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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l 01. 2022

집에 돌아오다 3

매일 발행 90일차

인생 뒤풀이 1

인생 뒤풀이 2

집에 돌아오다 1

집에 돌아오다 2


양갈래는 성큼성큼 앞장섰다.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정말 살 만한 곳이 아니면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내 선택이 뼈아프게 후회되면 어떡하지?


골목 끝에는 뒷산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산을 깎아 집을 올린 다가구 빌라촌에서 아직 덜 깎인 머리 꼭대기가 뒷산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평지에서 집까지 걸어 올라오려면 30분은 족히 걸리는데, 집에서 뒷산 꼭대기까지는 10분 거리나 될까 말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산에 들어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집에 올 때도 무조건 마을버스를 탔다. 그토록 오르막길을 싫어했던 내가 결국 산에서 떨어져 죽다니.


양갈래의 뒤를 따라 샛길로 올라섰다. 그즈음부터 산 너머에서 떠들썩한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사람들이 모일 데가 아닌데.”     

“깜짝 놀랄 거다.”


내가 알기로, 산 너머에는 잡초 수북한 공사장뿐이었다. 아파트인지 오피스텔인지를 20층까지 지어놓고 부도가 났다던가 해서 공사가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공사장도 내가 뒷산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귀신 나올 것 같은 빈 건물이 범죄의 소굴이나 가출청소년의 온상이 될까봐 동네 사람들도 눈엣가시로 여겼다. 그런데 거기서 웬 소란이? 드디어 철거 추진단이라도 구성돼서 집회를 연 건가?


마침내 공사장이 눈에 들어오자 소름이 쫙 돋았다. 20층 건물 벽을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귀신들이 맨손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2002년 월드컵 때의 시청 앞 거리응원을 방불케 할 만큼 어마무시한 군중이 고함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아니, 저게 무슨... 다들 지금 뭐하는 거야?”

“뭐긴 뭐야, 기어오르기 대회 중이지.”


그때 건물 3/4지점에서 귀신 하나가 픽 하고 추락했다. 사방에서 ‘아아’ 하는 탄식이 터졌다. 떨어진 귀신은 곧바로 탁탁 털고 일어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한 귀신이 1등으로 옥상에 올라 양팔을 치켜들자, 그를 응원한 듯한 구경꾼 귀신들이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올렸다.


“왜 다들 이러고 있는 건데?”

“할 일이 없으니까.”

“할 일이 왜 없어? 그냥 사람들 사는 거 구경만 해도 되잖아.”

“흥, 너는 죽기 전에 남들 사는 거 구경만 하고 살았냐?”

“...거의 그랬던 것 같은데. 특히 스마트폰 구경을 많이 했지.”

“그것도 네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관심 가는 썸네일을 선택할 수 있어서 재밌었던 거야. 이승에선 귀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길거리에 앉아서 사람들 돌아다니는 것만 보고 있으면 재밌겠냐?”

“아니 뭐 하다못해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도 따라다니든지, 영화관 같은 데 죽치고 앉아서 영화나 줄창 봐도 되는 거 아냐? 아니면 진짜 축구나 야구 같은 걸 봐도 되잖아.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도 되고.”

“너 지구에 사람보다 귀신이 많은 거 아냐? 지금 살아 있는 사람보다 그동안 죽은 사람이 수억 배는 많잖아. 그 망자들이 다 이승에 오진 않지만 우리처럼 멍청한 선택을 하는 망자들도 꽤 있단 말야. 그러니 지구가 귀신들로 터져나가는 거야. 네가 말한 연예인 옆? 영화관? 경치 좋은 여행지? 그런 데 네 자리가 있을 것 같아? 온라인 예매 피켓팅은 몸이라도 편하지, 여기선 그냥 몸싸움이야.”

“이럴 수가...”

“심지어 ‘닫힌 문 안에는 머물지 말라’는 법까지 있어. 네 맘대로 귀신이 아무데나 맘대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많은 귀신들이 변태스토커짓을 했겠어? 그러니 당연히 그런 법이 있어야지. 열린 문 안에 있다가 갑자기 바람 불어서 닫히기만 해도 바로 끌려가.”

“어디로?”

“안 가봐서 모르지만 천국은 아니겠지? 그래서 귀신들이 거리를 떠돌고, 문 떨어진 폐가에 모이는 거야. 너도 그렇게 살래?”


나는 내가 꽤나 신중하고 현실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이승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도,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안전한 곳이라서였다. 망각의 강이든 지옥이든 천국이든, 낯선 세계로 위험한 모험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귀신이 된 나에게는 이승에서의 삶이 위험이고 모험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양갈래가 말을 이었다.


“나는 있잖아, 생전에 꿈이 별만 보면서 사는 천문학자였거든? 여기 와서 처음에는 별을 실컷 봐서 좋았지. 별 보이는 산꼭대기는 영화관이나 축구장처럼 귀신들이 떼로 몰리지도 않아. 근데 내가 별을 보면서 생각한 것, 별자리의 모양, 이런 걸 글로 쓸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어. 그냥 보기만 해야 돼. 그러니까 별 보기도 지겨워지더라.”     

“글도 못 쓴다고? 그건 안 되는데.”     

“귀신이 맘대로 볼펜을 휘둘러서 글씨를 쓴다고 생각해봐. 산 사람이 보면 얼마나 놀라겠냐. 이승은 산 자들을 위한 세계야. 귀신이 됐으면 귀신을 위한 세계에서 귀신들끼리 사는 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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