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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Jul 11. 2022

집에 돌아오다 4

매일 발행 9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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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뒤풀이 2

집에 돌아오다 1

집에 돌아오다 2

집에 돌아오다 3


"...귀신이 됐으면 귀신을 위한 세계에서 귀신들끼리 사는 게 나아."


그 말을 듣고 나서도 나는 선뜻 이승을 떠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몇 달쯤은 남아서 여행도 하고, 생전의 지인들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돈을 벌 필요가 없는 백수의 삶을 이승에서 누려보고 싶기도 했다.


"일단 빨리 돌아가보자. 택시가 생각보다 일찍 올 수도 있으니까."


양갈래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초조한지 점점 걸음이 빨라졌다. 나도 따라서 점점 빨리 걸었다. 귀신들의 응원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산을 빠져나왔을 때쯤 나는 양갈래에게 물었다.


"저승은 어떤 델까? 택시를 타게 되면 어디로 가고 싶어?"

"나는 저승에 있는 제일 큰 도서관으로 가려고."

"오, 그런 데가 있어? 살짝 끌리는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이 다 있다더라. 용궁이나 B612도 있고, 회사나 관공서도 있고. 나 알던 귀신 하나는 죽어서라도 대기업에 가보고 싶다면서 저승 대기업에 취직한 애도 있어. 대통령도 되고 의사도 되더라. 참나, 죽어서까지 그렇게 일을 하고 싶나?"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하면 그냥 시켜주는 거야?"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대통령인 가상 국가로 가는 거지. 국민들도 다 가상 인물들이고. 그런데 그 가상 국가 가상 인물들이 다 진짜처럼 느껴지는 거야. 거기가 그 사람만의 사후세계인 거지. 매트릭스 같은."

"생전에 큰 죄 지은 사람들도 원하기만 하면 천국 가고 대통령 되고 그러나?"

"설마 그렇겠냐? 택시는 일단 데려다주기만 하는 거고, 거기서 심사를 봐서 들어갈 만한 망자만 들여보내는 거야."

"심사에서 떨어지면?"

"원치 않는 곳으로 보내지겠지."

"와씨, 생각 완전 잘해야겠는데?"


듣고 보니 저승이라는 곳에도 꽤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이 다 있다니! 끝내주는 사후세계를 상상하기만 하면 거기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물론 심사에 통과해야 하니까 적당히 좋은 곳이어야겠지. 내가 생각해도 나는 파라다이스까지는 못 들어갈 것 같으니까.


"넌 왜 도서관에 가려고?"

"뒷이야기가 궁금한 책이 너무 많아. 여기서는 내 손으로 책장을 못 넘기니까, 사람이 읽는 책을 어깨너머로 볼 수밖에 없단 말이야. 그 사람이 읽는 속도에 맞춰서 읽어야 되고, 그 사람이 책을 덮어 버리면 그 다음 얘기를 영영 알 수가 없어. 그게 너무 답답해서."


나는 잠깐, 양갈래와 함께 그 도서관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승에서 제일 큰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기나긴 여생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양갈래의 최선이 나에게도 최선일까? 나에게 최선인 곳은 역시 내가 직접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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