼스럽게.그것도 하필이면 노래방 앞에서.
노래방 간판에 쓰인 글자가 훅! 하고 가슴을 치고 들어왔어. 발걸음이 얼어붙었어.
다산
다 산 ...
사고도 더 산
사시고도 더 사셨어야...
아버지는 후했어. 친구분들을 만나실 때에도.가진 것별로 없어도 후하게 쓰셨지. 봉사 활동과 지역 로터리클럽 회장직을 맡아하며틈틈이 복숭아 농사를 지으시면서. 그렇게 나름 멋진 인생을 사셨건만, 당신의 몸에 들어박힌 암세포는 걷어내지 못한 채 그리움만 남겨 두고 떠나셨어. 자식으로서 해드린 것도 없고, 부족한 게 많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